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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기생오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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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기생오라비
완콩두콩
4. (1장-사천) 사천당가

민후는 사천당가와 만나고 나서 긴장에 끈을 아예 놓아버렸다.

전방에 나부끼는 당가의 깃발을 보고 감히 시비를 거는 간 큰 산적이 존재할 리는 없으니.

그저 푸른 나무들과 화창한 날씨를 벗으로 삼아 풍류를 즐겼다.

‘크… 여행이란 이런 거구나. 전생에 내가 다녔던 것은 그저 비무행이었다.’

어디를 가나 적으로 치부되고, 어디를 가나 경계를 받았다.

그 망할 놈의 외모 때문에.

하지만 이번 생의 자신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하하!!”

끊임없이 들리는 음흉한 웃음소리에 기룡표국 표사들은 자신의 머리 주위에서 검지를 빙빙 돌렸다.

“미친 게 확실하겠지??”

“저 나이에 저 정도 무공이라면 미치고도 남을 거다.”

“확실히 미쳤어.”

“화타가 와도 못 고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후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참지 못했다. 아니, 참지 않았다.

그 시각 사천당가.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하아암… 재촉하지 말거라.”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백옥 같은 피부를 더욱더 밝게 비추었다.

갓 잠에서 깬 여인이 침상 위에서 기지개를 켰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잘록한 허리와 터질 듯한 가슴은 얇은 속내의로 감춰보려 애를 썼지만, 어디 그 아름다움이 감춰지겠는가.

흰 속내의만 입고 침상에서 내려오는 여인의 모습은 한마디로 선녀였다.

만약 농사꾼도 이 여인을 보면 한마디 건넬 것이다.

“나 나무꾼 할래. 그래서 옷을 훔칠래.”

라고.

얼굴에 물을 조금 묻혀 간밤의 흔적을 지운 여인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오늘 누가 온다고 그랬지??”

“네 아가씨. 기룡표국에서 온다고 그랬습니다.”

“기룡표국?? 귀주에 작은 표국??”

“예. 그곳에 가주께서 의뢰를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래?? 먼 곳에서 고생했구나.”

시녀가 건네준 녹색의 장포를 걸쳐 입은 여인은 당추현.

사천당가의 일 공녀.

별호는 독문여제(毒紋女帝). 지독한 독으로도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사람을 홀리는 여인.

그리고 세간에서 당추현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사화 중 한 명인 독화(毒花).

이번 생에 민후가 목표로 삼은 것은 천하제일인도 아니고, 천하제일 문파를 만드는 것도 아닌 여자를 꼬시는 것.

그것도 사화사계(四花四季)를 모두 자신의 여자로 만드는 것.

사화사계(四花四季)란 네 명의 꽃과 네 명의 계절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 네 명과 마치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미모를 가진 네 명의 뜻하는 말이다.

전생에서 미녀는커녕 추녀 한 번 사귀지 못했던 민후의 꿈은 천하에서 알아주는 미녀들을 모두 사귀는 거다.

그 꿈을 향한 첫 발자취가 당가로 향했다.



“그런데 천소저. 혹시 오는 길에 습격은 없었습니까?? 표사들이 조금 적어 보입니다??”

“많은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인이 구해주셨습니다.”

“은인 말씀이십니까??”

“예. 곤경에 처했던 저희 기룡표국을 벼락처럼 나타나 구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허허, 그런 분이 계셨으면 알려주셨어야지요. 기룡표국을 지킨 것은 저희 당가의 물건을 지켜준 것과 같지요.”

“마침 이곳에 강가가 있으니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 은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구려. 모두 멈춰라!!”

척-

당구혈의 한마디에 모두 멈춰 전열을 가다듬었다. 과연 명문 세가 답게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이곳에서 한 식경의 휴식을 취한 뒤에 떠난다.”

휴식이란 소리에 마차에 타고 있던 일꾼들이 내려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드는 한편 표사들과 무인들은 저마다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터벅- 터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낀 민후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민후의 모습을 본 당구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소. 나는 당…”

“천소저! 어쩐 일이시오? 혹 내가 보고 싶어 온 것이오??”

꿈틀-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은근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던 천세현에게 추파를 던지는 민후의 모습에 당구혈이 미간을 좁혔다.

천세현은 그런 민후의 수작에 손쉽게 넘어가 얼굴을 붉혔다.

“크흠!!”

당구혈의 기침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고 옆에 서 있는 당구혈을 소개했다.

“민후 대협. 이쪽은 사천당가에서 나오신 당구혈 대협이라 합니다.”

“당구혈이라 하오.”

명문가의 자제로써 최대한 예를 갖춰 인사했는데 눈앞에 청년은 자신을 무시했다.

“아 예. 민후요.”

한쪽 손으로 콧구멍에 자리 잡은 코딱지를 파며 다른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긁적였다.

대놓고 무시하는 저 모습.

‘뭐야. 지긋지긋한 남자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당가의 아해야.’

빠직-

당구혈의 미간이 좁혀지다 못해 찌그러지고 일그러졌다.

“그대는 강호 초출인가 보오??”

“아, 예.”

빠직-

자신의 미간이 고무줄로 만들어졌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꾸겨졌다.

“나 당구혈. 사천당가의 사람이오!! 어찌 그대는 나를 이리도 무시하는가!!”

은연중에 사천당가라는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사천당가의 이름을 듣고도 민후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당가가 뭐 별거입니까?? 사천에 있는 작은 세가가 아닙니까?”

스릉-

허리춤에 달려있던 검이 소름 끼치는 검명과 함께 뽑혔다.

“이놈!! 감히 대 사천당가를 무시해!? 네놈의 혀를 자르겠다!!”

“하하하!! 이 또한 추억이구나. 당가의 어린놈.”

“어…어린놈!?”

아무렇지 않게 웃는 민후와 다르게 속이 타는 사람은 천세현이었다.

은인(사모하는)과 당가가 맞붙게 된다면 자신은 대체 누구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천세현은 진땀을 흘렸다.

“자..잠깐!! 잠깐만 진정하십시오. 당대협.”

“천소저!! 저놈이 지금 우리 당가를 욕보인 것을 보지 않았소? 내 당장 이놈의 목을 쳐야 두 다리 뻗고 잠이 들 수 있겠소!!”

“하하하!! 그 검 잘못 놀리면 두 다리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놈이 끝까지!!”

“자자자..잠깐!!”

멈칫-

민후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당구혈의 검이 갑자기 끼어든 천세현에 의해서 멈췄다.

서슬 퍼런 검 끝이 천세현의 뽀얀 피부에 작은 상처를 입혀 피가 흘렀다.

“진정하십시오. 아직 민후 대협이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가의 위명을 알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촤륵-

천세현의 뒤에서 느긋하게 섭선을 펴 얼굴에 바람을 부쳤다.

“쯔쯔쯧. 여인에게 검을 겨누고 말이야. 그 가랑이 사이에 달고 있는 거나 떼고 오지그래.”

“민후 대협!! 대체 왜 그러십니까!!”

기껏 중재에 나섰더니 오히려 불을 더 지피는 민후의 모습이 야속하게만 보였다.

당구혈의 손이 떨렸다.

두렵거나 공포심에 떨리는 게 아닌, 극심한 분노에 의해서.

“오냐…오늘 네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성씨를 갈겠다!!”

파팟-

순식간에 천세현을 제치고 날아가 민후의 목을 베었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했다.

일렁-

목이 떨어진 민후의 모습이 안개처럼 흐트러지더니 자신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오늘부터 민구혈이다.”

휘익-

세상이 돌았다.

‘아! 오늘 천소저는 하얀 속옷을…’

퍼억-

흰 속옷과 함께 당구혈의 기억은 끝이 났다.



다그닥- 다그닥-

“으윽…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길을 달리는 탓에 출렁거리는 마차는 전날에 먹은 음식을 게워내기 충분했다.

“우욱!!”

당구혈은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내기를 운용해 속을 진정시켰다.

“대체 무슨…”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지만,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기에 참고 참으며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보..보인다. 보여!! 내 눈앞에 하얀 게 보여.’

제일 먼저 흙이 보였다. 그리고 흙을 밟고 있는 살 색의 다리가 보였고 그 다리를 쭉 따라 시선을 올리니 하얀..하얀 속옷이.

촤륵-

“당대협!! 일어나셨습니까!?”

잘 어울리는 천세현이 마차의 천막을 젖혔다.

“소저. 오늘 하얀 속옷을 입지 않았소??”

짝!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당구혈의 뺨을 내리친 천세현이 급하게 손을 회수했다.

“당대협!! 이건 대협께서 실수하신 겁니다!!”

뺨을 맞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는 당구혈이 손을 휘저었다.

“괜찮소. 그보다 천소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소?? 나는 분명…”

촤륵-

그때 천세현의 뒤에서 잘생긴 남자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 민구혈 일어났는가??’

“민구혈?? 민구혈… 민.구.혈!? 아아악!!”

세상이 돌고 땅바닥에 처박히는 고통이 떠오른 당구혈은 머리를 쥐어짰다.

호기롭게 검을 겨눴지만 보기 좋게 처박혔다.

게다가.

“성씨를 바꾸기로 했지?? 너는 이제부터 민구혈이다.”

세가에서 파문을 당할 거 같다.



사천에 자리 잡고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천당가.

사천성에 들어서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는데 당가의 깃발을 보자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비켰다.

큰 마차와 많은 무인이 걸어가는 탓에 일순 도로가 마비되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당가의 괴팍함은 여전하구나.’

선두에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걸어가는 당구혈을 쳐다본 민후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약하고.’

마을에 들어서고 일각 정도 걸어가니 커다란 전각이 보였다.

일개 세가의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사천당가(四川唐家)라 적힌 대문의 현판은 거칠고 투박한 글씨지만 강인해 보였다.

끼이익-

열리지 않을 거 같았던 커다란 대문이 곡소리를 내며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수십 명의 식솔이 고개를 숙이고 맞이했다.

당구혈의 축 처진 어깨도 점점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민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기를 펴는 법이지.’

마지막 표사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당가의 대문이 닫혔고 식솔들이 고개를 숙였다.

“당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기룡표국 사람들은 기가 죽어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

마차 안에 누워있던 민후가 천천히 내려와 둘러보았다.

“크… 이곳은 변하지 않는구나. 여전히 건방져.”

“지금 무어라 했는가!!”

쿵!!

순간 장내를 압도하는 기운이 나타났다.

녹색 장포를 펄럭이며 식솔들 뒤에서 걸어 나온 한 노인이 민후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거기. 지금 무어라 했는가?!”

“변하지 않는구나??”

“말고!!”

“여전히??”

“뒤에!!”

“건방져??”

“이놈!!!”

쿠웅-

자신을 짓누르기 위해 풍겨오는 살기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하품하는 민후가 노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 기분 나쁜 기운은 언제까지 풍길 거요?? 더 이상은 나도 참기 힘든데 말이야.”

“어째서!? 네놈!! 대체 어째서 멀쩡한 것이냐!!”

일 장로 당한풍.

그는 독과 암기를 주로 사용하는 당가의 무공과 다르게 어려서부터 특이한 체질로 내공이 매우 뛰어나 내가 무공을 익혔다.

막대한 내공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장법이 장기인 당한풍은 자신의 내공을 버티는 민후를 놀랍게 쳐다봤다.

“아직 약관도 넘지 않은 듯한 놈이… 내 내공을 견뎌!?”

“하암… 내공이었소?? 너무 간지러워 독인 줄 알았는데.”

쿵!!!

당한풍이 서 있던 자리에 지면이 주저앉았다.

엄청난 내공에 장포가 태풍이라도 맞은 듯 펄럭였다.

그 모습을 본 당구혈이 속으로 웃었다.

‘크크크. 네놈의 콧대를 장로님께서 꺾어 주실 거다!!’

당구혈의 바람대로 당한풍이 지면을 박차고 도약하려는 순간.

“그만하세요.”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한 걸음 한걸음에 꽃향기가 풍겼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잔잔한 호수를 떠오르게 했다.

“세가에 오신 손님이 아닙니까. 일 장로.”

“하지만 아가씨! 저놈이 감히 우리 당가를 욕보였습니다!!”

“장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무인이 실수한 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대 세가가 아닙니까??”

“하지만…”

“더 이상 언급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가주께서 물건을 기다리니 그것이 우선입니다.”

“예. 아가씨.”

당한풍의 이가 부러질 듯 맞물렸다.

따가운 시선이 민후의 얼굴을 찔렀다. 눈으로 찔린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천세현의 앞에 당추현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실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일 공녀 당추현이라 합니다.”

“기룡표국에서 온 표위 천세현이 합니다. 공녀님께서는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어찌 저희 같은 일개 표국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기룡표국은 우리 당가의 손님이 아닙니까? 우리 당가는 편견이 없답니다.”

파팟-

인사를 나누는 두 여인 사이에 갑자기 남자 하나가 떨어졌다.

“소저. 아름답구려.”

“예??”

“내 아이를 낳아주시오.”

그렇다.

민후는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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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2019-10-05
천하제일 기생오라비
완콩두콩
4. (1장-사천) 사천당가

민후는 사천당가와 만나고 나서 긴장에 끈을 아예 놓아버렸다.

전방에 나부끼는 당가의 깃발을 보고 감히 시비를 거는 간 큰 산적이 존재할 리는 없으니.

그저 푸른 나무들과 화창한 날씨를 벗으로 삼아 풍류를 즐겼다.

‘크… 여행이란 이런 거구나. 전생에 내가 다녔던 것은 그저 비무행이었다.’

어디를 가나 적으로 치부되고, 어디를 가나 경계를 받았다.

그 망할 놈의 외모 때문에.

하지만 이번 생의 자신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하하!!”

끊임없이 들리는 음흉한 웃음소리에 기룡표국 표사들은 자신의 머리 주위에서 검지를 빙빙 돌렸다.

“미친 게 확실하겠지??”

“저 나이에 저 정도 무공이라면 미치고도 남을 거다.”

“확실히 미쳤어.”

“화타가 와도 못 고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후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참지 못했다. 아니, 참지 않았다.

그 시각 사천당가.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하아암… 재촉하지 말거라.”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백옥 같은 피부를 더욱더 밝게 비추었다.

갓 잠에서 깬 여인이 침상 위에서 기지개를 켰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잘록한 허리와 터질 듯한 가슴은 얇은 속내의로 감춰보려 애를 썼지만, 어디 그 아름다움이 감춰지겠는가.

흰 속내의만 입고 침상에서 내려오는 여인의 모습은 한마디로 선녀였다.

만약 농사꾼도 이 여인을 보면 한마디 건넬 것이다.

“나 나무꾼 할래. 그래서 옷을 훔칠래.”

라고.

얼굴에 물을 조금 묻혀 간밤의 흔적을 지운 여인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오늘 누가 온다고 그랬지??”

“네 아가씨. 기룡표국에서 온다고 그랬습니다.”

“기룡표국?? 귀주에 작은 표국??”

“예. 그곳에 가주께서 의뢰를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래?? 먼 곳에서 고생했구나.”

시녀가 건네준 녹색의 장포를 걸쳐 입은 여인은 당추현.

사천당가의 일 공녀.

별호는 독문여제(毒紋女帝). 지독한 독으로도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사람을 홀리는 여인.

그리고 세간에서 당추현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사화 중 한 명인 독화(毒花).

이번 생에 민후가 목표로 삼은 것은 천하제일인도 아니고, 천하제일 문파를 만드는 것도 아닌 여자를 꼬시는 것.

그것도 사화사계(四花四季)를 모두 자신의 여자로 만드는 것.

사화사계(四花四季)란 네 명의 꽃과 네 명의 계절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 네 명과 마치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미모를 가진 네 명의 뜻하는 말이다.

전생에서 미녀는커녕 추녀 한 번 사귀지 못했던 민후의 꿈은 천하에서 알아주는 미녀들을 모두 사귀는 거다.

그 꿈을 향한 첫 발자취가 당가로 향했다.



“그런데 천소저. 혹시 오는 길에 습격은 없었습니까?? 표사들이 조금 적어 보입니다??”

“많은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인이 구해주셨습니다.”

“은인 말씀이십니까??”

“예. 곤경에 처했던 저희 기룡표국을 벼락처럼 나타나 구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허허, 그런 분이 계셨으면 알려주셨어야지요. 기룡표국을 지킨 것은 저희 당가의 물건을 지켜준 것과 같지요.”

“마침 이곳에 강가가 있으니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 은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구려. 모두 멈춰라!!”

척-

당구혈의 한마디에 모두 멈춰 전열을 가다듬었다. 과연 명문 세가 답게 체계가 잘 잡혀 있었다.

“이곳에서 한 식경의 휴식을 취한 뒤에 떠난다.”

휴식이란 소리에 마차에 타고 있던 일꾼들이 내려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드는 한편 표사들과 무인들은 저마다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터벅- 터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낀 민후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민후의 모습을 본 당구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소. 나는 당…”

“천소저! 어쩐 일이시오? 혹 내가 보고 싶어 온 것이오??”

꿈틀-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은근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던 천세현에게 추파를 던지는 민후의 모습에 당구혈이 미간을 좁혔다.

천세현은 그런 민후의 수작에 손쉽게 넘어가 얼굴을 붉혔다.

“크흠!!”

당구혈의 기침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고 옆에 서 있는 당구혈을 소개했다.

“민후 대협. 이쪽은 사천당가에서 나오신 당구혈 대협이라 합니다.”

“당구혈이라 하오.”

명문가의 자제로써 최대한 예를 갖춰 인사했는데 눈앞에 청년은 자신을 무시했다.

“아 예. 민후요.”

한쪽 손으로 콧구멍에 자리 잡은 코딱지를 파며 다른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긁적였다.

대놓고 무시하는 저 모습.

‘뭐야. 지긋지긋한 남자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당가의 아해야.’

빠직-

당구혈의 미간이 좁혀지다 못해 찌그러지고 일그러졌다.

“그대는 강호 초출인가 보오??”

“아, 예.”

빠직-

자신의 미간이 고무줄로 만들어졌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꾸겨졌다.

“나 당구혈. 사천당가의 사람이오!! 어찌 그대는 나를 이리도 무시하는가!!”

은연중에 사천당가라는 말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사천당가의 이름을 듣고도 민후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당가가 뭐 별거입니까?? 사천에 있는 작은 세가가 아닙니까?”

스릉-

허리춤에 달려있던 검이 소름 끼치는 검명과 함께 뽑혔다.

“이놈!! 감히 대 사천당가를 무시해!? 네놈의 혀를 자르겠다!!”

“하하하!! 이 또한 추억이구나. 당가의 어린놈.”

“어…어린놈!?”

아무렇지 않게 웃는 민후와 다르게 속이 타는 사람은 천세현이었다.

은인(사모하는)과 당가가 맞붙게 된다면 자신은 대체 누구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천세현은 진땀을 흘렸다.

“자..잠깐!! 잠깐만 진정하십시오. 당대협.”

“천소저!! 저놈이 지금 우리 당가를 욕보인 것을 보지 않았소? 내 당장 이놈의 목을 쳐야 두 다리 뻗고 잠이 들 수 있겠소!!”

“하하하!! 그 검 잘못 놀리면 두 다리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놈이 끝까지!!”

“자자자..잠깐!!”

멈칫-

민후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당구혈의 검이 갑자기 끼어든 천세현에 의해서 멈췄다.

서슬 퍼런 검 끝이 천세현의 뽀얀 피부에 작은 상처를 입혀 피가 흘렀다.

“진정하십시오. 아직 민후 대협이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가의 위명을 알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촤륵-

천세현의 뒤에서 느긋하게 섭선을 펴 얼굴에 바람을 부쳤다.

“쯔쯔쯧. 여인에게 검을 겨누고 말이야. 그 가랑이 사이에 달고 있는 거나 떼고 오지그래.”

“민후 대협!! 대체 왜 그러십니까!!”

기껏 중재에 나섰더니 오히려 불을 더 지피는 민후의 모습이 야속하게만 보였다.

당구혈의 손이 떨렸다.

두렵거나 공포심에 떨리는 게 아닌, 극심한 분노에 의해서.

“오냐…오늘 네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성씨를 갈겠다!!”

파팟-

순식간에 천세현을 제치고 날아가 민후의 목을 베었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했다.

일렁-

목이 떨어진 민후의 모습이 안개처럼 흐트러지더니 자신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오늘부터 민구혈이다.”

휘익-

세상이 돌았다.

‘아! 오늘 천소저는 하얀 속옷을…’

퍼억-

흰 속옷과 함께 당구혈의 기억은 끝이 났다.



다그닥- 다그닥-

“으윽…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길을 달리는 탓에 출렁거리는 마차는 전날에 먹은 음식을 게워내기 충분했다.

“우욱!!”

당구혈은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내기를 운용해 속을 진정시켰다.

“대체 무슨…”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지만,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기에 참고 참으며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보..보인다. 보여!! 내 눈앞에 하얀 게 보여.’

제일 먼저 흙이 보였다. 그리고 흙을 밟고 있는 살 색의 다리가 보였고 그 다리를 쭉 따라 시선을 올리니 하얀..하얀 속옷이.

촤륵-

“당대협!! 일어나셨습니까!?”

잘 어울리는 천세현이 마차의 천막을 젖혔다.

“소저. 오늘 하얀 속옷을 입지 않았소??”

짝!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당구혈의 뺨을 내리친 천세현이 급하게 손을 회수했다.

“당대협!! 이건 대협께서 실수하신 겁니다!!”

뺨을 맞았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는 당구혈이 손을 휘저었다.

“괜찮소. 그보다 천소저.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소?? 나는 분명…”

촤륵-

그때 천세현의 뒤에서 잘생긴 남자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 민구혈 일어났는가??’

“민구혈?? 민구혈… 민.구.혈!? 아아악!!”

세상이 돌고 땅바닥에 처박히는 고통이 떠오른 당구혈은 머리를 쥐어짰다.

호기롭게 검을 겨눴지만 보기 좋게 처박혔다.

게다가.

“성씨를 바꾸기로 했지?? 너는 이제부터 민구혈이다.”

세가에서 파문을 당할 거 같다.



사천에 자리 잡고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천당가.

사천성에 들어서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는데 당가의 깃발을 보자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비켰다.

큰 마차와 많은 무인이 걸어가는 탓에 일순 도로가 마비되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당가의 괴팍함은 여전하구나.’

선두에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걸어가는 당구혈을 쳐다본 민후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약하고.’

마을에 들어서고 일각 정도 걸어가니 커다란 전각이 보였다.

일개 세가의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휘황찬란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사천당가(四川唐家)라 적힌 대문의 현판은 거칠고 투박한 글씨지만 강인해 보였다.

끼이익-

열리지 않을 거 같았던 커다란 대문이 곡소리를 내며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수십 명의 식솔이 고개를 숙이고 맞이했다.

당구혈의 축 처진 어깨도 점점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민후는 콧방귀를 뀌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기를 펴는 법이지.’

마지막 표사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당가의 대문이 닫혔고 식솔들이 고개를 숙였다.

“당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기룡표국 사람들은 기가 죽어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

마차 안에 누워있던 민후가 천천히 내려와 둘러보았다.

“크… 이곳은 변하지 않는구나. 여전히 건방져.”

“지금 무어라 했는가!!”

쿵!!

순간 장내를 압도하는 기운이 나타났다.

녹색 장포를 펄럭이며 식솔들 뒤에서 걸어 나온 한 노인이 민후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거기. 지금 무어라 했는가?!”

“변하지 않는구나??”

“말고!!”

“여전히??”

“뒤에!!”

“건방져??”

“이놈!!!”

쿠웅-

자신을 짓누르기 위해 풍겨오는 살기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하품하는 민후가 노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 기분 나쁜 기운은 언제까지 풍길 거요?? 더 이상은 나도 참기 힘든데 말이야.”

“어째서!? 네놈!! 대체 어째서 멀쩡한 것이냐!!”

일 장로 당한풍.

그는 독과 암기를 주로 사용하는 당가의 무공과 다르게 어려서부터 특이한 체질로 내공이 매우 뛰어나 내가 무공을 익혔다.

막대한 내공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장법이 장기인 당한풍은 자신의 내공을 버티는 민후를 놀랍게 쳐다봤다.

“아직 약관도 넘지 않은 듯한 놈이… 내 내공을 견뎌!?”

“하암… 내공이었소?? 너무 간지러워 독인 줄 알았는데.”

쿵!!!

당한풍이 서 있던 자리에 지면이 주저앉았다.

엄청난 내공에 장포가 태풍이라도 맞은 듯 펄럭였다.

그 모습을 본 당구혈이 속으로 웃었다.

‘크크크. 네놈의 콧대를 장로님께서 꺾어 주실 거다!!’

당구혈의 바람대로 당한풍이 지면을 박차고 도약하려는 순간.

“그만하세요.”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한 걸음 한걸음에 꽃향기가 풍겼고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잔잔한 호수를 떠오르게 했다.

“세가에 오신 손님이 아닙니까. 일 장로.”

“하지만 아가씨! 저놈이 감히 우리 당가를 욕보였습니다!!”

“장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무인이 실수한 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대 세가가 아닙니까??”

“하지만…”

“더 이상 언급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가주께서 물건을 기다리니 그것이 우선입니다.”

“예. 아가씨.”

당한풍의 이가 부러질 듯 맞물렸다.

따가운 시선이 민후의 얼굴을 찔렀다. 눈으로 찔린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바들바들 떠는 천세현의 앞에 당추현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실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일 공녀 당추현이라 합니다.”

“기룡표국에서 온 표위 천세현이 합니다. 공녀님께서는 고개를 들어주십시오. 어찌 저희 같은 일개 표국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기룡표국은 우리 당가의 손님이 아닙니까? 우리 당가는 편견이 없답니다.”

파팟-

인사를 나누는 두 여인 사이에 갑자기 남자 하나가 떨어졌다.

“소저. 아름답구려.”

“예??”

“내 아이를 낳아주시오.”

그렇다.

민후는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

작가의말

별점

★★★★★ 회당별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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