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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기생오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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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기생오라비
완콩두콩
3. (1장-사천) 기룡표국 3

꽃이 날았다.

“끄아아악!!”

“커…커헉”

꽃이 날자 꽃잎처럼 목이 떨어졌다.

다시 한 번 꽃이 폈다.

“도망쳐라!!”

“사..살려줘…”

꽃이 피자 펼쳐지는 꽃봉오리처럼 피가 튀었다.


민후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멀리서 도망가려는 산적 앞에 나타났다.

“어딜 가시나??”

“허..허헉!!”

서걱-

섭선이 하늘을 향했고 그 검로에 산적의 머리가 있었다. 아니, 있었다.

털썩-

목을 잃은 산적 하나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또 하나의 산적이 목숨을 잃었다.

오십여 명의 산적 중에 목이 제자리에 달린 사람은 단 다섯 명.

일각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사십 명이 넘는 산적이 민후의 섭선에 목이 떨어졌다.

파릇파릇했던 풀잎들은 뜨거운 피에 젖어 생기를 잃었는데, 꽃이 핀 민후의 섭선은 단 한 방울에 피도 묻지 않았다.

“고..고수다!!”

“고수야!!”

움찔-

나무 위에서 기회를 노리던 살수들은 입을 쩍! 벌렸다.

‘트…틈이 없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그저 발이 닿는 곳에 있는 산적을 죽이고,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목을 베었다.

일반 사람이 본다면 막무가내로 싸우는 거처럼 보일지 몰라도 살수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정말 작은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저곳에 뛰어드는 것은 개죽음이라는 걸 알아차린 살수들은 곧바로 산개하여 도망갔다.

파파팟-

민후는 그런 살수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당가와 합류하기 전에 또 만나지 않겠지.’

사천당가(四川唐家).

독과 암기술이 특기인 가문으로 오대 세가 중 하나다. 그들은 성격이 괴팍하고 자신의 가문을 끔찍이도 아끼는데 만약 자신의 가문을 건드리는 세력이 있다면 그 누가 됐더라도 끝까지 쫓아가 죽인다.

이에 사람들은 항상 얘기한다. 사천당가와 척을 지면 숨 쉬는 거조차 조심하라고,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마음 편하다고.

감히 사천을 주름잡는 당가와 같이 있는데 습격할 산적은 없다.

민후는 느긋하게 섭선을 부치며 나머지 산적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자! 선배의 충고는 가슴 깊이 새겼는가??”

털썩-

“살려주십시오!!”

“저는 집에 병에 걸린 아내와 굶고 있는 딸 아이가…”

“대협!! 제가 감히 대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민후는 마치 지난겨울 피풍의 속에 숨겨둔 은자 두 개를 찾은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크으!! 그래. 너희 산적들은 이렇지!! 잊고 있었다. 네놈들은 모두 병든 아녀자와 함께 산다는 것을.”

펄럭펄럭-

민후의 섭선을 부치는 우아한 손짓은 여인이 아닌 사내가 봐도 아름다웠지만, 산적들은 감히 쳐다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목숨 대협께 바치겠습니다.”

“그럼 지금 내게 바치면 되지 않느냐?? 목만 댕강! 하면 편할 것을.”

손끝으로 목 긋는 시늉을 하는 민후의 모습은 소름 끼쳤다.

“집에 병든 아내가 저만을 기다리며…”

“그래그래. 너만 기다리고 딸 아이가 굶고 있지.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대협!! 살려주시는 겁니까!?”

“근데 너희가 죽인 무수히 많은 사람은 어쩌겠느냐??”

“예??”

“네놈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죽여왔던 무수히 많은 사람.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척-

느긋하게 걸어오던 민후가 산적들의 지척에서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라.”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들은 산적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흐르는 눈물,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에 흐르는 눈물.

두 가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협!!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대협!! 저희가 감히 하늘을 몰라보고 기어올랐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목숨을 다 바쳐 대협께 충성하겠습니다!!”

“틀렸다.”

“예??”

서걱-

민후의 섭선이 횡으로 그어지자 줄지어 달려있던 산적들의 목에 일순 줄이 그어졌다.

푸..푸슈슉!!

동시에 피가 터지고 산적들은 고통에 목을 부여잡았다.

“네놈들은 내가 아닌,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투두두둑-

다섯 개의 목이 땅에 떨어지고 주인을 잃은 몸뚱어리는 힘없이 쓰러졌다.



“뭐라!!? 전멸?? 지금 전멸이라고 했느냐!!?”

“그..그렇습니다!!”

쾅!!

기습을 시도했던 칠십여 명의 수하 중에 살아 돌아온 살수들이 헛소리를 하자 화가 난 마춘투가 의자를 내리쳤다.

“그런데 네놈들은 이렇게 모두 살아 돌아왔다. 이 말인가!!”

“저희가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습니다.”

“네…네놈들이 끝까지!!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냐!! 화경의 고수라도 있었단 말이냐??”

“예!! 정말입니다. 화경의 고수! 정말 화경의 고수는 돼 보였습니다.”

“기룡표국에 화경의 고수가 있다는 말을 내게 믿으라는 게냐!!??”

“하지만 사실입니다!! 정말. 그는 정말 악마였습니다.”

시중 일관 무표정으로 보고를 듣던 천풍각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대도를 들어 올렸다.

“감히 내 수하들을 버리고 네놈들만 살아서 돌아왔다??”

당장 자신의 수하들을 죽이려는 천풍각을 보고 마춘투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렸다.

“진정하시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소.”

“그대는 지금 저 헛소리를 믿는 거요?? 내가 보기에는 그대의 수하가 우리의 수하를 죽이고 신물을 독차지했다고 생각하는데??”

“뭐요!? 우리 혈마파를 그런 치졸한 문파로 보는 것이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일단 진정하고 어땠는지 얘기를 들어봅시다!!”

쾅!!

천풍각의 거대한 도가 바닥에 깊게 박혔다.

“단 한마디의 헛소리라도 지껄인다면 목을 벨 것이오.”

꿀꺽-

살수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서 설명해 보거라!!”

“아, 예!! 그러니까 저희는 예정대로 공터에 자리를 잡고 기습을 위해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미남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 그것도 엄청난 미남이었습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움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천풍각의 눈빛에 신나서 지껄이던 살수 하나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미남, 아니 고수만 아니었어도 저희는 성공했습니다.”

살수들은 자신들이 보고 느낀 민후의 검법을 떠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섭선이 가니까 모가지가 우수수.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니까 또다시 모가지가 우수수. 피가 터지고 비명이 들리니까 모가지가 우수수. 그건 검법이 아니었습니다.”

“맞아 맞아!! 그놈의 섭선이 휙휙 돌아가면 우리가 휙휙 나가떨어졌지.”

“거기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잘 생겼는지. 배 아파서 혼났다니까??”

“맞아 맞아!! 내가 여자였으면 분명 넘어갔…”

신나서 떠들던 살수들이 따갑게 느껴지는 살기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천풍각의 장포가 살기에 펄럭였다.

“내..오늘 네놈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다면 성을 갈겠다.”

끓어오리는 분노를 참지 못한 천풍각의 온몸이 떨려왔다.

서걱-

살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천풍각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살수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천풍각의 목을 베어버린 사람은 마춘투.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일어난 마춘투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신물은 포기한다! 하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얘들아!! 혈천파에 쳐들어가 모든 재물과 아녀자를 빼앗아라!!”

“예!!!”

오랜만에 여자를 품을 생각에 신이 난 살수들이 서둘러 혈천파로 향했다.

마춘투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천풍각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주제를 모르고 설쳤구나. 수하가 없으면 네놈은 더 이상 두렵지 않지. 흐흐흐. 네놈이 그동안 모아온 건 내가 잘 쓰겠다!! 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얼마 뒤 공터에 도착한 기룡표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곳곳에 낭자한 핏자국과 철이 지난 과일처럼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들.

참혹한 현장이었다.

꿀꺽-

새삼 민후의 무력에 천세현은 감탄했다.

‘저 많은 무인을 죽이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다!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어!? 왔소??”

바위에 걸터앉아 해맑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후의 모습은 심장에 좋지 않았다.

등 뒤에 내리쬐는 햇살이 한 폭에 그림 같았다.

“민~후~대~협~”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는 아낙네처럼 양팔을 휙휙 휘저으며 뛰어가는 천세현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푸훕!”

“우리 표위님이 대체 왜 저러시지??”

“그러게 말이야.”

한참을 달려가던 천세현이 민후 앞에 다소곳하게 멈춰 수줍은 미소를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민.후.대.협.”

끝말에 강조하며 입술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니오. 호위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럼 민후 대협. 앞서 얘기했던 몸의 보상은…”

바짝-

천세현의 허리춤을 부드럽게 감싸고 확 끌어당긴 민후가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바라봤다.

‘어머!! 민후 대협…’

서서히 다가오는 민후의 얼굴에 천세현이 두 눈을 꽉 감았다.

신명 난 콧바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입안에 자리한 혓바닥은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입술이 부딪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느껴지는 감각이 없자 눈을 뜬 천세현의 앞에 보이는 건 민후의 손등이었다.

“소저의 입술을 어찌 빼앗을 수 있겠소. 손등이면 만족하오.”

“아니, 제가 만족 못 합니다.”

“예??”

“아..아니 그게 아니라.”

쪽-

당황하는 천세현의 입술에 손등을 갖다 댄 민후가 천천히 떨어졌다.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구려. 고맙소.”

자신을 뒤로하고 멀어지는 민후의 뒷모습을 잡으려 손을 뻗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애절한 손끝보다 더 애절한 천세현의 입술은 아쉬움이 가득 느껴졌다.

“제 마음은 이리 쉽게 빼앗고, 어찌하여 입술은 빼앗지 않습니까…”



“흐..흐흐. 흐흐흐.”

울퉁불퉁한 길로 인해 심하게 달그락거리는 마차 안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 여인의 입술은 이리도 보드랍구나.”

천세현의 입술에 맞닿았던 손등을 보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전생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촉.

사실 민후는 그때 당시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 감촉을 입술로 느끼면… 끄아악!!”

아예 마차 안에 드러누워 하늘을 향해 발을 찼다.

민후와 친분이 생긴 마부도 그런 민후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고 기룡표국의 표사들은 민후의 마차와 거리를 조금 벌렸다.

멈칫-

그렇게 민후의 오두방정과 함께 길을 가던 기룡표국이 급하게 멈췄다.

‘강한 기운??’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민후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천(四川)]이라고 크게 적힌 녹색 깃발이 휘날렸다.

깃발을 들고 있는 무인의 표정에 자부심이 느껴졌고 그 뒤로 나열한 수십 명의 무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가장 앞에서 기품 있게 서 있던 무인 하나가 포권하며 천세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당구혈이라 하오.”

천세현은 말에서 내려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기룡표국에 천세현이라 합니다. 위명이 대단한 당구혈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천소저는 이 당구혈을 구름 위로 올려주시는구려.”

“아닙니다. 사천에서 사천귀신(四川鬼神) 당구혈 대협의 위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또 그렇소!! 천소저는 이제 걱정하지 마시오! 이 당구혈이 지켜드리겠소.”

“감사합니다! 그보다 물건은 확인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가주께서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으니 내가 볼 수는 없소. 우선 서둘러 출발하도록 하지.”

“예.”

펄럭!

커다란 깃발을 세차게 펄럭이며 방향을 틀은 당가의 무인들이 앞에서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민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당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길 좋아하는군. 그나저나 지금 가주는 누가 됐으려나.’

전생에 사천당가는 오대 세가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가문이다.

거기에 가주 당독춘이 화경의 경지가 되면서 당가는 숨겼던 야욕을 펼쳤다.

무림맹을 집어삼키기 위해 많은 계략을 펼쳤었고 실제로 무림맹의 중요 요직을 당가의 사람으로 채우는 거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욕심이 화근이었다.

당독춘은 자신이 제일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전생의 민후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당독춘이 자랑하던 독공이 무참히 짓밟히고 그 시절 손속에 자비가 없었던 민후에게 단전이 파괴되며 가주직에서 물러났다고 들었다.

당독춘이 무너지고 힘이 약해진 당가는 다시 오대 세가의 말단으로 돌아갔고 무림맹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크크. 내가 되살아난 걸 그 노인네가 알면 배 아파서 두 번 죽겠지?? 크하하. 너무 좋구나.’

흠칫-

당구혈은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음침한 기운에 뒤를 돌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그 기운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기분 탓인가??’

잠깐 뒤쪽을 쳐다보던 당구혈은 이내 찝찝함을 털어버리고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당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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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2019-10-01
천하제일 기생오라비
완콩두콩
3. (1장-사천) 기룡표국 3

꽃이 날았다.

“끄아아악!!”

“커…커헉”

꽃이 날자 꽃잎처럼 목이 떨어졌다.

다시 한 번 꽃이 폈다.

“도망쳐라!!”

“사..살려줘…”

꽃이 피자 펼쳐지는 꽃봉오리처럼 피가 튀었다.


민후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멀리서 도망가려는 산적 앞에 나타났다.

“어딜 가시나??”

“허..허헉!!”

서걱-

섭선이 하늘을 향했고 그 검로에 산적의 머리가 있었다. 아니, 있었다.

털썩-

목을 잃은 산적 하나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또 하나의 산적이 목숨을 잃었다.

오십여 명의 산적 중에 목이 제자리에 달린 사람은 단 다섯 명.

일각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사십 명이 넘는 산적이 민후의 섭선에 목이 떨어졌다.

파릇파릇했던 풀잎들은 뜨거운 피에 젖어 생기를 잃었는데, 꽃이 핀 민후의 섭선은 단 한 방울에 피도 묻지 않았다.

“고..고수다!!”

“고수야!!”

움찔-

나무 위에서 기회를 노리던 살수들은 입을 쩍! 벌렸다.

‘트…틈이 없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그저 발이 닿는 곳에 있는 산적을 죽이고,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목을 베었다.

일반 사람이 본다면 막무가내로 싸우는 거처럼 보일지 몰라도 살수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정말 작은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저곳에 뛰어드는 것은 개죽음이라는 걸 알아차린 살수들은 곧바로 산개하여 도망갔다.

파파팟-

민후는 그런 살수들을 굳이 쫓지 않았다.

‘당가와 합류하기 전에 또 만나지 않겠지.’

사천당가(四川唐家).

독과 암기술이 특기인 가문으로 오대 세가 중 하나다. 그들은 성격이 괴팍하고 자신의 가문을 끔찍이도 아끼는데 만약 자신의 가문을 건드리는 세력이 있다면 그 누가 됐더라도 끝까지 쫓아가 죽인다.

이에 사람들은 항상 얘기한다. 사천당가와 척을 지면 숨 쉬는 거조차 조심하라고,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마음 편하다고.

감히 사천을 주름잡는 당가와 같이 있는데 습격할 산적은 없다.

민후는 느긋하게 섭선을 부치며 나머지 산적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자! 선배의 충고는 가슴 깊이 새겼는가??”

털썩-

“살려주십시오!!”

“저는 집에 병에 걸린 아내와 굶고 있는 딸 아이가…”

“대협!! 제가 감히 대협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민후는 마치 지난겨울 피풍의 속에 숨겨둔 은자 두 개를 찾은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크으!! 그래. 너희 산적들은 이렇지!! 잊고 있었다. 네놈들은 모두 병든 아녀자와 함께 산다는 것을.”

펄럭펄럭-

민후의 섭선을 부치는 우아한 손짓은 여인이 아닌 사내가 봐도 아름다웠지만, 산적들은 감히 쳐다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목숨 대협께 바치겠습니다.”

“그럼 지금 내게 바치면 되지 않느냐?? 목만 댕강! 하면 편할 것을.”

손끝으로 목 긋는 시늉을 하는 민후의 모습은 소름 끼쳤다.

“집에 병든 아내가 저만을 기다리며…”

“그래그래. 너만 기다리고 딸 아이가 굶고 있지.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대협!! 살려주시는 겁니까!?”

“근데 너희가 죽인 무수히 많은 사람은 어쩌겠느냐??”

“예??”

“네놈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죽여왔던 무수히 많은 사람. 그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척-

느긋하게 걸어오던 민후가 산적들의 지척에서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라.”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들은 산적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흐르는 눈물,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에 흐르는 눈물.

두 가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협!!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대협!! 저희가 감히 하늘을 몰라보고 기어올랐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목숨을 다 바쳐 대협께 충성하겠습니다!!”

“틀렸다.”

“예??”

서걱-

민후의 섭선이 횡으로 그어지자 줄지어 달려있던 산적들의 목에 일순 줄이 그어졌다.

푸..푸슈슉!!

동시에 피가 터지고 산적들은 고통에 목을 부여잡았다.

“네놈들은 내가 아닌,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투두두둑-

다섯 개의 목이 땅에 떨어지고 주인을 잃은 몸뚱어리는 힘없이 쓰러졌다.



“뭐라!!? 전멸?? 지금 전멸이라고 했느냐!!?”

“그..그렇습니다!!”

쾅!!

기습을 시도했던 칠십여 명의 수하 중에 살아 돌아온 살수들이 헛소리를 하자 화가 난 마춘투가 의자를 내리쳤다.

“그런데 네놈들은 이렇게 모두 살아 돌아왔다. 이 말인가!!”

“저희가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습니다.”

“네…네놈들이 끝까지!!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냐!! 화경의 고수라도 있었단 말이냐??”

“예!! 정말입니다. 화경의 고수! 정말 화경의 고수는 돼 보였습니다.”

“기룡표국에 화경의 고수가 있다는 말을 내게 믿으라는 게냐!!??”

“하지만 사실입니다!! 정말. 그는 정말 악마였습니다.”

시중 일관 무표정으로 보고를 듣던 천풍각이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대도를 들어 올렸다.

“감히 내 수하들을 버리고 네놈들만 살아서 돌아왔다??”

당장 자신의 수하들을 죽이려는 천풍각을 보고 마춘투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렸다.

“진정하시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않소.”

“그대는 지금 저 헛소리를 믿는 거요?? 내가 보기에는 그대의 수하가 우리의 수하를 죽이고 신물을 독차지했다고 생각하는데??”

“뭐요!? 우리 혈마파를 그런 치졸한 문파로 보는 것이오!?”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일단 진정하고 어땠는지 얘기를 들어봅시다!!”

쾅!!

천풍각의 거대한 도가 바닥에 깊게 박혔다.

“단 한마디의 헛소리라도 지껄인다면 목을 벨 것이오.”

꿀꺽-

살수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서 설명해 보거라!!”

“아, 예!! 그러니까 저희는 예정대로 공터에 자리를 잡고 기습을 위해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미남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 그것도 엄청난 미남이었습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움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천풍각의 눈빛에 신나서 지껄이던 살수 하나가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미남, 아니 고수만 아니었어도 저희는 성공했습니다.”

살수들은 자신들이 보고 느낀 민후의 검법을 떠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섭선이 가니까 모가지가 우수수.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니까 또다시 모가지가 우수수. 피가 터지고 비명이 들리니까 모가지가 우수수. 그건 검법이 아니었습니다.”

“맞아 맞아!! 그놈의 섭선이 휙휙 돌아가면 우리가 휙휙 나가떨어졌지.”

“거기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잘 생겼는지. 배 아파서 혼났다니까??”

“맞아 맞아!! 내가 여자였으면 분명 넘어갔…”

신나서 떠들던 살수들이 따갑게 느껴지는 살기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천풍각의 장포가 살기에 펄럭였다.

“내..오늘 네놈들을 모두 죽이지 않는다면 성을 갈겠다.”

끓어오리는 분노를 참지 못한 천풍각의 온몸이 떨려왔다.

서걱-

살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던 천풍각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살수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천풍각의 목을 베어버린 사람은 마춘투.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일어난 마춘투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신물은 포기한다! 하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얘들아!! 혈천파에 쳐들어가 모든 재물과 아녀자를 빼앗아라!!”

“예!!!”

오랜만에 여자를 품을 생각에 신이 난 살수들이 서둘러 혈천파로 향했다.

마춘투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천풍각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주제를 모르고 설쳤구나. 수하가 없으면 네놈은 더 이상 두렵지 않지. 흐흐흐. 네놈이 그동안 모아온 건 내가 잘 쓰겠다!! 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얼마 뒤 공터에 도착한 기룡표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곳곳에 낭자한 핏자국과 철이 지난 과일처럼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들.

참혹한 현장이었다.

꿀꺽-

새삼 민후의 무력에 천세현은 감탄했다.

‘저 많은 무인을 죽이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다!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어!? 왔소??”

바위에 걸터앉아 해맑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후의 모습은 심장에 좋지 않았다.

등 뒤에 내리쬐는 햇살이 한 폭에 그림 같았다.

“민~후~대~협~”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는 아낙네처럼 양팔을 휙휙 휘저으며 뛰어가는 천세현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푸훕!”

“우리 표위님이 대체 왜 저러시지??”

“그러게 말이야.”

한참을 달려가던 천세현이 민후 앞에 다소곳하게 멈춰 수줍은 미소를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민.후.대.협.”

끝말에 강조하며 입술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니오. 호위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럼 민후 대협. 앞서 얘기했던 몸의 보상은…”

바짝-

천세현의 허리춤을 부드럽게 감싸고 확 끌어당긴 민후가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바라봤다.

‘어머!! 민후 대협…’

서서히 다가오는 민후의 얼굴에 천세현이 두 눈을 꽉 감았다.

신명 난 콧바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입안에 자리한 혓바닥은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입술이 부딪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느껴지는 감각이 없자 눈을 뜬 천세현의 앞에 보이는 건 민후의 손등이었다.

“소저의 입술을 어찌 빼앗을 수 있겠소. 손등이면 만족하오.”

“아니, 제가 만족 못 합니다.”

“예??”

“아..아니 그게 아니라.”

쪽-

당황하는 천세현의 입술에 손등을 갖다 댄 민후가 천천히 떨어졌다.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구려. 고맙소.”

자신을 뒤로하고 멀어지는 민후의 뒷모습을 잡으려 손을 뻗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애절한 손끝보다 더 애절한 천세현의 입술은 아쉬움이 가득 느껴졌다.

“제 마음은 이리 쉽게 빼앗고, 어찌하여 입술은 빼앗지 않습니까…”



“흐..흐흐. 흐흐흐.”

울퉁불퉁한 길로 인해 심하게 달그락거리는 마차 안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 여인의 입술은 이리도 보드랍구나.”

천세현의 입술에 맞닿았던 손등을 보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전생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촉.

사실 민후는 그때 당시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 감촉을 입술로 느끼면… 끄아악!!”

아예 마차 안에 드러누워 하늘을 향해 발을 찼다.

민후와 친분이 생긴 마부도 그런 민후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고 기룡표국의 표사들은 민후의 마차와 거리를 조금 벌렸다.

멈칫-

그렇게 민후의 오두방정과 함께 길을 가던 기룡표국이 급하게 멈췄다.

‘강한 기운??’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민후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천(四川)]이라고 크게 적힌 녹색 깃발이 휘날렸다.

깃발을 들고 있는 무인의 표정에 자부심이 느껴졌고 그 뒤로 나열한 수십 명의 무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가장 앞에서 기품 있게 서 있던 무인 하나가 포권하며 천세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당구혈이라 하오.”

천세현은 말에서 내려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기룡표국에 천세현이라 합니다. 위명이 대단한 당구혈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천소저는 이 당구혈을 구름 위로 올려주시는구려.”

“아닙니다. 사천에서 사천귀신(四川鬼神) 당구혈 대협의 위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건 또 그렇소!! 천소저는 이제 걱정하지 마시오! 이 당구혈이 지켜드리겠소.”

“감사합니다! 그보다 물건은 확인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가주께서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으니 내가 볼 수는 없소. 우선 서둘러 출발하도록 하지.”

“예.”

펄럭!

커다란 깃발을 세차게 펄럭이며 방향을 틀은 당가의 무인들이 앞에서 이끌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민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당가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길 좋아하는군. 그나저나 지금 가주는 누가 됐으려나.’

전생에 사천당가는 오대 세가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가문이다.

거기에 가주 당독춘이 화경의 경지가 되면서 당가는 숨겼던 야욕을 펼쳤다.

무림맹을 집어삼키기 위해 많은 계략을 펼쳤었고 실제로 무림맹의 중요 요직을 당가의 사람으로 채우는 거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욕심이 화근이었다.

당독춘은 자신이 제일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전생의 민후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당독춘이 자랑하던 독공이 무참히 짓밟히고 그 시절 손속에 자비가 없었던 민후에게 단전이 파괴되며 가주직에서 물러났다고 들었다.

당독춘이 무너지고 힘이 약해진 당가는 다시 오대 세가의 말단으로 돌아갔고 무림맹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크크. 내가 되살아난 걸 그 노인네가 알면 배 아파서 두 번 죽겠지?? 크하하. 너무 좋구나.’

흠칫-

당구혈은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음침한 기운에 뒤를 돌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그 기운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기분 탓인가??’

잠깐 뒤쪽을 쳐다보던 당구혈은 이내 찝찝함을 털어버리고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당가로 향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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