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낙서는 모바일 기준으로 모바일과 피시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제와 무관한 댓글이나 스포일러, 악플은 경고조치 없이 삭제됩니다.
오매불망
뚱때
31. 운명의 장난

휘오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따스한 봄날이었지만 가부좌를 틀고 앉은 희의 주변으로 바람이 몰렸다.

그 바람의 기운이 너무나 거대해 일반 사람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모인 바람은 희의 몸을 감싸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윽-

천천히 일어난 희가 팔을 부드럽게 뻗자 팔을 통해 바람이 터져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펼쳐 하늘로 들어 올리자 바람이 구의 형태로 응축돼 모였다.

희는 낮게 외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제5식 풍구.”

쾅!!!

바람으로 만들어진 구가 정면으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자 나무가 터져버렸다.

‘굉장해!’

건장한 남자 열 명은 합쳐 놓은 듯한 굵기의 나무가 단 한방에 사라졌다.

희는 지금 화경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져도 되는 걸까?”

거기다 꿈속 사내를 만난 뒤로 심법을 운용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평상시에 절로 운용됐고 내공이 차곡차곡 쌓였다.

마르지 않는 샘. 지금 자신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라면!”

저벅- 저벅-

규칙적이고 가벼운 발걸음, 묘하게 설레는 느낌.

‘미주다.’

화경의 고수가 되면서 감각도 예전보다 예민해졌고 발걸음만으로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름 살금살금 오는 것을 보아하니 자신을 놀래키려고 하는 거 같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척. 당미주가 자신의 지척에 다다르자 희가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놀래켰다.

“왁!!!”

“으악!!”

깜짝 놀란 당미주가 뒤로 넘어지려고 하자 희가 손을 뻗어 당겼는데 그 모습은 마치 당미주가 희에게 안긴 거 같았다.

“어??”

“어!?”

얼굴을 붉히는 당미주. 심장이 세차게 뛰는 희.

당미주의 붉은 입술이 어쩔 줄 몰라하며 파르르 떨려왔다.

두근- 두근-

둘은 서서히 눈을 감았고 점점 서로를 향해 얼굴이 다가가는데···

“제자야!!”

‘저 망할 사부.’

···

“장주님!!! 아가씨가..아가씨가 용무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쿠당탕탕!

“뭐라고!??!”

어찌나 급하게 일어났는지 서류가 잔뜩 놓인 탁자가 뒤집혔다.

“어디냐!! 어서! 어서 안내해라!”

“예!!”

식솔을 따라서 간 곳에는 서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서야!!”

“아버지!!!”

와락-

얼싸안은 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괜찮느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예.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보고 싶었어요.”

황설횽은 그저 말없이 서서를 꼬옥, 아주 꼬옥 안아 주었다.

서서와 돌아온 용무는 급하게 전서구를 날려 마교와 싸우기 위해 출정한 황장서를 불렀다.

맹주의 계략에 의해서 싸운 것이기는 하나 황각대와 표사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두고 볼 수 없었던 황설횽은 황장서를 금옥대와 함께 보냈었다.

그런데 서서와 같이 돌아온 용무의 말에 의하면 마교도 광교의 세력에 의해서 뒤집어졌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고 말했다.

지금 마교와 싸울 때가 아닌 마교와 손을 합쳐 광교를 물리쳐야 할 때가 왔다고 전했다.

무림천하는 끝났다. 지금은 광교천하다.

“장주. 어서 당가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광교라··· 정말 광교가 맞는가?”

황설횽도 광교가 활기 치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광교의 악행, 그들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거짓말을 할 상황도 사람도 아닙니다.”

“광교라면 무림공적일터.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지. 주변 세력에게 모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들이 모두 믿을지가 문제입니다. 젊은 자든, 늙은 자든.”

“우선 사천당가에는 그대가 직접 가줄 수 있는가?”

“내일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고맙네! 우선 개방에 알려야겠네. 아! 혹시 개방도 광교의 손에 넘어간 건가??”

“개방이 무림맹에서 제외된 지 20년 째입니다.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믿을 수 있는 자들로 구성해서 빠르게 퍼트려주시게.”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용무가 밖으로 나갔고 열린 창틀 사이로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이 왠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

짹짹-

참새 부부가 아침을 알리며 울었다.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푹 잔 천혈천과 다르게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라는 사람과 밤을 보낸 혈연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 밑까지 내려온 눈그늘은 온 동네 사람들을 모두 불러 줄넘기를 해도 될 정도로 깊었다.

“흐아암.”

입이 찢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천혈천의 모습이 혈연은 얄밉기만 했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잔 탓에 뽀송뽀송해진 피부를 보니 더욱 열 받았다.

“잘 잤소??”

꿈틀-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정말 소교주만 아니었으면 턱에 당장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떻게 한 침대에서 처음 보는 남녀가 그것도 한창때인 남녀가 잠을 자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혈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천혈천이 짙은 눈그늘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자리가 꽤 불편했나 보군. 나는 오랜만에 잘 잤는데 말이지.”

“지금 그걸!!...”

피식-

“드디어 그 입을 열었네. 나는 소저가 말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소.”

“소교주!!...님을 안내한 게 저라는 걸 잊으셨나요?”

“잊을 뻔했지만 지금 딱 기억이 났네. 그럼 식사를 하러 내려가지.”

가볍게 몸을 일으킨 천혈천이 먼저 아래로 내려가자 혈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뒤따랐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전날 방을 안내해준 노파도 없었고 돈을 올려 두었던 탁자도 없었다.

“이게 무슨??”

사라진 거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저분했다. 그냥 원래부터 없었던 거 같았다.

천혈천보다 늦게 내려온 혈연도 토끼 눈을 뜨고 소리 질렀다.

“꺄아아악!!”

“윽! 소저! 절정의 고수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게 말이오!?”

“귀.. 귀신!!?”

포옥-

두 눈을 꼭 감은 혈연이 재빨리 천혈천에게 다가가 안겼다. 양쪽 귀를 틀어막은 채로 말이다.

“안 들린다··· 나는 안 들린다···”

절정의 고수, 십만 명의 마인을 이끄는 남자의 제자가 고작 귀신 하나에 이렇게 파르르 떨다니.

그 모습을 보는 천혈천은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소녀군.’

“그나저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이곳은 진작에 망한 객잔이였네.”

근 시일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어젯밤 들어온 자신들의 발자국뿐이었다.

“어서.. 어서 나가요.”

여전히 두 눈은 꼭 감고 자신의 팔을 슬쩍 밀며 뒤에 착 달라붙은 혈연을 보자 천혈천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겠네. 거참 신기한 곳이군.”

천혈천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그 뒤를 바짝 붙어서 혈연이 나가며 급하게 문을 닫으니 주방에서 빛이 났다.

어젯밤 둘을 안내한 노파가 허공에 둥둥 뜬 모습으로 나타났다.

“네놈과의 두 번째 약속을 지켰다. 쯧쯧. 망할 놈.”

···

다그닥 다그닥-

사천으로 향하는 길 위에 한 마리의 말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용무 같은 화경의 고수는 달려가는 게 더 빠르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힘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해서 말을 빌렸다.

산적도 마적도 몇 번 마주쳤지만 단 한 번의 손짓이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만난 개방의 거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형적인 뚱뚱한 거지가 바가지를 앞에 두고 동냥을 하고 있었다.

딸그락-

돈이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재빨리 든 거지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연신 굽신거렸다.

“아이고 귀하신 분이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걸수.”

찌릿-

개방의 방주 걸수. 지금은 개방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정사대전 당시에는 걸수라고 불렸다.

그 이름을 아는 거 자체가 보통사람이 아닌 정사대전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눈빛이 바뀐 거지가 경계하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무. 걸수에게 무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거면 됩니까?”

끄덕-

용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거지는 바가지를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개방의 방주가 이곳까지 오려면 적어도 수일은 걸린다.

그전에 사천당가로 가서 얘기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시간과 동선을 모두 챙길 수 있다.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말 위로 올라탄 용무는 당가로 향했다.

맹주의 계략에 의해서 멸문하고 봉문 당한 나머지 세가와 다르게 사천당가는 아직 건재했다.

웅장하고 전통 있는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히히힝-

말 한 마리가 문앞에 오더니 크게 울며 멈추자 문지기가 말을 걸었다.

“누구시오??”

“황금장에서 왔소.”

“황금장!?”

“예.”

품속에 넣어둔 황금색 패를 꺼내 보여주자 문지기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높으신 분을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오대세가가 무림맹에서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 위명까지 없애지는 못했는지 20년 전 왔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다른 문지기 한 명이 소식을 전했는지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당상문이 마중을 나왔다.

“용무!! 오랜만일세.”

“당가주, 반갑네.”

마치 오래된 친우라도 만난 거처럼 둘은 환한 미소를 띠었다.

“참!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서둘러 들어가는 당상문의 뒤를 따라가던 그때.

흠칫-

‘이 기운은?!’

뒤편에서 갑자기 그리운 기운이 느껴지자 다급하게 당상문을 불러 세운 뒤에 물었다.

“당가주! 저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응?? 그쪽에는 연무장이 있지.”

“잠깐 가볼 수 있겠는가?”

무림에서 다른 가문의 무공을 보는 것은 금기다. 그런데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용무가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하자 당상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지금은 내 딸아이랑 제자만 있을 테니 괜찮지.”

“제자??”

“오! 그래 내 제자를 소개해줘야겠네!”

희를 용무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 당상문이 재촉했다.

“어서, 어서 이리로 오게.”

“···”

굳은 표정으로 따라가는 용무는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

‘이 기운은 분명히···’

쾅!! 쾅!!

연무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주야!”

“아버지!?”

연무장에는 무공을 수련하고 있던 당미주와 뒤를 돌아 무언가 하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희랑 무공 수련을 하고 있던 게냐??”

‘희!?’

두근! 두근!

용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름이 같다!’

지금 당장 저기 뒤돌아 앉아 있는 남자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희야!”

앉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당경희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당경희는 일 장로 당경문의 아들로 당가에서 손꼽히는 고수다.

“경희구나! 오랜만에 보는군.”

“하하하.”

당경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용무는 맥이 탁 풀렸고 마음이 진정 됐다.

‘그렇지..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연무장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그저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한 용무는 당경희와 반갑게 인사하는 당상문에게 말했다.

“당가주, 그만 됐네.”

“응?? 연무장이 궁금했던 게 아닌가??”

고개를 좌우로 저은 용무가 몸을 돌렸다.

“괜찮네, 궁금한 건 모두 확인했으니.”

“허허.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아! 그전에 소개해주겠네.”

용무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내는 당미주를 보고 멈칫한 당상문이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내 딸아이, 미주라고 하네. 미주야 내 친우란다. 예를 다하거라.”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 당미주가 큰 소리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미주입니다.”

“반갑소.”

용무는 짧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리고 이쪽은 당경희, 우리 가문에서 주시하는 고수지.”

“당경희라 합니다. 가주께서는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아닐세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군, 반갑소.”

차례로 인사를 끝낸 용무는 재차 몸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참, 뭐가 그리 급한가.”

“급하다네, 그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네.”

“허허.”

용무가 먼저 가고 그 뒤를 당상문이 따라가는 이상한 모습이 됐지만 오랜 친우를 만난 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상문과 용무가 연무장을 나간 그 순간.

“흐아암.”

연무장 구석, 목각인형 사이에서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운용하던 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님이 오셨던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그냥 가셨네??”

용무는 틀리지 않았다.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희가 운용하던 심법은 풍항기금.

풍신 한혁진이 주로 운용했고 그걸 이어받은 풍희가 주로 이용하는 심법.

거기서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어색한 바람의 기운을 읽어냈던 거다.

“뭔가 그리운 기분이었는데.”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31. 운명의 장난

휘오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따스한 봄날이었지만 가부좌를 틀고 앉은 희의 주변으로 바람이 몰렸다.

그 바람의 기운이 너무나 거대해 일반 사람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모인 바람은 희의 몸을 감싸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윽-

천천히 일어난 희가 팔을 부드럽게 뻗자 팔을 통해 바람이 터져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펼쳐 하늘로 들어 올리자 바람이 구의 형태로 응축돼 모였다.

희는 낮게 외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제5식 풍구.”

쾅!!!

바람으로 만들어진 구가 정면으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자 나무가 터져버렸다.

‘굉장해!’

건장한 남자 열 명은 합쳐 놓은 듯한 굵기의 나무가 단 한방에 사라졌다.

희는 지금 화경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져도 되는 걸까?”

거기다 꿈속 사내를 만난 뒤로 심법을 운용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평상시에 절로 운용됐고 내공이 차곡차곡 쌓였다.

마르지 않는 샘. 지금 자신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라면!”

저벅- 저벅-

규칙적이고 가벼운 발걸음, 묘하게 설레는 느낌.

‘미주다.’

화경의 고수가 되면서 감각도 예전보다 예민해졌고 발걸음만으로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나름 살금살금 오는 것을 보아하니 자신을 놀래키려고 하는 거 같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척. 당미주가 자신의 지척에 다다르자 희가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놀래켰다.

“왁!!!”

“으악!!”

깜짝 놀란 당미주가 뒤로 넘어지려고 하자 희가 손을 뻗어 당겼는데 그 모습은 마치 당미주가 희에게 안긴 거 같았다.

“어??”

“어!?”

얼굴을 붉히는 당미주. 심장이 세차게 뛰는 희.

당미주의 붉은 입술이 어쩔 줄 몰라하며 파르르 떨려왔다.

두근- 두근-

둘은 서서히 눈을 감았고 점점 서로를 향해 얼굴이 다가가는데···

“제자야!!”

‘저 망할 사부.’

···

“장주님!!! 아가씨가..아가씨가 용무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쿠당탕탕!

“뭐라고!??!”

어찌나 급하게 일어났는지 서류가 잔뜩 놓인 탁자가 뒤집혔다.

“어디냐!! 어서! 어서 안내해라!”

“예!!”

식솔을 따라서 간 곳에는 서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서야!!”

“아버지!!!”

와락-

얼싸안은 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괜찮느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예.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보고 싶었어요.”

황설횽은 그저 말없이 서서를 꼬옥, 아주 꼬옥 안아 주었다.

서서와 돌아온 용무는 급하게 전서구를 날려 마교와 싸우기 위해 출정한 황장서를 불렀다.

맹주의 계략에 의해서 싸운 것이기는 하나 황각대와 표사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두고 볼 수 없었던 황설횽은 황장서를 금옥대와 함께 보냈었다.

그런데 서서와 같이 돌아온 용무의 말에 의하면 마교도 광교의 세력에 의해서 뒤집어졌고 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고 말했다.

지금 마교와 싸울 때가 아닌 마교와 손을 합쳐 광교를 물리쳐야 할 때가 왔다고 전했다.

무림천하는 끝났다. 지금은 광교천하다.

“장주. 어서 당가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광교라··· 정말 광교가 맞는가?”

황설횽도 광교가 활기 치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광교의 악행, 그들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거짓말을 할 상황도 사람도 아닙니다.”

“광교라면 무림공적일터.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지. 주변 세력에게 모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들이 모두 믿을지가 문제입니다. 젊은 자든, 늙은 자든.”

“우선 사천당가에는 그대가 직접 가줄 수 있는가?”

“내일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고맙네! 우선 개방에 알려야겠네. 아! 혹시 개방도 광교의 손에 넘어간 건가??”

“개방이 무림맹에서 제외된 지 20년 째입니다.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믿을 수 있는 자들로 구성해서 빠르게 퍼트려주시게.”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용무가 밖으로 나갔고 열린 창틀 사이로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이 왠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

짹짹-

참새 부부가 아침을 알리며 울었다.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푹 잔 천혈천과 다르게 살면서 처음으로 남자라는 사람과 밤을 보낸 혈연은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 밑까지 내려온 눈그늘은 온 동네 사람들을 모두 불러 줄넘기를 해도 될 정도로 깊었다.

“흐아암.”

입이 찢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천혈천의 모습이 혈연은 얄밉기만 했다.

오랜만에 잠을 푹 잔 탓에 뽀송뽀송해진 피부를 보니 더욱 열 받았다.

“잘 잤소??”

꿈틀-

‘저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정말 소교주만 아니었으면 턱에 당장 주먹을 꽂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떻게 한 침대에서 처음 보는 남녀가 그것도 한창때인 남녀가 잠을 자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혈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천혈천이 짙은 눈그늘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자리가 꽤 불편했나 보군. 나는 오랜만에 잘 잤는데 말이지.”

“지금 그걸!!...”

피식-

“드디어 그 입을 열었네. 나는 소저가 말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소.”

“소교주!!...님을 안내한 게 저라는 걸 잊으셨나요?”

“잊을 뻔했지만 지금 딱 기억이 났네. 그럼 식사를 하러 내려가지.”

가볍게 몸을 일으킨 천혈천이 먼저 아래로 내려가자 혈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뒤따랐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전날 방을 안내해준 노파도 없었고 돈을 올려 두었던 탁자도 없었다.

“이게 무슨??”

사라진 거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저분했다. 그냥 원래부터 없었던 거 같았다.

천혈천보다 늦게 내려온 혈연도 토끼 눈을 뜨고 소리 질렀다.

“꺄아아악!!”

“윽! 소저! 절정의 고수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게 말이오!?”

“귀.. 귀신!!?”

포옥-

두 눈을 꼭 감은 혈연이 재빨리 천혈천에게 다가가 안겼다. 양쪽 귀를 틀어막은 채로 말이다.

“안 들린다··· 나는 안 들린다···”

절정의 고수, 십만 명의 마인을 이끄는 남자의 제자가 고작 귀신 하나에 이렇게 파르르 떨다니.

그 모습을 보는 천혈천은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소녀군.’

“그나저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이곳은 진작에 망한 객잔이였네.”

근 시일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어젯밤 들어온 자신들의 발자국뿐이었다.

“어서.. 어서 나가요.”

여전히 두 눈은 꼭 감고 자신의 팔을 슬쩍 밀며 뒤에 착 달라붙은 혈연을 보자 천혈천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겠네. 거참 신기한 곳이군.”

천혈천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그 뒤를 바짝 붙어서 혈연이 나가며 급하게 문을 닫으니 주방에서 빛이 났다.

어젯밤 둘을 안내한 노파가 허공에 둥둥 뜬 모습으로 나타났다.

“네놈과의 두 번째 약속을 지켰다. 쯧쯧. 망할 놈.”

···

다그닥 다그닥-

사천으로 향하는 길 위에 한 마리의 말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용무 같은 화경의 고수는 달려가는 게 더 빠르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힘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해서 말을 빌렸다.

산적도 마적도 몇 번 마주쳤지만 단 한 번의 손짓이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만난 개방의 거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형적인 뚱뚱한 거지가 바가지를 앞에 두고 동냥을 하고 있었다.

딸그락-

돈이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재빨리 든 거지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연신 굽신거렸다.

“아이고 귀하신 분이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걸수.”

찌릿-

개방의 방주 걸수. 지금은 개방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정사대전 당시에는 걸수라고 불렸다.

그 이름을 아는 거 자체가 보통사람이 아닌 정사대전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눈빛이 바뀐 거지가 경계하며 말했다.

“누구십니까?”

“무. 걸수에게 무가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거면 됩니까?”

끄덕-

용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거지는 바가지를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개방의 방주가 이곳까지 오려면 적어도 수일은 걸린다.

그전에 사천당가로 가서 얘기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시간과 동선을 모두 챙길 수 있다.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말 위로 올라탄 용무는 당가로 향했다.

맹주의 계략에 의해서 멸문하고 봉문 당한 나머지 세가와 다르게 사천당가는 아직 건재했다.

웅장하고 전통 있는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히히힝-

말 한 마리가 문앞에 오더니 크게 울며 멈추자 문지기가 말을 걸었다.

“누구시오??”

“황금장에서 왔소.”

“황금장!?”

“예.”

품속에 넣어둔 황금색 패를 꺼내 보여주자 문지기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높으신 분을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오대세가가 무림맹에서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 위명까지 없애지는 못했는지 20년 전 왔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다른 문지기 한 명이 소식을 전했는지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당상문이 마중을 나왔다.

“용무!! 오랜만일세.”

“당가주, 반갑네.”

마치 오래된 친우라도 만난 거처럼 둘은 환한 미소를 띠었다.

“참!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서둘러 들어가는 당상문의 뒤를 따라가던 그때.

흠칫-

‘이 기운은?!’

뒤편에서 갑자기 그리운 기운이 느껴지자 다급하게 당상문을 불러 세운 뒤에 물었다.

“당가주! 저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응?? 그쪽에는 연무장이 있지.”

“잠깐 가볼 수 있겠는가?”

무림에서 다른 가문의 무공을 보는 것은 금기다. 그런데 그걸 모를 리가 없는 용무가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하자 당상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지금은 내 딸아이랑 제자만 있을 테니 괜찮지.”

“제자??”

“오! 그래 내 제자를 소개해줘야겠네!”

희를 용무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 당상문이 재촉했다.

“어서, 어서 이리로 오게.”

“···”

굳은 표정으로 따라가는 용무는 지금 머리가 복잡했다.

‘이 기운은 분명히···’

쾅!! 쾅!!

연무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주야!”

“아버지!?”

연무장에는 무공을 수련하고 있던 당미주와 뒤를 돌아 무언가 하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희랑 무공 수련을 하고 있던 게냐??”

‘희!?’

두근! 두근!

용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름이 같다!’

지금 당장 저기 뒤돌아 앉아 있는 남자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희야!”

앉아 있던 남자가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당경희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당경희는 일 장로 당경문의 아들로 당가에서 손꼽히는 고수다.

“경희구나! 오랜만에 보는군.”

“하하하.”

당경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용무는 맥이 탁 풀렸고 마음이 진정 됐다.

‘그렇지..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연무장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그저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한 용무는 당경희와 반갑게 인사하는 당상문에게 말했다.

“당가주, 그만 됐네.”

“응?? 연무장이 궁금했던 게 아닌가??”

고개를 좌우로 저은 용무가 몸을 돌렸다.

“괜찮네, 궁금한 건 모두 확인했으니.”

“허허.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아! 그전에 소개해주겠네.”

용무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내는 당미주를 보고 멈칫한 당상문이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내 딸아이, 미주라고 하네. 미주야 내 친우란다. 예를 다하거라.”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한 당미주가 큰 소리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미주입니다.”

“반갑소.”

용무는 짧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리고 이쪽은 당경희, 우리 가문에서 주시하는 고수지.”

“당경희라 합니다. 가주께서는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아닐세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군, 반갑소.”

차례로 인사를 끝낸 용무는 재차 몸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참, 뭐가 그리 급한가.”

“급하다네, 그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네.”

“허허.”

용무가 먼저 가고 그 뒤를 당상문이 따라가는 이상한 모습이 됐지만 오랜 친우를 만난 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상문과 용무가 연무장을 나간 그 순간.

“흐아암.”

연무장 구석, 목각인형 사이에서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운용하던 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님이 오셨던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그냥 가셨네??”

용무는 틀리지 않았다.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희가 운용하던 심법은 풍항기금.

풍신 한혁진이 주로 운용했고 그걸 이어받은 풍희가 주로 이용하는 심법.

거기서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어색한 바람의 기운을 읽어냈던 거다.

“뭔가 그리운 기분이었는데.”

작가의말

별점

회당별점 0점
별점주기

댓글을 작성할 수 없는 에피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