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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25. 드러난 맹주의 계획 3

스으윽-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 아래에 생긴 그림자가 한 차례 일렁였다.

서슬 퍼런 무기를 들고 그 주위를 서성이는 무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어젯밤 도박판의 얘기만 떠들어댔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아주 크게 걸었다 이거지.”

“그래서? 땄어???”

“당연히 따···”

스스슥-

“응??”

자신의 뺨을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멈칫한 무인이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래??”

“아니야, 어제 늦게 잤더니 피곤한가 봐.”

“허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자라고.”

“에잉, 오늘도 바짝 끌어모아야지! 하하하.”

피곤함에 잘못 느꼈다고 생각한 무인은 다시 제 갈 길로 걸어갔고 또 한 차례 그림자가 일렁였다.

펄럭-

어둠을 도포 삼아 몸을 가린 복면인이 품속에 지도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곳도 아니군.’

지도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발을 옮기려던 찰나.

멈칫-

더욱더 깊숙이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오대세가가 칼날을 뽑았습니다.”

흠칫-

순간 놀란 복면인이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약간 방출됐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맹주가 눈길을 돌렸다.

“누구냐!!”

두근. 두근.

복면인은 더 숨지도 그렇다고 나가지도 못하고 가슴만 졸이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맹주의 발을 보면서 침조차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나 맹주가 들을까 봐 말이다.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쪼르륵 흘러내렸고 오른손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검집을 받치고 있었다.

터벅- 터벅-

앞으로 세 걸음! 세 걸음만 더 다가오면 검을 뽑아 기습을 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전혀 없었다. 상대는 누가 뭐래도 신화경의 고수니까.

쿠당탕탕-

“맹주님!!!”

다급한 수하의 외침에 대답도 하지 않고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후 반대 발을 뻗는 중이었다.

“그년! 아니 황서서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자결을 시도합니다!”

멈칫-

공중에서 멈춘 맹주의 발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몸을 돌렸다.

“뭐라!?”

“맹주님의 명에 의해서 검을 뽑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당장 가자꾸나!!”

“예!!!”

후아!!

맹주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지금껏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죽는 줄 알았다. 정말.’

두근거리는 심장과 멈출 줄 모르는 식은땀이 복면인의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지금 황서서가 자결한다면 자신이 여기 와있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길!’

복면인은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고 지붕을 타고 맹주의 기운을 쫓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찾아 헤맬 필요가 없겠군, 맹주가 그곳으로 가니.’

···

은은하게 빛나는 하늘 위에 달에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타다닷-

지붕 위에 복면인이 강대한 맹주의 기운을 따라서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쏜살같이 옮기고 있었다.

멈칫-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춘 맹주에 맞춰 복면인도 걸음을 멈추고 기감을 끌어올렸고 소리에 집중했다.

“비켜라!!”

“예!!”

콰아앙!!!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안에서는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마!!”

비녀를 깎고 갈아 날카롭게 만든 뒤 그걸 무기로 썼다. 물론 자신을 찌를 무기로 말이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바로 찌를 거야.”

주륵-

끈적하고 따뜻한 피가 비녀를 따라서 흘러내렸다.

“당장 그만둬라!! 네년은 지금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냐!?”

“약속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바로 네놈 아니냐!!”

그러자 뒤편의 무인 한 명이 호통을 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푸욱! 주르르륵-

무인이 다가오는 걸 보고 서서가 목에 댄 비녀를 한 치 정도 더 찔러 넣자 맹주가 무인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동작 그만!!! 모두 움직이지 마라!”

“예!!”

휘오오-

열려 있는 작은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황금장의 안전!! 난 분명 그걸 말했지만 너는 지키지 않았다!”

지금 맹주는 끌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오라버니와 아버지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터!! 이 한 몸 던져 황금장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던지겠다!!”

꿀꺽-

맹주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없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황금장을 이용할 수 없을 거다.

“우선 거기서 내려와라. 어차피 그 뒤는 낭떠러지다.”

피식-

서서가 맹주를 보고는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

‘설마!?’

그때 맹주가 지면을 박차고 서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슉-

캉!

서서는 들고 있던 비녀에 기운을 담아 맹주에게 날렸고 그와 동시에 몸을 창문으로 던졌다.

하지만 맹주는 그깟 비녀에 상처 입을 정도로 약한 무인이 아니었고 서서가 창문으로 다 떨어지기 전 맹주가 서서의 발을 붙잡았다.

탁!

“이거 놔!!!”

“이년!! 넌 이제 끝ㅇ···!!”

스겅-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담긴 검이 자신의 손목을 자를 기세로 찔러오자 맹주는 다급하게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지만 손목이 깊게 파였다.

푸슉-

“그거 놔라.”

깊은 동굴 속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낮고 웅장한 울림소리가 맹주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열린 창문 틈으로 보이는 한 복면인이 서서를 안아 들고 날아가고 있었다.

“크윽!”

“매··· 맹주님!!”

한 무인이 급하게 다가와 지혈을 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맹주는 거칠게 손을 치고 명했다.

“어서 저 연놈들을 잡아라!!!”

“예!!!”

···

하아 하아-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깊게!”

“하아··· 더 이상은 못 들어가.”

“참아! 더 들어가야 해!! 아직 한참 멀었어.”

두 남녀의 뜨거운 숨결과 멈출 생각이 없는 숨소리가 점점 절정에 가까워졌다.

“하읏!!”

푸슉-

소녀는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아 신음을 삼켰고 옆에 남자가 대신 흘러나오는 액체를 막아주었다.

움찔 움찔-

소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서 있었다.

“앞으로 조금이야. 거기 허리를 조금만 들어봐.”

남자의 말에 소녀는 허리를 살짝 들었고 넣기 좋게 만들어졌다.

스으윽-

“빠르게 끝내야 해.”

끄덕-

소녀의 애절한 부탁에 남자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다리 사이에서 뽑은 긴 막대를 천천히 집어넣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더 쪼여??”

“충분해. 지금도 꽉 쪼였어.”

그러고는 품속에서 꺼낸 천으로 꽉 묶었다.

“됐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맹주의 손에 붙잡힌 서서가 다리를 접질려 도망가는데 차질이 생겼다.

결국 복면인은 지게를 만들어 서서의 몸을 고정해 그걸 자신의 몸에 꽉 묶었다.

안아 들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무기를 들 수 없으므로 이렇게 묶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꽉 잡아.”

“응.”

낯선 남자의 등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서서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몸을 기댔다.

“그런데 너는 누구야?”

“하아.. 하아..”

서서를 등에 업고 달리는 복면인은 꽤 힘에 부치는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고 말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파파팍-

“어서 찾아라!!”

뒤쪽에서 자신들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어두운 산속을 밝히는 횃불이 늘어났다.

“제길!”

“나를 두고 가.”

“뭐??”

“나를 두고 가면 너는 살아.”

“어이, 내가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해? 달빛이 아름다워 구경하러?? 바람에 날아서? 아니! 너를 구하러 온 거야! 그러니 말 시키지 말고 잠자코 있어!”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한테 자신을 두고 떠나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어느새 축축해진 등을 만져보고 서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 시진? 두 시진? 아마 한 시진 반 정도 달린 거 같다.

눈앞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고 서서를 업은 남자는 지체 없이 동굴로 들어갔다.

스팟- 쿠와왕!!

동굴에 들어온 남자는 어느새 뽑아든 검으로 동굴 외벽을 난도질했고 그에 맞춰 동굴의 외벽은 쉽게 부서져 입구를 틀어막았다.

“이러면 어디로!???”

말을 마친 서서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밝은 빛이었다.

“어떻게???”

빛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남자가 품속에서 꺼낸 돌멩이 두 개를 어딘가로 휙 던졌고 순간 주변이 일렁이더니 그 둘의 모습이 동굴에서 사라졌다.

···

“그 조건은 미주와 함께 가거라.”

“예!!??”

“좋아, 가도 좋지만 그러면 미주와 함께 전방에서 싸워라!”

“사부님!!! 그곳이 위험하···”

“그래! 위험하다! 하지만 너와 떨어진 미주도 위험하다! 차라리 너와 붙어서 전방에 뛰어난 무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

“사부님···”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그러면 너와 미주가 전방에서 함께 몰아붙여라!”

“사부님···”

“아버지···”

“그만! 그만 나가거라.”

쾅!

희와 당미주를 등 떠밀어 내쫓은 당상문이 문이 부서져라 닫았다.

문밖으로 밀려난 희와 당미주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마당에 있는 호수로 향했다.

퐁당- 퐁당-

호수가 보이는 작은 전각에 앉아 있는 당미주가 돌멩이를 하나씩 호수로 던졌다.

“뭐하는 거야??”

“희야. 혹시 너는 이런 생각 안 해봤니??”

“????”

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당미주를 바라봤고 당미주는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저 호수가 무림맹이야.”

“그런데??”

“이 돌멩이가 바로 우리지.”

“···”

“그런 돌멩이가 저 깊은 호수 아래 쌓이고 쌓인다면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흐음···”

잠깐 고민한 희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쌓이지 않아. 저 방대한 물에 치이고 치여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지고 옮겨지지. 저 호수보다 많은 돌멩이로 채우지 않는 이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

진지한 모습에 희는 조용히 당미주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던졌던 돌멩이가 우리라면 이 돌은 너야.”

갑자기 엄청난 크기에 돌을 낑낑거리며 들어 올리더니 호수에 던졌다.

풍덩!!!

출렁 출렁-

돌이 호수에 들어가자 엄청난 높이로 물이 솟구쳤고 그 물이 호수 밖으로 튀었다.

“너는 저렇게 물을 빼낼 수 있지. 나는 쌓이지만 너는 빼낼 수 있어. 그러니까 만약에 선택에 순간이 온다면···”

꿀꺽-

당미주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고 슬펐다.

“빼내는 선택을 해줘.”

“하지ㅁ···”

“쉿.”

당미주의 검지손가락이 희의 입술을 막았고 이내 기지개를 켜며 난간에 기댔다.

“으~ 이제 춥다! 들어가자.”

멀어지는 당미주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희가 그 뒤를 따라서 걸어갔다.

‘걱정하지 마. 나는 지킬 거야.’

···

퍼억-

“끄아악!!”

거친 발길질에 차여 피를 토해냈지만 남자는 힘겹게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맹···주님.. 죄..송합니다.”

퍼억!

“커헉!”

“내가! 꼭! 잡아! 오라고! 했지!”

자비 없는 맹주 화천주의 발길질에 남자는 어느새 몸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분노에 화천주는 손에 잡히는 모든 집기 구를 던져댔다.

“으아아아!!!!”

쨍그랑! 콰직-

“고···고정하십시오! 맹주!!”

“고정하십시오!!”

“닥쳐라!!!”

화천주는 무릎을 꿇은 수하들을 엄청난 살기로 쏘아봤다.

“감히!! 무림맹에 침입자를 허용해!?”

움찔-

무릎을 꿇은 수하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릴 뿐 말이 없었다.

“그놈은 대체 누구냐!!”

“그것이···”

콰직-

화천주가 내공을 가득 담은 손으로 고개를 들며 얘기하려던 수하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제부터 네놈이 정보단 단주다.”

자신의 옆에서 상관이 머리를 잃은 채 쓰러졌지만 소름 끼치는 화천주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했다.

“ㅇ···예!!”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놈은 대체 누구냐!?”

꿀꺽-

입안은 이미 바싹 말라 침이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른 침을 삼킨 남자는 하늘에 빌었다. 제발 이 대답이 맞기를.

“찾는 중입니다! 검은 복면에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든 살수로 특정했습니다.”

자신의 말에 맹주가 대답이 없자 슬며시 고개를 들으려고 할 때 화천주가 말을 이었다.

“찾는 중이라고 했느냐?”

“예!! 지금 나머지 정보단을 모두 풀어 정보를 수집하고 추적 중입니다.”

“네놈이 저놈보다 낫구나. 저 시체는 태워버려라.”

“예!!”

털썩-

의자에 몸을 기대앉은 화천주가 허공에 손을 휘젓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허.. 허공섭물!!’

“나가봐라.”

“예!!”

깊이 한숨을 쉰 화천주는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하나···’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25. 드러난 맹주의 계획 3

스으윽-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 아래에 생긴 그림자가 한 차례 일렁였다.

서슬 퍼런 무기를 들고 그 주위를 서성이는 무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어젯밤 도박판의 얘기만 떠들어댔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아주 크게 걸었다 이거지.”

“그래서? 땄어???”

“당연히 따···”

스스슥-

“응??”

자신의 뺨을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멈칫한 무인이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래??”

“아니야, 어제 늦게 잤더니 피곤한가 봐.”

“허허,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자라고.”

“에잉, 오늘도 바짝 끌어모아야지! 하하하.”

피곤함에 잘못 느꼈다고 생각한 무인은 다시 제 갈 길로 걸어갔고 또 한 차례 그림자가 일렁였다.

펄럭-

어둠을 도포 삼아 몸을 가린 복면인이 품속에 지도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곳도 아니군.’

지도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발을 옮기려던 찰나.

멈칫-

더욱더 깊숙이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오대세가가 칼날을 뽑았습니다.”

흠칫-

순간 놀란 복면인이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약간 방출됐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맹주가 눈길을 돌렸다.

“누구냐!!”

두근. 두근.

복면인은 더 숨지도 그렇다고 나가지도 못하고 가슴만 졸이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맹주의 발을 보면서 침조차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나 맹주가 들을까 봐 말이다.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쪼르륵 흘러내렸고 오른손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검집을 받치고 있었다.

터벅- 터벅-

앞으로 세 걸음! 세 걸음만 더 다가오면 검을 뽑아 기습을 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전혀 없었다. 상대는 누가 뭐래도 신화경의 고수니까.

쿠당탕탕-

“맹주님!!!”

다급한 수하의 외침에 대답도 하지 않고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후 반대 발을 뻗는 중이었다.

“그년! 아니 황서서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자결을 시도합니다!”

멈칫-

공중에서 멈춘 맹주의 발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몸을 돌렸다.

“뭐라!?”

“맹주님의 명에 의해서 검을 뽑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당장 가자꾸나!!”

“예!!!”

후아!!

맹주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지금껏 참아왔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죽는 줄 알았다. 정말.’

두근거리는 심장과 멈출 줄 모르는 식은땀이 복면인의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지금 황서서가 자결한다면 자신이 여기 와있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길!’

복면인은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고 지붕을 타고 맹주의 기운을 쫓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찾아 헤맬 필요가 없겠군, 맹주가 그곳으로 가니.’

···

은은하게 빛나는 하늘 위에 달에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타다닷-

지붕 위에 복면인이 강대한 맹주의 기운을 따라서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쏜살같이 옮기고 있었다.

멈칫-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춘 맹주에 맞춰 복면인도 걸음을 멈추고 기감을 끌어올렸고 소리에 집중했다.

“비켜라!!”

“예!!”

콰아앙!!!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안에서는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마!!”

비녀를 깎고 갈아 날카롭게 만든 뒤 그걸 무기로 썼다. 물론 자신을 찌를 무기로 말이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바로 찌를 거야.”

주륵-

끈적하고 따뜻한 피가 비녀를 따라서 흘러내렸다.

“당장 그만둬라!! 네년은 지금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냐!?”

“약속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바로 네놈 아니냐!!”

그러자 뒤편의 무인 한 명이 호통을 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푸욱! 주르르륵-

무인이 다가오는 걸 보고 서서가 목에 댄 비녀를 한 치 정도 더 찔러 넣자 맹주가 무인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동작 그만!!! 모두 움직이지 마라!”

“예!!”

휘오오-

열려 있는 작은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황금장의 안전!! 난 분명 그걸 말했지만 너는 지키지 않았다!”

지금 맹주는 끌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오라버니와 아버지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터!! 이 한 몸 던져 황금장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던지겠다!!”

꿀꺽-

맹주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없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황금장을 이용할 수 없을 거다.

“우선 거기서 내려와라. 어차피 그 뒤는 낭떠러지다.”

피식-

서서가 맹주를 보고는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

‘설마!?’

그때 맹주가 지면을 박차고 서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슉-

캉!

서서는 들고 있던 비녀에 기운을 담아 맹주에게 날렸고 그와 동시에 몸을 창문으로 던졌다.

하지만 맹주는 그깟 비녀에 상처 입을 정도로 약한 무인이 아니었고 서서가 창문으로 다 떨어지기 전 맹주가 서서의 발을 붙잡았다.

탁!

“이거 놔!!!”

“이년!! 넌 이제 끝ㅇ···!!”

스겅-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담긴 검이 자신의 손목을 자를 기세로 찔러오자 맹주는 다급하게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지만 손목이 깊게 파였다.

푸슉-

“그거 놔라.”

깊은 동굴 속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낮고 웅장한 울림소리가 맹주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열린 창문 틈으로 보이는 한 복면인이 서서를 안아 들고 날아가고 있었다.

“크윽!”

“매··· 맹주님!!”

한 무인이 급하게 다가와 지혈을 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맹주는 거칠게 손을 치고 명했다.

“어서 저 연놈들을 잡아라!!!”

“예!!!”

···

하아 하아-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깊게!”

“하아··· 더 이상은 못 들어가.”

“참아! 더 들어가야 해!! 아직 한참 멀었어.”

두 남녀의 뜨거운 숨결과 멈출 생각이 없는 숨소리가 점점 절정에 가까워졌다.

“하읏!!”

푸슉-

소녀는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아 신음을 삼켰고 옆에 남자가 대신 흘러나오는 액체를 막아주었다.

움찔 움찔-

소녀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서 있었다.

“앞으로 조금이야. 거기 허리를 조금만 들어봐.”

남자의 말에 소녀는 허리를 살짝 들었고 넣기 좋게 만들어졌다.

스으윽-

“빠르게 끝내야 해.”

끄덕-

소녀의 애절한 부탁에 남자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다리 사이에서 뽑은 긴 막대를 천천히 집어넣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더 쪼여??”

“충분해. 지금도 꽉 쪼였어.”

그러고는 품속에서 꺼낸 천으로 꽉 묶었다.

“됐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맹주의 손에 붙잡힌 서서가 다리를 접질려 도망가는데 차질이 생겼다.

결국 복면인은 지게를 만들어 서서의 몸을 고정해 그걸 자신의 몸에 꽉 묶었다.

안아 들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무기를 들 수 없으므로 이렇게 묶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꽉 잡아.”

“응.”

낯선 남자의 등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서서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몸을 기댔다.

“그런데 너는 누구야?”

“하아.. 하아..”

서서를 등에 업고 달리는 복면인은 꽤 힘에 부치는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고 말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파파팍-

“어서 찾아라!!”

뒤쪽에서 자신들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어두운 산속을 밝히는 횃불이 늘어났다.

“제길!”

“나를 두고 가.”

“뭐??”

“나를 두고 가면 너는 살아.”

“어이, 내가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해? 달빛이 아름다워 구경하러?? 바람에 날아서? 아니! 너를 구하러 온 거야! 그러니 말 시키지 말고 잠자코 있어!”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한테 자신을 두고 떠나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어느새 축축해진 등을 만져보고 서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 시진? 두 시진? 아마 한 시진 반 정도 달린 거 같다.

눈앞에 커다란 동굴이 보였고 서서를 업은 남자는 지체 없이 동굴로 들어갔다.

스팟- 쿠와왕!!

동굴에 들어온 남자는 어느새 뽑아든 검으로 동굴 외벽을 난도질했고 그에 맞춰 동굴의 외벽은 쉽게 부서져 입구를 틀어막았다.

“이러면 어디로!???”

말을 마친 서서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밝은 빛이었다.

“어떻게???”

빛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남자가 품속에서 꺼낸 돌멩이 두 개를 어딘가로 휙 던졌고 순간 주변이 일렁이더니 그 둘의 모습이 동굴에서 사라졌다.

···

“그 조건은 미주와 함께 가거라.”

“예!!??”

“좋아, 가도 좋지만 그러면 미주와 함께 전방에서 싸워라!”

“사부님!!! 그곳이 위험하···”

“그래! 위험하다! 하지만 너와 떨어진 미주도 위험하다! 차라리 너와 붙어서 전방에 뛰어난 무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

“사부님···”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그러면 너와 미주가 전방에서 함께 몰아붙여라!”

“사부님···”

“아버지···”

“그만! 그만 나가거라.”

쾅!

희와 당미주를 등 떠밀어 내쫓은 당상문이 문이 부서져라 닫았다.

문밖으로 밀려난 희와 당미주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마당에 있는 호수로 향했다.

퐁당- 퐁당-

호수가 보이는 작은 전각에 앉아 있는 당미주가 돌멩이를 하나씩 호수로 던졌다.

“뭐하는 거야??”

“희야. 혹시 너는 이런 생각 안 해봤니??”

“????”

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당미주를 바라봤고 당미주는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저 호수가 무림맹이야.”

“그런데??”

“이 돌멩이가 바로 우리지.”

“···”

“그런 돌멩이가 저 깊은 호수 아래 쌓이고 쌓인다면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흐음···”

잠깐 고민한 희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쌓이지 않아. 저 방대한 물에 치이고 치여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지고 옮겨지지. 저 호수보다 많은 돌멩이로 채우지 않는 이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아.”

진지한 모습에 희는 조용히 당미주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던졌던 돌멩이가 우리라면 이 돌은 너야.”

갑자기 엄청난 크기에 돌을 낑낑거리며 들어 올리더니 호수에 던졌다.

풍덩!!!

출렁 출렁-

돌이 호수에 들어가자 엄청난 높이로 물이 솟구쳤고 그 물이 호수 밖으로 튀었다.

“너는 저렇게 물을 빼낼 수 있지. 나는 쌓이지만 너는 빼낼 수 있어. 그러니까 만약에 선택에 순간이 온다면···”

꿀꺽-

당미주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고 슬펐다.

“빼내는 선택을 해줘.”

“하지ㅁ···”

“쉿.”

당미주의 검지손가락이 희의 입술을 막았고 이내 기지개를 켜며 난간에 기댔다.

“으~ 이제 춥다! 들어가자.”

멀어지는 당미주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희가 그 뒤를 따라서 걸어갔다.

‘걱정하지 마. 나는 지킬 거야.’

···

퍼억-

“끄아악!!”

거친 발길질에 차여 피를 토해냈지만 남자는 힘겹게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맹···주님.. 죄..송합니다.”

퍼억!

“커헉!”

“내가! 꼭! 잡아! 오라고! 했지!”

자비 없는 맹주 화천주의 발길질에 남자는 어느새 몸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분노에 화천주는 손에 잡히는 모든 집기 구를 던져댔다.

“으아아아!!!!”

쨍그랑! 콰직-

“고···고정하십시오! 맹주!!”

“고정하십시오!!”

“닥쳐라!!!”

화천주는 무릎을 꿇은 수하들을 엄청난 살기로 쏘아봤다.

“감히!! 무림맹에 침입자를 허용해!?”

움찔-

무릎을 꿇은 수하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릴 뿐 말이 없었다.

“그놈은 대체 누구냐!!”

“그것이···”

콰직-

화천주가 내공을 가득 담은 손으로 고개를 들며 얘기하려던 수하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제부터 네놈이 정보단 단주다.”

자신의 옆에서 상관이 머리를 잃은 채 쓰러졌지만 소름 끼치는 화천주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했다.

“ㅇ···예!!”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놈은 대체 누구냐!?”

꿀꺽-

입안은 이미 바싹 말라 침이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른 침을 삼킨 남자는 하늘에 빌었다. 제발 이 대답이 맞기를.

“찾는 중입니다! 검은 복면에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든 살수로 특정했습니다.”

자신의 말에 맹주가 대답이 없자 슬며시 고개를 들으려고 할 때 화천주가 말을 이었다.

“찾는 중이라고 했느냐?”

“예!! 지금 나머지 정보단을 모두 풀어 정보를 수집하고 추적 중입니다.”

“네놈이 저놈보다 낫구나. 저 시체는 태워버려라.”

“예!!”

털썩-

의자에 몸을 기대앉은 화천주가 허공에 손을 휘젓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허.. 허공섭물!!’

“나가봐라.”

“예!!”

깊이 한숨을 쉰 화천주는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하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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