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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20. 사천당가와 손을 잡다

서늘한 바람이 들어가고 어느덧 뼈를 아리는 추위가 감도는 겨울이 왔다.

휘이잉-

그런 추위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이 두 명의 사내가 사천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합니다.”

황장서의 호위무사인 환국이 말했다.

“너는 어떻게 보느냐?”

황장서는 저 멀리 사천당가의 건물이 웅장하게 보이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사천당가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거 같으냐?”

“예.”

환국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느냐?”

“오대세가가 무림맹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알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사천당가는 친우였던 맹주에게 뒤통수를 맞아 가장 큰 충격을 받았지요.”

“···”

“거기에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천당가에서 나머지 오대세가에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무림맹과 전쟁을 준비한다고 소문이 무성한 이 시기에 해명은커녕 오히려 오대세가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정말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되지요.”

황장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력을 돋아 사천당가의 건물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전쟁이라···”

···

파핫-

공중에 떠오른 희가 품속에 숨겨두었던 비수를 회전하며 던지자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결국 한 곳으로 돌아왔다.

파파파팍-

나무로 만들어진 목각 인형에 거침없이 박혔는데 그 모습을 보니 인형이 불쌍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퍼엉!

기를 담고 있던 비수가 폭발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지만 아쉽게도 자신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고 무공에 대한 기억만이 조금씩 돌아왔다.

짝짝짝-

지켜보던 당상문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박수를 쳤다.

“훌륭하구나!”

“아닙니다. 사부님에 비하면 제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예끼! 당연하지! 이 사부를 벌써 뛰어넘으려고 하면 어떡하느냐!”

당상문은 희를 가르치는 맛에 하루하루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고 그 곁에는 항상 당미주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버지!! 저도 칭찬해 주세요!”

고슴도치가 된 목각 인형은 희의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미주 앞에 목각 인형도 비수가 가득 꽂혀 있었다. 다만 그 위치가 제각각일 뿐이었다.

“허허. 그런데 어찌 그렇게 비수들이 휘청휘청하느냐? 미주야. 혹시 술을 마시고 던진 게냐?”

“아버지!!!”

당미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씩씩거렸다.

“사부님도 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미주가 상처받으면 어쩌시려고요!”

어느새 목각에서 비수를 뽑아 품에 집어넣으면서 희가 다가와 말했다.

“너가 더 나빠!!”

“아니 내가 왜?? 난 너 편들어 줬는데?”

“으으··· 짜증 나!”

당미주는 결국 땅을 깊게 푹푹 파며 돌아갔고 희와 당상문은 서로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미주를 따라서 들어갔다.

요즘 사천당가는 정신이 없었다.

오대세가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한편 무림맹에 들키지 않게 힘을 키워야 했다.

그 비밀병기가 바로 희였다.

희는 유일하게 맹주를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인물로 그 힘과 능력을 아직 세간에서 알지 못했다.

당상문은 직접 희에게 많은 강호의 지식을 알려주고 또 무공을 가르쳤다.

오늘도 희는 당상문과 당미주와 함께 호롱불 밑에 모였다.

“자 그러면 오늘은 황금장에 대해서 얘기해주마.”

지끈-

황금장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고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으윽···”

희가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자 당상문은 다급하게 의원을 불렀다.

“밖에 누구 없느냐!! 의원! 의원을 불러와라!!”

“괘..괜찮습니다. 잠깐 머리가 아팠을 뿐입니다. 어서 이야기를 해주십쇼.”

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황금장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괜찮으냐?”

“예. 정말 괜찮습니다.”

당상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곳은 황금장이다. 황금장에 척을 지면 돈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곳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지.”

“···”

“그런데 황금장이 최근에 무림맹에 꼼짝도 못 한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그렇게 대단한 곳이 왜요??”

“황금장의 공녀를 무림맹에서 데리고 있다고 그러더구나.”

“예?? 그러면 데려오면 되지 않나요??”

딱-

당상문은 희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고서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서 그리 쉽게 주겠느냐?? 그 엄청난 황금장을 주무를 기회인데? 그래서 아마 황금장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야.”

“붙잡힌 공녀가 불쌍해요.”

“그렇지. 더군다나 그 공녀는 황금장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단다.”

찌릿-

옆에 앉아있던 당미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찔러오자 당상문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미주가 더 아름답지만 말이지!! 하하하..”

“그 공녀의 이름이 뭐예요??”

“황서서라고 하더구나.”

멈칫-

“황···서서?”

갑자기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희의 모습은 어딘가 괴로워 보였다.

“희야!! 괜찮으냐?? 아까 머리···”

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아무런 말도 없이 무언가에 빠진 사람 같았다.

‘이 기분은 뭐지? 무언가 생각날 거 같은 이 기분은···?’

희가 눈을 감자 잔잔한 호수가 보였다.

그 호수는 작은 물결조차 없는 고요한 호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돌멩이가 호수의 가운데로 떨어지자 호수가 크게 요동쳤다.

출렁 출렁-

그리고 그 호수를 바라보는 두 명의 남녀 한 쌍이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검게 물들며 기억의 문이 닫혔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찾았지만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누굴까···’

“희야!!!”

정신을 놓고 있던 희는 당상문이 다급하게 몸을 흔들며 자신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사부! 죄송합니다.. 저 기억이 났어요!”

“기억이!? 너의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 거냐?”

“아닙니다. 일부, 정말 극히 일부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저는 황금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

이튿날이 지난 어느 날.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햇빛을 가리니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뉘시요??”

사천당가의 대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척 보기에도 잔뜩 헤져 허름한 무복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다가오자 말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품속에서 황금빛 패를 하나 꺼내 보여줬는데 문지기는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화···화···황!!!”

“쉿.”

사내는 다급하게 문지기의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속삭였다.

“가주님께 안내해주시오.”

문지기는 눈이 보름달만 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안내했다.

터벅 터벅-

문지기의 안내를 받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들어가자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

황장서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였다.

“어서 오시오.”

그중 상석에 앉아 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이 당가의 가주인 듯했다.

황장서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장서라 합니다.”

“허허. 황금의 공자가 아니신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하하, 겸손하시구려. 자 우선 앉으시게.”

“그런데···”

자리에 앉기 전 황장서가 나머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스윽 훑어보자 당상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이런! 내가 실수를 했구먼. 이쪽은 내 여식인 당미주라 하오.”

그러자 당미주는 가볍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미주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저가 그 유명한 삼룡사화 군요!? 듣던 대로 미모가 매우 아름답소.”

“과찬입니다.”

당미주와 황장서의 인사가 끝나자 당상문은 이어서 희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제자 당희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희도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고 황장서는 그런 희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보는 사내인데 어딘가 낯설지 않구나.’

“반갑소.”

그렇게 서로의 인사를 끝내자 황장서가 자리에 앉았고 당미주와 희도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황장서였다.

“요즘 사천당가의 위명이 어찌나 강대한지 작은 집에 머무는 저에게까지 들려오더군요.”

“공자님의 집이 작은 집이면 우리 당가의 집은 집이라고도 못하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오늘 직접 와서 보니 알겠군요. 사천당가라는 이름이 소문보다 더 강하다는 걸요.”

“저야말로 감탄했습니다. 공자님을 보고 있으니 마치 황장주님을 보고 있는 거로 착각이 들 정도군요.”

그렇게 서로 속마음을 숨기고 여러 말을 주고받던 당상문이 눈빛을 바꾸고는 말했다.

“그래, 이 먼 사천까지 공자님의 발걸음을 옮기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거 제가 너무 제 할 말만 했군요. 죄송합니다.”

당상문은 대답하지 않고 황장서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돌려 말하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손을 잡아주십시오.”

“손을??”

“들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요즘 저희 황금장에 대한 소문을.”

“크흡.. 뭐··· 요즘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괘념치 마십시오. 전부 사실입니다. 가주.”

“흐음..”

사실 황장서는 이렇게 얘기하면 같은 정파로써 당상문이 놀랄 거라 예상했지만 당상문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럴 만하다는 반응이었다.

“가주께서는 놀라지 않습니까? 그래도 맹주의 오랜 친우분이 아니신가요?”

반은 정말 궁금해서였고 반은 슬쩍 떠보는 말이었다.

그런데 당상문의 반응은 오히려 침착했다.

“놀랍습니다. 그 정도로 정파가 썩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 황설횽의 말은 정확했다. 유일하게 정파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가문이 있다면 사천당가 뿐일 것이다.

“부탁합니다. 저희 황금장의 손을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황장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당상문은 그런 황장서를 빤히 쳐다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고 황장서는 그 시간 동안 계속 허리를 굽히고 기다렸다.

“공자님.”

당상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황장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일어났지만, 그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고 느껴져서였는지 황장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예, 가주···”

피식-

당상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황장서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어찌 허리를 숙이십니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우끼리.”

“예!?”

황장서가 깜짝 놀라 다시 반문했지만 당상문의 반응은 같았다.

“갑시다.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가득 깔린 이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덥석-

“예!! 가주!!”

···

똑똑똑-

“들어오라.”

“맹주님을 뵙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나체의 여자들이 눈에 생기를 잃고 오직 흥분만이 가득한 몸으로 맹주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히 불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멈칫-

이에 보고를 하러 온 신리소 또한 건강한 남자인지라 말을 하지 못하고 멈칫하고 있자 맹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아, 예!! 당가에 어떤 남자 둘이 비밀스럽게 들어갔다는 보고입니다.”

“남자??”

“예! 문지기가 무어라 소리치려 할 때 그 남자가 손으로 입을 막아 정체를 듣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허허, 그럼 황금장인가?”

“아직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황금장은 아직도 침울한 분위기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러면 어쩌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

“우선 지금 맹에 있는 용무와 금옥대의 무기를 빼앗고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해야 합니다. 이들이 황금장에 합류한다면 골치 아픕니다.”

“그러는 게 좋겠구나. 그들은 지금 별채에 있느라 황금장에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지?”

“예, 확실하게 차단해 놨습니다.”

“그래 그만 나가보거라.”

“명..”

힘없이 대답한 신리소가 아름다운 여인들에 눈길을 뺏겨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그래 너도 남자지.”

“죄송합니다. 맹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다. 이리 와 보거라.”

신리소가 머뭇거리자 맹주가 여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자 갑자기 그 여인들이 모두 신리소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이···”

그렇게 신리소는 그날 밤 살면서 느끼지 못한 황홀하고 야릇한 밤을 보냈고 그 짧은 순간 때문에 금옥대를 놓치고 말았다.

타다닷-

무림맹의 분주한 움직임과 이따금 들려오는 무림맹 무사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지금 황금장이 큰 위기를 맞이한 거 같았다.

맹주에게 대화를 요청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를 수십 회, 용무는 금옥대와 함께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모두 맹을 떠났다.

대화를 위해 맹을 찾아왔지만, 대화를 위해 맹을 떠났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기회로 찾아왔다.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20. 사천당가와 손을 잡다

서늘한 바람이 들어가고 어느덧 뼈를 아리는 추위가 감도는 겨울이 왔다.

휘이잉-

그런 추위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이 두 명의 사내가 사천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합니다.”

황장서의 호위무사인 환국이 말했다.

“너는 어떻게 보느냐?”

황장서는 저 멀리 사천당가의 건물이 웅장하게 보이자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사천당가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거 같으냐?”

“예.”

환국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느냐?”

“오대세가가 무림맹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알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사천당가는 친우였던 맹주에게 뒤통수를 맞아 가장 큰 충격을 받았지요.”

“···”

“거기에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천당가에서 나머지 오대세가에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무림맹과 전쟁을 준비한다고 소문이 무성한 이 시기에 해명은커녕 오히려 오대세가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즉, 정말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되지요.”

황장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력을 돋아 사천당가의 건물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전쟁이라···”

···

파핫-

공중에 떠오른 희가 품속에 숨겨두었던 비수를 회전하며 던지자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결국 한 곳으로 돌아왔다.

파파파팍-

나무로 만들어진 목각 인형에 거침없이 박혔는데 그 모습을 보니 인형이 불쌍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퍼엉!

기를 담고 있던 비수가 폭발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조금씩 돌아왔지만 아쉽게도 자신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고 무공에 대한 기억만이 조금씩 돌아왔다.

짝짝짝-

지켜보던 당상문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박수를 쳤다.

“훌륭하구나!”

“아닙니다. 사부님에 비하면 제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예끼! 당연하지! 이 사부를 벌써 뛰어넘으려고 하면 어떡하느냐!”

당상문은 희를 가르치는 맛에 하루하루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고 그 곁에는 항상 당미주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버지!! 저도 칭찬해 주세요!”

고슴도치가 된 목각 인형은 희의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미주 앞에 목각 인형도 비수가 가득 꽂혀 있었다. 다만 그 위치가 제각각일 뿐이었다.

“허허. 그런데 어찌 그렇게 비수들이 휘청휘청하느냐? 미주야. 혹시 술을 마시고 던진 게냐?”

“아버지!!!”

당미주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씩씩거렸다.

“사부님도 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미주가 상처받으면 어쩌시려고요!”

어느새 목각에서 비수를 뽑아 품에 집어넣으면서 희가 다가와 말했다.

“너가 더 나빠!!”

“아니 내가 왜?? 난 너 편들어 줬는데?”

“으으··· 짜증 나!”

당미주는 결국 땅을 깊게 푹푹 파며 돌아갔고 희와 당상문은 서로 쳐다보더니 피식 웃고는 미주를 따라서 들어갔다.

요즘 사천당가는 정신이 없었다.

오대세가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한편 무림맹에 들키지 않게 힘을 키워야 했다.

그 비밀병기가 바로 희였다.

희는 유일하게 맹주를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인물로 그 힘과 능력을 아직 세간에서 알지 못했다.

당상문은 직접 희에게 많은 강호의 지식을 알려주고 또 무공을 가르쳤다.

오늘도 희는 당상문과 당미주와 함께 호롱불 밑에 모였다.

“자 그러면 오늘은 황금장에 대해서 얘기해주마.”

지끈-

황금장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고 머리가 지끈 아파져 왔다.

“으윽···”

희가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자 당상문은 다급하게 의원을 불렀다.

“밖에 누구 없느냐!! 의원! 의원을 불러와라!!”

“괘..괜찮습니다. 잠깐 머리가 아팠을 뿐입니다. 어서 이야기를 해주십쇼.”

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황금장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괜찮으냐?”

“예. 정말 괜찮습니다.”

당상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곳은 황금장이다. 황금장에 척을 지면 돈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곳에 영향력을 펼치고 있지.”

“···”

“그런데 황금장이 최근에 무림맹에 꼼짝도 못 한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그렇게 대단한 곳이 왜요??”

“황금장의 공녀를 무림맹에서 데리고 있다고 그러더구나.”

“예?? 그러면 데려오면 되지 않나요??”

딱-

당상문은 희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고서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서 그리 쉽게 주겠느냐?? 그 엄청난 황금장을 주무를 기회인데? 그래서 아마 황금장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야.”

“붙잡힌 공녀가 불쌍해요.”

“그렇지. 더군다나 그 공녀는 황금장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단다.”

찌릿-

옆에 앉아있던 당미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찔러오자 당상문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미주가 더 아름답지만 말이지!! 하하하..”

“그 공녀의 이름이 뭐예요??”

“황서서라고 하더구나.”

멈칫-

“황···서서?”

갑자기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희의 모습은 어딘가 괴로워 보였다.

“희야!! 괜찮으냐?? 아까 머리···”

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아무런 말도 없이 무언가에 빠진 사람 같았다.

‘이 기분은 뭐지? 무언가 생각날 거 같은 이 기분은···?’

희가 눈을 감자 잔잔한 호수가 보였다.

그 호수는 작은 물결조차 없는 고요한 호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돌멩이가 호수의 가운데로 떨어지자 호수가 크게 요동쳤다.

출렁 출렁-

그리고 그 호수를 바라보는 두 명의 남녀 한 쌍이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검게 물들며 기억의 문이 닫혔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찾았지만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누굴까···’

“희야!!!”

정신을 놓고 있던 희는 당상문이 다급하게 몸을 흔들며 자신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사부! 죄송합니다.. 저 기억이 났어요!”

“기억이!? 너의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 거냐?”

“아닙니다. 일부, 정말 극히 일부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 거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저는 황금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

이튿날이 지난 어느 날.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 햇빛을 가리니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뉘시요??”

사천당가의 대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척 보기에도 잔뜩 헤져 허름한 무복을 입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다가오자 말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품속에서 황금빛 패를 하나 꺼내 보여줬는데 문지기는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화···화···황!!!”

“쉿.”

사내는 다급하게 문지기의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속삭였다.

“가주님께 안내해주시오.”

문지기는 눈이 보름달만 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안내했다.

터벅 터벅-

문지기의 안내를 받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들어가자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가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

황장서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였다.

“어서 오시오.”

그중 상석에 앉아 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람이 당가의 가주인 듯했다.

황장서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장서라 합니다.”

“허허. 황금의 공자가 아니신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하하, 겸손하시구려. 자 우선 앉으시게.”

“그런데···”

자리에 앉기 전 황장서가 나머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스윽 훑어보자 당상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이런! 내가 실수를 했구먼. 이쪽은 내 여식인 당미주라 하오.”

그러자 당미주는 가볍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미주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저가 그 유명한 삼룡사화 군요!? 듣던 대로 미모가 매우 아름답소.”

“과찬입니다.”

당미주와 황장서의 인사가 끝나자 당상문은 이어서 희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제자 당희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희도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고 황장서는 그런 희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보는 사내인데 어딘가 낯설지 않구나.’

“반갑소.”

그렇게 서로의 인사를 끝내자 황장서가 자리에 앉았고 당미주와 희도 자리에 앉았다.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황장서였다.

“요즘 사천당가의 위명이 어찌나 강대한지 작은 집에 머무는 저에게까지 들려오더군요.”

“공자님의 집이 작은 집이면 우리 당가의 집은 집이라고도 못하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오늘 직접 와서 보니 알겠군요. 사천당가라는 이름이 소문보다 더 강하다는 걸요.”

“저야말로 감탄했습니다. 공자님을 보고 있으니 마치 황장주님을 보고 있는 거로 착각이 들 정도군요.”

그렇게 서로 속마음을 숨기고 여러 말을 주고받던 당상문이 눈빛을 바꾸고는 말했다.

“그래, 이 먼 사천까지 공자님의 발걸음을 옮기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거 제가 너무 제 할 말만 했군요. 죄송합니다.”

당상문은 대답하지 않고 황장서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돌려 말하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손을 잡아주십시오.”

“손을??”

“들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요즘 저희 황금장에 대한 소문을.”

“크흡.. 뭐··· 요즘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대니...”

“괘념치 마십시오. 전부 사실입니다. 가주.”

“흐음..”

사실 황장서는 이렇게 얘기하면 같은 정파로써 당상문이 놀랄 거라 예상했지만 당상문은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럴 만하다는 반응이었다.

“가주께서는 놀라지 않습니까? 그래도 맹주의 오랜 친우분이 아니신가요?”

반은 정말 궁금해서였고 반은 슬쩍 떠보는 말이었다.

그런데 당상문의 반응은 오히려 침착했다.

“놀랍습니다. 그 정도로 정파가 썩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버지 황설횽의 말은 정확했다. 유일하게 정파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가문이 있다면 사천당가 뿐일 것이다.

“부탁합니다. 저희 황금장의 손을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황장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당상문은 그런 황장서를 빤히 쳐다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고 황장서는 그 시간 동안 계속 허리를 굽히고 기다렸다.

“공자님.”

당상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황장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일어났지만, 그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고 느껴져서였는지 황장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예, 가주···”

피식-

당상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황장서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어찌 허리를 숙이십니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우끼리.”

“예!?”

황장서가 깜짝 놀라 다시 반문했지만 당상문의 반응은 같았다.

“갑시다.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가득 깔린 이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덥석-

“예!! 가주!!”

···

똑똑똑-

“들어오라.”

“맹주님을 뵙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나체의 여자들이 눈에 생기를 잃고 오직 흥분만이 가득한 몸으로 맹주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히 불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멈칫-

이에 보고를 하러 온 신리소 또한 건강한 남자인지라 말을 하지 못하고 멈칫하고 있자 맹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아, 예!! 당가에 어떤 남자 둘이 비밀스럽게 들어갔다는 보고입니다.”

“남자??”

“예! 문지기가 무어라 소리치려 할 때 그 남자가 손으로 입을 막아 정체를 듣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허허, 그럼 황금장인가?”

“아직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황금장은 아직도 침울한 분위기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러면 어쩌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

“우선 지금 맹에 있는 용무와 금옥대의 무기를 빼앗고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해야 합니다. 이들이 황금장에 합류한다면 골치 아픕니다.”

“그러는 게 좋겠구나. 그들은 지금 별채에 있느라 황금장에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지?”

“예, 확실하게 차단해 놨습니다.”

“그래 그만 나가보거라.”

“명..”

힘없이 대답한 신리소가 아름다운 여인들에 눈길을 뺏겨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그래 너도 남자지.”

“죄송합니다. 맹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다. 이리 와 보거라.”

신리소가 머뭇거리자 맹주가 여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자 갑자기 그 여인들이 모두 신리소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이···”

그렇게 신리소는 그날 밤 살면서 느끼지 못한 황홀하고 야릇한 밤을 보냈고 그 짧은 순간 때문에 금옥대를 놓치고 말았다.

타다닷-

무림맹의 분주한 움직임과 이따금 들려오는 무림맹 무사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지금 황금장이 큰 위기를 맞이한 거 같았다.

맹주에게 대화를 요청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를 수십 회, 용무는 금옥대와 함께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모두 맹을 떠났다.

대화를 위해 맹을 찾아왔지만, 대화를 위해 맹을 떠났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기회로 찾아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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