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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18. 맹주와 만나다

휘오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희의 주변으로 성난 바람이 잔뜩 불고 있었다.

‘그리운 기분···’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단전으로 모여들자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제자리로 돌아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날 왜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을까?’

자신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지만 기억을 하려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이런 그리운 감정과 뭔가 굉장히 중요한 거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절레절레-

희는 잡념을 떨쳐 내기 위해서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집중하자 집중!”

다시 눈을 지그시 감은 희는 단전에 가득 찬 내공을 진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끼이익-

오래된 나무문이 곡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당상문이 걸어 들어왔다.

“그래. 몸은 좀 어떠냐?”

천천히 눈을 뜬 희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보다 더 좋습니다. 그보다 사부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털썩-

희를 마주 보고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당상문이 미간을 찌푸리며 흘겨봤다.

“왜? 네놈은 이 사부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고 도망갈 테냐??”

“예!!? 아니요!! 사부님! 저를 뭐로 보시고! 절대!!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귓불까지 붉어져서는 손을 연신 흔들어대며 변명하는 희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

‘그래. 이런 녀석이니 내가 그걸 줬지.’

“그래! 욘석아! 어서 몸을 추슬러라! 빨리 가야 된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사부님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서 말인데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말이야.”

“뭐든 말만 하시죠 사부님! 제가 사부님의 부탁 하나 못 들어 드리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호?? 그래??? 나중에 딴 말하면 안 된다.”

“예!! 저만 믿으십시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는 모습에 당상문은 음흉한 미소를 보냈다.

···

밝게 빛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그런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반짝였다.

“어머. 예쁘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매끈한 몸매의 여인이 호수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앉았다.

‘쳇.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밝은 표정과 다르게 기감을 펼쳐 주위를 연신 살피고 있었다.

그러자 수풀 사이로 번쩍이는 안광이 보였고 그들은 저마다 다른 위치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오늘 날씨가 정말 좋구나.”

하지만 바위 위에 여자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해를 보고 누웠다.

삼룡사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천하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세 마리 용, 즉 세 명의 미 남자와. 네 개의 꽃, 즉 네 명의 미녀들.

그중 한 명인 천화 당미주가 맹기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맹주 일행이 당가에 머문 지 벌써 한 달이 다 돼 갔다.

하지만 이들은 갈 생각은커녕 오히려 당가의 주요 인물들에게 감시를 붙였고 거부의 의사를 표하면 호위라고 말하며 뻔뻔하게 나왔다.

“하아···”

어쩌다 오대세가라 불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사천당가가 이렇게 몰락했는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가···가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던 당미주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귀를 기울였다.

“가주! 가주님 오셨습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가주가 돌아왔다.

‘분명 당경문 장로께서 손을 썼을 텐데 어째서···’

당미주는 급하게 신법을 펼쳐 달려갔다.

퐁당-

그때 바위에 붙어 있던 돌 조각이 당미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잔잔하던 호수로 날아가 빠졌다.

출렁-

잔잔하던 호수에 작은, 아주 작은 돌 조각 하나가 빠지자 언제 잔잔했는지 싶을 정도로 거칠게 파도쳤다.

···

웅성웅성-

사천당가의 식솔들과 맹주와 맹기대들이 각기 다른 눈을 뜨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이익- 철컹

웅장한 대문이 열리자 오싹한 기운을 풍기는 당상문과 그 옆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당경문 일 장로가 가주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맹주가 가로채버렸다.

“이게 누구신가!? 당가주 오랜만일세!”

맹주 화천주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와 손을 건넸다.

당상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환한 미소로 맞장구쳤다.

“하하. 이거 맹주님께서 이 먼 곳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아닐세! 내 오랜 친우를 만나러 왔는데 어찌 무겁다고 할 수 있겠나!? 너무 가벼워서 한달음에 달려왔다네. 하하하!”

‘능글맞은 노인네 같으니라고.’

‘흥! 누가 믿을까 봐?’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눈치싸움을 할 때 멀리서 달려온 당미주가 인사했다.

“아버지!!”

보기 싫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느라 힘들었는데 사랑스러운 딸을 보자 얼굴의 근심이 모두 사라졌다.

“미주야!”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미주는 순식간에 당상문 앞에 가더니 와락 안겼다.

머쓱해진 화천주는 한 발 자국 멀어졌다.

- 아버지 왜 돌아오셨어요!

화천주가 멀어지자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옆에서 전음을 펼쳤다.

화천주 정도의 고수는 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펼치는 전음은 아무리 맹주라 하더라도 알 수 없었다.

- 걱정하지 말거라. 잘 됐단다.

- 하지만···.

더 전음을 펼치며 어색한 포옹을 계속했다가는 맹주가 눈치챌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상문은 미주를 살포시 떼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

당상문이 먼저 안으로 향하려고 하던 그때 화천주가 당상문의 손을 잡았다.

멈칫-

“왜 그러나?”

“허허. 당가주. 내가 여기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아나? 어서 보여주게나.”

“무엇을 말인가?”

화천주가 순간 폭발적인 기세를 터트렸다.

“그대를 저 멀리 산동까지 보낸 그것을 말일세.”

휘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솔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고 무인들은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언제든지 칼을 뽑고 이들과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상문은 오히려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우리 맹주는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온 건가?”

꿈틀-

화천주의 미간이 험상궂게 찌푸려졌다.

“보여주지. 그게 뭐 어렵다고.”

당상문이 몸을 돌리더니 멀뚱히 서 있는 소년에게 손짓했다.

“희야. 일로 오거라. 아! 아니지 당희야.”

당상문의 말에 순간 모든 사람이 희를 쳐다봤다.

특히 화천주의 눈은 불을 뿜는 거처럼 뜨겁게 달아 올라있었다.

“예. 사부님.”

그런데 걸어오는 희의 모습은 전혀 부담되지 않아 보였다.

엄청난 기운의 압박과 살광을 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다가와 화천주 앞에 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희라 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거도 아니고 그저 가벼운 포권.

심지어 묵례도 하지 않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째려보기까지 했다.

‘이 건방진 놈은 뭐지?’

“이놈! 무례하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맹기대원 하나가 서슬 퍼런 눈을 뜨고 달려 나오려고 하자 화천주가 손을 들어 막았다.

“화천주라 하네.”

화천주는 희에게 손을 건넸다.

누가 봐도 내력을 시험하려는 행위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당미주가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 잡지 마!!’

하지만 그런 당미주의 처절한 외침은 희에게 닿지 않았나 보다.

처억-

“아! 반갑습니다.”

휘오오오-

손을 마주 잡자 엄청난 내공이 손끝으로 몰렸고 희와 화천주의 옷이 내공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펄럭였다.

“흥!”

하지만 예상했던 범위였는지 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화천주의 내공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밀었다.

“큼.”

사실 화천주가 밀릴 내공은 아니었다.

화천주는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지만 신화경의 경지를 이룬 사람이다.

신화경의 무인이 잘 쳐야 초절정급인 무인한테 내공으로 밀린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화천주는 전혀 집중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순간이지만 분명.’

하지만 화천주는 생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내공을 모두 갉아먹을 듯이 올라오는 희의 내공을 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쿠웅-

서로의 내공이 손끝에서 부딪쳐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둘을 지켜보던 사천당가의 사람이나, 맹기대나, 서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어색한 장내의 분위기를 깬 사람은 당상문이다.

“맹주의 평은 어떻소? 내가 산동까지 간 보람이 있소??”

“크흠. 그렇네.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뭔가? 내가 아는 사람인 거 같아서 그러네.”

희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던 찰나에 당미주가 끼어들었다.

“당.희. 라고 저희 가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혹 듣지 못하셨나요?”

“아닐세. 내가 착각했나 보네.”

당상문이 한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가볼까?”

그런데 화천주는 도포를 펄럭이며 대문으로 향했다.

“아닐세. 옛 친우의 얼굴을 봤으니 이만 가보겠네. 만나서 즐거웠네.”

“허허. 이거 보자마자 가는 건가?”

“내가 꽤 오래 자리를 비워서 말일세.”

“하긴 우리 맹주님께서 얼마나 할 일이 많을꼬.”

“허허허. 그럼 가보겠네.”

“멀리 가지는 않겠네. 결국, 오해였구려. 나도. 당희도 말일세.”

‘단순히 오해라고? 흥.’

뒤를 돌아 걸어가는 화천주의 얼굴은 엄청나게 찌그러져 있었다.

···

“장주님!!! 더 이상 무리하시면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쾅!!!

황설횽은 걱정 가득한 장로의 말에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아직도!!! 어찌하여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장주···”

“이럴 때가 아니야. 무림맹에 어서 연락을 넣어야 해.”

“장주님 지금 그럴 때ㄱ···”

“아니 황실에 기별을 넣어야 하는가? 어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그 어떤 말에도 답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머리를 부여잡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는 황설횽을 보다 못한 장로가 탁자를 내리쳤다.

쾅!!

“장주!!!!”

그제야 황설횽이 자신을 바라보자 장로는 말을 이었다.

“우선 본진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곧 기별이 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어찌···”

“장주!!! 그럼 이만 짐을 챙기러 가보겠습니다.”

쾅!

보고를 마친 장로가 문을 세게 닫고는 나가자 황설횽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서야···”

···

또롱- 또롱-

‘차가워.’

눈이 가려진 채로 공중에 묶여 있는 서서의 머리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연신 떨어졌다.

‘여긴 어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구자환이 자신을 뒤로 물리고 정체불명의 고수들과 싸웠고 숨죽여 지켜봤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 지금 이곳에 묶여 있었다.

터벅 터벅-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힘을 썼지만 무언가에 턱 막힌 듯한 느낌이 들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각까지는 막지 못했는지 그들의 얘기 소리가 들렸고 집중했다.

“교대 시간이네.”

“어후··· 드디어? 늦게 온 거 아니지?”

“아니야. 어서 가보게. 오늘 저녁은 서씨가 만든 만두야.”

“오!!? 서씨 만두는 일품이지! 어서 가야겠네. 그럼 수고하게.”

그렇게 한 사내가 떠나고 나중에 온 사내가 자신의 앞에 선거 같았다.

그런데 그 사내의 손길이 이상했다.

“흐흐흐.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금화라지?”

얇은 천으로 만든 옷만 입고 있었는지 자신의 몸을 탐하는 사내의 거친 손길이 너무 뚜렷하게 느껴졌다.

스읍 하-

허벅지 근처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고 그 숨결은 서서의 몸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너도 마지막 가는 길 즐기고 싶지 않나? 그렇지?”

개소리 하지 마라!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라고 소리치며 저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손길은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다.

“흐흐흐. 아주 탐나는구나.”

허리선을 타고 천천히 올라오는 손끝의 굳은살이 점점 가슴으로 향했다.

철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내는 재빨리 자세를 잡고 섰다.

터벅 터벅-

한 백발의 노인이 걸어와서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명!!”

그러자 사내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고 서서와 노인만이 지하 동굴에 남았다.

“답답하지? 말도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고 특히 도망가고 싶을 거야.”

서걱-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서서의 몸을 지나가자 서서의 눈을 막고 있던 안대와 몸을 가려주던 옷이 잘려나갔다.

“!!!?!??”

서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츄릅-

그런데 그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었는지 노인은 눈물을 마셨다.

‘희야···’

그렇게 서서는 하늘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고 발정 난 노인의 무자비한 손길에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18. 맹주와 만나다

휘오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희의 주변으로 성난 바람이 잔뜩 불고 있었다.

‘그리운 기분···’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단전으로 모여들자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제자리로 돌아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날 왜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을까?’

자신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지만 기억을 하려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이런 그리운 감정과 뭔가 굉장히 중요한 거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절레절레-

희는 잡념을 떨쳐 내기 위해서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집중하자 집중!”

다시 눈을 지그시 감은 희는 단전에 가득 찬 내공을 진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끼이익-

오래된 나무문이 곡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당상문이 걸어 들어왔다.

“그래. 몸은 좀 어떠냐?”

천천히 눈을 뜬 희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보다 더 좋습니다. 그보다 사부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털썩-

희를 마주 보고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당상문이 미간을 찌푸리며 흘겨봤다.

“왜? 네놈은 이 사부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고 도망갈 테냐??”

“예!!? 아니요!! 사부님! 저를 뭐로 보시고! 절대!!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귓불까지 붉어져서는 손을 연신 흔들어대며 변명하는 희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

‘그래. 이런 녀석이니 내가 그걸 줬지.’

“그래! 욘석아! 어서 몸을 추슬러라! 빨리 가야 된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사부님의 염원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서 말인데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말이야.”

“뭐든 말만 하시죠 사부님! 제가 사부님의 부탁 하나 못 들어 드리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호?? 그래??? 나중에 딴 말하면 안 된다.”

“예!! 저만 믿으십시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는 모습에 당상문은 음흉한 미소를 보냈다.

···

밝게 빛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그런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반짝였다.

“어머. 예쁘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매끈한 몸매의 여인이 호수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앉았다.

‘쳇.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밝은 표정과 다르게 기감을 펼쳐 주위를 연신 살피고 있었다.

그러자 수풀 사이로 번쩍이는 안광이 보였고 그들은 저마다 다른 위치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오늘 날씨가 정말 좋구나.”

하지만 바위 위에 여자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해를 보고 누웠다.

삼룡사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천하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세 마리 용, 즉 세 명의 미 남자와. 네 개의 꽃, 즉 네 명의 미녀들.

그중 한 명인 천화 당미주가 맹기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맹주 일행이 당가에 머문 지 벌써 한 달이 다 돼 갔다.

하지만 이들은 갈 생각은커녕 오히려 당가의 주요 인물들에게 감시를 붙였고 거부의 의사를 표하면 호위라고 말하며 뻔뻔하게 나왔다.

“하아···”

어쩌다 오대세가라 불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사천당가가 이렇게 몰락했는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가···가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던 당미주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귀를 기울였다.

“가주! 가주님 오셨습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가주가 돌아왔다.

‘분명 당경문 장로께서 손을 썼을 텐데 어째서···’

당미주는 급하게 신법을 펼쳐 달려갔다.

퐁당-

그때 바위에 붙어 있던 돌 조각이 당미주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잔잔하던 호수로 날아가 빠졌다.

출렁-

잔잔하던 호수에 작은, 아주 작은 돌 조각 하나가 빠지자 언제 잔잔했는지 싶을 정도로 거칠게 파도쳤다.

···

웅성웅성-

사천당가의 식솔들과 맹주와 맹기대들이 각기 다른 눈을 뜨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이익- 철컹

웅장한 대문이 열리자 오싹한 기운을 풍기는 당상문과 그 옆에 한 소년이 들어왔다.

당경문 일 장로가 가주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했는데 맹주가 가로채버렸다.

“이게 누구신가!? 당가주 오랜만일세!”

맹주 화천주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와 손을 건넸다.

당상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환한 미소로 맞장구쳤다.

“하하. 이거 맹주님께서 이 먼 곳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아닐세! 내 오랜 친우를 만나러 왔는데 어찌 무겁다고 할 수 있겠나!? 너무 가벼워서 한달음에 달려왔다네. 하하하!”

‘능글맞은 노인네 같으니라고.’

‘흥! 누가 믿을까 봐?’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눈치싸움을 할 때 멀리서 달려온 당미주가 인사했다.

“아버지!!”

보기 싫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느라 힘들었는데 사랑스러운 딸을 보자 얼굴의 근심이 모두 사라졌다.

“미주야!”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미주는 순식간에 당상문 앞에 가더니 와락 안겼다.

머쓱해진 화천주는 한 발 자국 멀어졌다.

- 아버지 왜 돌아오셨어요!

화천주가 멀어지자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옆에서 전음을 펼쳤다.

화천주 정도의 고수는 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펼치는 전음은 아무리 맹주라 하더라도 알 수 없었다.

- 걱정하지 말거라. 잘 됐단다.

- 하지만···.

더 전음을 펼치며 어색한 포옹을 계속했다가는 맹주가 눈치챌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상문은 미주를 살포시 떼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

당상문이 먼저 안으로 향하려고 하던 그때 화천주가 당상문의 손을 잡았다.

멈칫-

“왜 그러나?”

“허허. 당가주. 내가 여기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아나? 어서 보여주게나.”

“무엇을 말인가?”

화천주가 순간 폭발적인 기세를 터트렸다.

“그대를 저 멀리 산동까지 보낸 그것을 말일세.”

휘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솔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고 무인들은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언제든지 칼을 뽑고 이들과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상문은 오히려 배를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우리 맹주는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온 건가?”

꿈틀-

화천주의 미간이 험상궂게 찌푸려졌다.

“보여주지. 그게 뭐 어렵다고.”

당상문이 몸을 돌리더니 멀뚱히 서 있는 소년에게 손짓했다.

“희야. 일로 오거라. 아! 아니지 당희야.”

당상문의 말에 순간 모든 사람이 희를 쳐다봤다.

특히 화천주의 눈은 불을 뿜는 거처럼 뜨겁게 달아 올라있었다.

“예. 사부님.”

그런데 걸어오는 희의 모습은 전혀 부담되지 않아 보였다.

엄청난 기운의 압박과 살광을 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다가와 화천주 앞에 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당희라 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거도 아니고 그저 가벼운 포권.

심지어 묵례도 하지 않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째려보기까지 했다.

‘이 건방진 놈은 뭐지?’

“이놈! 무례하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맹기대원 하나가 서슬 퍼런 눈을 뜨고 달려 나오려고 하자 화천주가 손을 들어 막았다.

“화천주라 하네.”

화천주는 희에게 손을 건넸다.

누가 봐도 내력을 시험하려는 행위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당미주가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제발 잡지 마!!’

하지만 그런 당미주의 처절한 외침은 희에게 닿지 않았나 보다.

처억-

“아! 반갑습니다.”

휘오오오-

손을 마주 잡자 엄청난 내공이 손끝으로 몰렸고 희와 화천주의 옷이 내공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펄럭였다.

“흥!”

하지만 예상했던 범위였는지 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화천주의 내공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밀었다.

“큼.”

사실 화천주가 밀릴 내공은 아니었다.

화천주는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지만 신화경의 경지를 이룬 사람이다.

신화경의 무인이 잘 쳐야 초절정급인 무인한테 내공으로 밀린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화천주는 전혀 집중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순간이지만 분명.’

하지만 화천주는 생각을 오래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내공을 모두 갉아먹을 듯이 올라오는 희의 내공을 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쿠웅-

서로의 내공이 손끝에서 부딪쳐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둘을 지켜보던 사천당가의 사람이나, 맹기대나, 서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어색한 장내의 분위기를 깬 사람은 당상문이다.

“맹주의 평은 어떻소? 내가 산동까지 간 보람이 있소??”

“크흠. 그렇네.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뭔가? 내가 아는 사람인 거 같아서 그러네.”

희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던 찰나에 당미주가 끼어들었다.

“당.희. 라고 저희 가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혹 듣지 못하셨나요?”

“아닐세. 내가 착각했나 보네.”

당상문이 한 걸음 나아가며 말했다.

“자! 그러면 이제 가볼까?”

그런데 화천주는 도포를 펄럭이며 대문으로 향했다.

“아닐세. 옛 친우의 얼굴을 봤으니 이만 가보겠네. 만나서 즐거웠네.”

“허허. 이거 보자마자 가는 건가?”

“내가 꽤 오래 자리를 비워서 말일세.”

“하긴 우리 맹주님께서 얼마나 할 일이 많을꼬.”

“허허허. 그럼 가보겠네.”

“멀리 가지는 않겠네. 결국, 오해였구려. 나도. 당희도 말일세.”

‘단순히 오해라고? 흥.’

뒤를 돌아 걸어가는 화천주의 얼굴은 엄청나게 찌그러져 있었다.

···

“장주님!!! 더 이상 무리하시면 몸이 버티지 못합니다!”

쾅!!!

황설횽은 걱정 가득한 장로의 말에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아직도!!! 어찌하여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장주···”

“이럴 때가 아니야. 무림맹에 어서 연락을 넣어야 해.”

“장주님 지금 그럴 때ㄱ···”

“아니 황실에 기별을 넣어야 하는가? 어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그 어떤 말에도 답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머리를 부여잡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는 황설횽을 보다 못한 장로가 탁자를 내리쳤다.

쾅!!

“장주!!!!”

그제야 황설횽이 자신을 바라보자 장로는 말을 이었다.

“우선 본진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곧 기별이 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어찌···”

“장주!!! 그럼 이만 짐을 챙기러 가보겠습니다.”

쾅!

보고를 마친 장로가 문을 세게 닫고는 나가자 황설횽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서야···”

···

또롱- 또롱-

‘차가워.’

눈이 가려진 채로 공중에 묶여 있는 서서의 머리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연신 떨어졌다.

‘여긴 어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구자환이 자신을 뒤로 물리고 정체불명의 고수들과 싸웠고 숨죽여 지켜봤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 지금 이곳에 묶여 있었다.

터벅 터벅-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힘을 썼지만 무언가에 턱 막힌 듯한 느낌이 들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각까지는 막지 못했는지 그들의 얘기 소리가 들렸고 집중했다.

“교대 시간이네.”

“어후··· 드디어? 늦게 온 거 아니지?”

“아니야. 어서 가보게. 오늘 저녁은 서씨가 만든 만두야.”

“오!!? 서씨 만두는 일품이지! 어서 가야겠네. 그럼 수고하게.”

그렇게 한 사내가 떠나고 나중에 온 사내가 자신의 앞에 선거 같았다.

그런데 그 사내의 손길이 이상했다.

“흐흐흐. 이게 바로 그 유명한 금화라지?”

얇은 천으로 만든 옷만 입고 있었는지 자신의 몸을 탐하는 사내의 거친 손길이 너무 뚜렷하게 느껴졌다.

스읍 하-

허벅지 근처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고 그 숨결은 서서의 몸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너도 마지막 가는 길 즐기고 싶지 않나? 그렇지?”

개소리 하지 마라!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라고 소리치며 저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의 손길은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다.

“흐흐흐. 아주 탐나는구나.”

허리선을 타고 천천히 올라오는 손끝의 굳은살이 점점 가슴으로 향했다.

철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내는 재빨리 자세를 잡고 섰다.

터벅 터벅-

한 백발의 노인이 걸어와서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명!!”

그러자 사내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고 서서와 노인만이 지하 동굴에 남았다.

“답답하지? 말도 하고 싶고 움직이고 싶고 특히 도망가고 싶을 거야.”

서걱-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서서의 몸을 지나가자 서서의 눈을 막고 있던 안대와 몸을 가려주던 옷이 잘려나갔다.

“!!!?!??”

서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츄릅-

그런데 그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었는지 노인은 눈물을 마셨다.

‘희야···’

그렇게 서서는 하늘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고 발정 난 노인의 무자비한 손길에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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