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낙서는 모바일 기준으로 모바일과 피시의 위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제와 무관한 댓글이나 스포일러, 악플은 경고조치 없이 삭제됩니다.
오매불망
뚱때
17. 풍희 천년설삼을 취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순백의 깃털로 몸을 뒤덮고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달빛을 피해 날아가는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비둘기는 종종 전서를 날릴 때 사용하는 유용한 조류였다.

하지만 얼마나 불쌍한가.

본래는 하늘 높이 비상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험의 삶을 살았을 비둘기가 사람의 욕심에 의해서 그저 정해진 곳으로만 날고 있으니···

그리고 그 비둘기들의 끝은 두 가지다.

병들고 늙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죽거나.

푸슉-

철부덕···

지금처럼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자연이 만들어낸 달빛을 피해 날아가던 비둘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비수를 피해내지 못하고 불쌍한 생을 마감했다.

고작 발목에 묶여 있는 이 종이? 또는 천 때문에 말이다.

비둘기는 죽으며 생각해본다.

날개가 없었다면, 나에게 다리가 있었다면.

그러면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

당상문은 하남을 지나 섬서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주위를 심하게 경계했다.

“사부님. 어찌 그리 긴장을 하십니까?”

“현 무림맹주가 누군지 아느냐?”

희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천주라는 화산파의 최고 고수다.”

“···”

“그런데 화산파가 바로 여기 섬서에 있지. 그게 무엇을 뜻하느냐?”

“아! 이곳에는 화산파의 눈과 귀가 많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사부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 그러느냐?”

“사부님은 사천당가라는 명문가의 수장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조심해야 합니까?”

당상문은 희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띠고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 너의 말이 맞다. 하지만 희야. 지금 무림맹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그들의 말은 곧 법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죄를 만들 수가 있지. 그게 그들의 정의인 거야.”

하늘을 바라보는 당상문의 눈빛이 슬퍼 보였기 때문에 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다 무림맹이 이리 됐을고..’

그렇게 희와 당상문은 숨을 죽이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섬서를 지나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됐어야 했다.

지금 눈앞에 이 불청객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당가주 아니신가?”

당상문은 마치 우연히 만난 거처럼 지껄이는 화산파의 일 장로 화구천의 얼굴을 보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천장로? 오랜만이구려.”

“허허.. 내 그렇게 찾아가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데 여기는 어쩐 일인가?”

‘정보가 샌 것인가?’

당산문은 화구천의 질문에 답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그 고민은 화구천의 한마디로 와장창 깨졌다.

“그래. 산동까지 갔다가 지금 오는 길인가?”

“ㅁ..뭐라!?”

“아아.. 그렇게 놀라지 말게. 우리가 워낙 듣는 귀가 많아서 그렇다네.”

‘전부. 내가 산동으로 떠났을 때부터 분명 지켜보고 있었던 게 분명해. 큰일 났군.’

“그래. 갔던 일은 잘 해결됐나?”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군.”

“허허.. 이거 섭섭하게 왜 이러나? 우리 사이에.”

“아니.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당상문이 말을 끊고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하려고 뒤를 도는 순간 화구천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천 년의 시간을 짧은가? 긴가? 아니면 허황된 시간인가?”

멈칫-

‘천년설삼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화구천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씹는 당상문의 표정을 보고 조소를 흘리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참! 내가 사실 이걸 말하려고 그랬는데 말이야. 이리로 오시게.”

“천장로! 내가 아까부터 바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허허.. 당가주님 성격은 여전하시구려. 그런데 정말 안 올 건가? 후회할 텐데 말이야.”

당상문은 거칠게 뒤를 돌아서 희의 손을 잡고 두세 걸음 앞으로 나아갔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화구천의 말에 멈춰버렸다.

“피를 흘리더군. 당경문이 말이야. 물론 손가락에서 조금 흘린 거지만 말이야.”

“뭐라!!?? 이놈!!”

당상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파핫-

당상문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눈 깜빡할 새에 화구천의 지척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화구천의 뒤에서 호위무사 두 명이 나타나 당상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는가? 후회할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놈!!! 감히 우리 당가를 욕보이는 게냐!!?”

당상문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눈앞에 호위무사들도 덩달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보다. 저 아해는 누구인가??”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희는 그저 눈만 끔뻑거리며 멀뚱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구천이 그제야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당상문의 당부도 있었고 척 보기에도 좋은 사이는 아닌 거 같으므로 희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당상문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지금 당장 그곳으로 안내하게!!”

“허허. 당가주 바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상문이 살기를 가득 담아 화구천을 째려보자 화구천은 너털너털 웃으며 안내했다.

터벅 터벅-

화구천이 안내하는 길은 꽤 깊은 산 속이었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가주. 주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게 이치 아닌가? 나는 이렇게 가주께 호의를 베푸는데 가주는 지금 나를 잡아먹을 듯이 보고 있지 않은가?”

“···”

“그래서 말인데. 보여주게나. 당가주의 무거운 발을 산동까지 끌어낸 그 천 년의 역사를.”

“···”

“거참. 당가주는 발뿐이 아니라 입도 참 무거운가 보오? 하하하.”

꾹꾹 참고 참던 당상문이 무어라 한마디를 하려던 찰나에 화구천이 멈췄다.

“자 다 왔소. 여기에 있소.”

“이건···”

···

“아가씨!! 서서 아가씨!!”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아가씨!!!”

산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외치는 말은 모두 같았다.

“서서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이런 젠장!!”

수색을 이끌던 간혁살이 거칠게 나무를 걷어차며 한탄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지신 거지!? 좀 더 넓게 찾아라!”

“예!!”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여깁니다!! 여기!!”

간혁살은 소리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 보이는 사람은 쓸쓸하게 죽어 있는 구자환뿐이었다.

때마침 황설횽의 부탁을 받고 흑산으로 향하던 용무도 도착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용무는 흑산산채와 결전을 펼쳐야 할 장간대가 수색을 벌이고 있자 의아하게 생각하고 빠르게 달려왔고 구자환의 처참한 몰골을 보았다.

“그게···”

간혁살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변명이 없어서 고개만 떨궜고 용무는 서둘러 구자환의 시체를 살폈다.

“독! 그것도 엄청난 극독이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아가씨는 어디 있느냐!?”

“사실. 흑산산채는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가씨를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간혁살은 머리를 땅에 박았는데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이마가 찢어져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용무가 충격에 몸을 휘청거렸다.

“용무님!!”

간혁살이 급하게 용무를 부축했고 수하들을 시켜 구자환의 시체를 챙겼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아가씨를 찾아야 해!! 지금 당장 수색범위를 넓히고 개방과 하오문에, 아니! 그냥 모든 정보단체에 연락해라!! 어서!!”

“예!!!”

우선 발이 빠른 자들을 먼저 하북으로 돌려보냈고 나머지는 흑산산채를 정리했다.

용무는 서둘러 산동의 있는 가장 큰 관아로 향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체된 지금 서서는 이미 하남으로 가고 있었다.

···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서 목과 몸이 분리된 채로 나무 위에 매달려 대롱대롱 바람에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사내가 단검의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는데 그 아래를 보니 비둘기의 다리가 흰 천을 달고 떨어져 있었다.

“이건.. 우리 당가의 전서구가 아닌가!?”

당상문이 서둘러 달려가려고 하자 그 앞을 화구천이 막아섰다.

“허허. 당가주! 뭐가 그리 급한가? 기다려 보시게.”

당상문은 내공을 끌어올려 손으로 화구천을 밀쳤는데 화구천도 예상을 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쿠웅-

밀어내려는 자와 막아내려는 자의 내력 다툼이 거세게 일어났고 그 폭풍은 세찬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지금 이 상황을 보며 희는 조금 전 당상문이 손에 쥐여 준 천년설삼을 품속에서 매만졌다.

당상문이 이걸 왜 자신에게 주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부는 지금 나에게 맡겼다. 미래를.’

“당가주! 의미 없는 힘겨루기는 이제 그만하지?”

“흥!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비켜라!!”

그때 단검을 핥던 사내가 비둘기 다리에 달린 천을 펼치더니 몸을 빙글 돌려가며 읽었다.

“가주! 맹주가 눈치챘습니다. 돌아오지 마십시오.”

멈칫- 쿵!!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당상문이 화구천의 내공에 밀려 약간 공중에 떴다가 떨어진 당상문의 입에서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크윽···”

하지만 당경문의 전서를 읽는 사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가증스러운 연기까지도 말이다.

“아아~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두 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가 다시 교차시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가~주~”

“이..이놈!!!!!”

당상문은 크게 분노했고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는데 조금 전 내력 다툼으로 인해서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굳게 다문 입 사이로 흐르는 검붉은 피를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을까?

갑자기 화구천이 말하던 사내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쨕!!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불경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하하. 죄송합니다. 장로님.”

짝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세게 맞았는데 부어오르기는커녕 빨갛게 변하지도 않은 것을 보아하니 연기한 거다.

‘명분을 만드는구나.’

“당가주. 이거 내가 미안하게 됐소. 내 대신 사과할 테니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시오. 대신 내가 이건 그냥 드리리다.”

화구천은 피를 흘리는 당상문 옆에 당경문의 전서를 살포시 내려놨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희 앞으로 다가오더니 품속을 뒤지려고 했지만 희의 반응도 빨랐다.

우측 다리를 부드럽게 돌려 화구천의 손길을 피한 뒤에 지면을 박차고 당상문의 옆으로 도약했다.

그러자 화구천은 아무 일도 아닌 거처럼 너털너털 웃으며 사라졌다.

희는 화산파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주위를 계속 경계했다.

“그만 됐다. 저들은 그저 우리에게 경고하려고 온 거야.”

“예.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쿨럭! 이놈아. 괜찮은 거로 보이냐!?”

당상문은 걱정을 시키기 싫었는지 평소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로 장난을 쳤지만, 그 정도 몸 상태도 못 알아볼 희가 아니었다.

“사부님.”

희는 비장하게 말하더니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드십시오.”

품속에서 꺼낸 건 필사적으로 지켜낸 천년설삼이다.

당상문은 천년설삼과 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네가 먹거라.”

“예!? 아닙니다! 이걸 드시고 내상을 치료하세요!”

“아니다. 너에게 줄 때부터 이것은 네 거였단다.”

“사부!!”

당상문의 행동은 날렵했다.

희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에 혈도를 짚었고 천년설삼을 희의 입속으로 넣고 혈도를 풀었다.

꿀꺽-

“사부!! 지금 ㅁ!!!”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입속으로 들어간 천년설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식도가 타는 거 같았고 몸속 장기를 지나칠 때마다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당상문은 희의 등에 손을 대고 내력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정신을 잃지 말고 집중해라!! 단전으로 이끌어라!”

당상문의 내공이 들어오자 타들어 가던 뜨거움이 약간 줄어들었고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희는 지금 물어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당상문의 말 대로 속에서 들끓는 내공을 단전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공을 진정시키던 희의 단전에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휘오오오-

등에 손을 대고 있던 당상문이 뒤로 밀려날 정도면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환골탈태!?”

그리고 그 엄청난 바람은 희의 몸을 포근하게 들어 올렸다.

스으윽-

공중에 떠오른 희는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몸을 띠운 바람이 갑자기 여러 갈래로 솟구쳐 오르더니 수백, 아니 수만 가닥으로 나뉘어 희의 단전을 찔렀다.

그러자 엄청난 빛과 함께 희의 몸이 가라앉았다.

“희야 정말 다행이다. 결국, 너는 빛났구나.”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17. 풍희 천년설삼을 취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순백의 깃털로 몸을 뒤덮고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달빛을 피해 날아가는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비둘기는 종종 전서를 날릴 때 사용하는 유용한 조류였다.

하지만 얼마나 불쌍한가.

본래는 하늘 높이 비상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험의 삶을 살았을 비둘기가 사람의 욕심에 의해서 그저 정해진 곳으로만 날고 있으니···

그리고 그 비둘기들의 끝은 두 가지다.

병들고 늙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죽거나.

푸슉-

철부덕···

지금처럼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자연이 만들어낸 달빛을 피해 날아가던 비둘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비수를 피해내지 못하고 불쌍한 생을 마감했다.

고작 발목에 묶여 있는 이 종이? 또는 천 때문에 말이다.

비둘기는 죽으며 생각해본다.

날개가 없었다면, 나에게 다리가 있었다면.

그러면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

당상문은 하남을 지나 섬서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주위를 심하게 경계했다.

“사부님. 어찌 그리 긴장을 하십니까?”

“현 무림맹주가 누군지 아느냐?”

희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천주라는 화산파의 최고 고수다.”

“···”

“그런데 화산파가 바로 여기 섬서에 있지. 그게 무엇을 뜻하느냐?”

“아! 이곳에는 화산파의 눈과 귀가 많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사부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 그러느냐?”

“사부님은 사천당가라는 명문가의 수장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조심해야 합니까?”

당상문은 희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띠고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래. 너의 말이 맞다. 하지만 희야. 지금 무림맹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그들의 말은 곧 법이다. 그들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죄를 만들 수가 있지. 그게 그들의 정의인 거야.”

하늘을 바라보는 당상문의 눈빛이 슬퍼 보였기 때문에 희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다 무림맹이 이리 됐을고..’

그렇게 희와 당상문은 숨을 죽이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섬서를 지나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됐어야 했다.

지금 눈앞에 이 불청객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당가주 아니신가?”

당상문은 마치 우연히 만난 거처럼 지껄이는 화산파의 일 장로 화구천의 얼굴을 보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 천장로? 오랜만이구려.”

“허허.. 내 그렇게 찾아가려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데 여기는 어쩐 일인가?”

‘정보가 샌 것인가?’

당산문은 화구천의 질문에 답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그 고민은 화구천의 한마디로 와장창 깨졌다.

“그래. 산동까지 갔다가 지금 오는 길인가?”

“ㅁ..뭐라!?”

“아아.. 그렇게 놀라지 말게. 우리가 워낙 듣는 귀가 많아서 그렇다네.”

‘전부. 내가 산동으로 떠났을 때부터 분명 지켜보고 있었던 게 분명해. 큰일 났군.’

“그래. 갔던 일은 잘 해결됐나?”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군.”

“허허.. 이거 섭섭하게 왜 이러나? 우리 사이에.”

“아니.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당상문이 말을 끊고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하려고 뒤를 도는 순간 화구천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천 년의 시간을 짧은가? 긴가? 아니면 허황된 시간인가?”

멈칫-

‘천년설삼까지 알고 있는 것인가...’

화구천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씹는 당상문의 표정을 보고 조소를 흘리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참! 내가 사실 이걸 말하려고 그랬는데 말이야. 이리로 오시게.”

“천장로! 내가 아까부터 바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허허.. 당가주님 성격은 여전하시구려. 그런데 정말 안 올 건가? 후회할 텐데 말이야.”

당상문은 거칠게 뒤를 돌아서 희의 손을 잡고 두세 걸음 앞으로 나아갔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화구천의 말에 멈춰버렸다.

“피를 흘리더군. 당경문이 말이야. 물론 손가락에서 조금 흘린 거지만 말이야.”

“뭐라!!?? 이놈!!”

당상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파핫-

당상문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눈 깜빡할 새에 화구천의 지척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화구천의 뒤에서 호위무사 두 명이 나타나 당상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는가? 후회할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놈!!! 감히 우리 당가를 욕보이는 게냐!!?”

당상문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눈앞에 호위무사들도 덩달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보다. 저 아해는 누구인가??”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희는 그저 눈만 끔뻑거리며 멀뚱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구천이 그제야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당상문의 당부도 있었고 척 보기에도 좋은 사이는 아닌 거 같으므로 희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당상문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지금 당장 그곳으로 안내하게!!”

“허허. 당가주 바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상문이 살기를 가득 담아 화구천을 째려보자 화구천은 너털너털 웃으며 안내했다.

터벅 터벅-

화구천이 안내하는 길은 꽤 깊은 산 속이었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런데 당가주. 주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게 이치 아닌가? 나는 이렇게 가주께 호의를 베푸는데 가주는 지금 나를 잡아먹을 듯이 보고 있지 않은가?”

“···”

“그래서 말인데. 보여주게나. 당가주의 무거운 발을 산동까지 끌어낸 그 천 년의 역사를.”

“···”

“거참. 당가주는 발뿐이 아니라 입도 참 무거운가 보오? 하하하.”

꾹꾹 참고 참던 당상문이 무어라 한마디를 하려던 찰나에 화구천이 멈췄다.

“자 다 왔소. 여기에 있소.”

“이건···”

···

“아가씨!! 서서 아가씨!!”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아가씨!!!”

산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외치는 말은 모두 같았다.

“서서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이런 젠장!!”

수색을 이끌던 간혁살이 거칠게 나무를 걷어차며 한탄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지신 거지!? 좀 더 넓게 찾아라!”

“예!!”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여깁니다!! 여기!!”

간혁살은 소리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 보이는 사람은 쓸쓸하게 죽어 있는 구자환뿐이었다.

때마침 황설횽의 부탁을 받고 흑산으로 향하던 용무도 도착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용무는 흑산산채와 결전을 펼쳐야 할 장간대가 수색을 벌이고 있자 의아하게 생각하고 빠르게 달려왔고 구자환의 처참한 몰골을 보았다.

“그게···”

간혁살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변명이 없어서 고개만 떨궜고 용무는 서둘러 구자환의 시체를 살폈다.

“독! 그것도 엄청난 극독이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아가씨는 어디 있느냐!?”

“사실. 흑산산채는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가씨를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간혁살은 머리를 땅에 박았는데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이마가 찢어져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용무가 충격에 몸을 휘청거렸다.

“용무님!!”

간혁살이 급하게 용무를 부축했고 수하들을 시켜 구자환의 시체를 챙겼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아가씨를 찾아야 해!! 지금 당장 수색범위를 넓히고 개방과 하오문에, 아니! 그냥 모든 정보단체에 연락해라!! 어서!!”

“예!!!”

우선 발이 빠른 자들을 먼저 하북으로 돌려보냈고 나머지는 흑산산채를 정리했다.

용무는 서둘러 산동의 있는 가장 큰 관아로 향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체된 지금 서서는 이미 하남으로 가고 있었다.

···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서 목과 몸이 분리된 채로 나무 위에 매달려 대롱대롱 바람에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 사내가 단검의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핥고 있었는데 그 아래를 보니 비둘기의 다리가 흰 천을 달고 떨어져 있었다.

“이건.. 우리 당가의 전서구가 아닌가!?”

당상문이 서둘러 달려가려고 하자 그 앞을 화구천이 막아섰다.

“허허. 당가주! 뭐가 그리 급한가? 기다려 보시게.”

당상문은 내공을 끌어올려 손으로 화구천을 밀쳤는데 화구천도 예상을 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쿠웅-

밀어내려는 자와 막아내려는 자의 내력 다툼이 거세게 일어났고 그 폭풍은 세찬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지금 이 상황을 보며 희는 조금 전 당상문이 손에 쥐여 준 천년설삼을 품속에서 매만졌다.

당상문이 이걸 왜 자신에게 주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부는 지금 나에게 맡겼다. 미래를.’

“당가주! 의미 없는 힘겨루기는 이제 그만하지?”

“흥!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비켜라!!”

그때 단검을 핥던 사내가 비둘기 다리에 달린 천을 펼치더니 몸을 빙글 돌려가며 읽었다.

“가주! 맹주가 눈치챘습니다. 돌아오지 마십시오.”

멈칫- 쿵!!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당상문이 화구천의 내공에 밀려 약간 공중에 떴다가 떨어진 당상문의 입에서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크윽···”

하지만 당경문의 전서를 읽는 사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가증스러운 연기까지도 말이다.

“아아~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두 팔을 하늘 위로 뻗었다가 다시 교차시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가~주~”

“이..이놈!!!!!”

당상문은 크게 분노했고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는데 조금 전 내력 다툼으로 인해서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굳게 다문 입 사이로 흐르는 검붉은 피를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을까?

갑자기 화구천이 말하던 사내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쨕!!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불경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하하. 죄송합니다. 장로님.”

짝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세게 맞았는데 부어오르기는커녕 빨갛게 변하지도 않은 것을 보아하니 연기한 거다.

‘명분을 만드는구나.’

“당가주. 이거 내가 미안하게 됐소. 내 대신 사과할 테니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시오. 대신 내가 이건 그냥 드리리다.”

화구천은 피를 흘리는 당상문 옆에 당경문의 전서를 살포시 내려놨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희 앞으로 다가오더니 품속을 뒤지려고 했지만 희의 반응도 빨랐다.

우측 다리를 부드럽게 돌려 화구천의 손길을 피한 뒤에 지면을 박차고 당상문의 옆으로 도약했다.

그러자 화구천은 아무 일도 아닌 거처럼 너털너털 웃으며 사라졌다.

희는 화산파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주위를 계속 경계했다.

“그만 됐다. 저들은 그저 우리에게 경고하려고 온 거야.”

“예.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쿨럭! 이놈아. 괜찮은 거로 보이냐!?”

당상문은 걱정을 시키기 싫었는지 평소보다 더 다정한 목소리로 장난을 쳤지만, 그 정도 몸 상태도 못 알아볼 희가 아니었다.

“사부님.”

희는 비장하게 말하더니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드십시오.”

품속에서 꺼낸 건 필사적으로 지켜낸 천년설삼이다.

당상문은 천년설삼과 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네가 먹거라.”

“예!? 아닙니다! 이걸 드시고 내상을 치료하세요!”

“아니다. 너에게 줄 때부터 이것은 네 거였단다.”

“사부!!”

당상문의 행동은 날렵했다.

희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에 혈도를 짚었고 천년설삼을 희의 입속으로 넣고 혈도를 풀었다.

꿀꺽-

“사부!! 지금 ㅁ!!!”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입속으로 들어간 천년설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식도가 타는 거 같았고 몸속 장기를 지나칠 때마다 타들어 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당상문은 희의 등에 손을 대고 내력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정신을 잃지 말고 집중해라!! 단전으로 이끌어라!”

당상문의 내공이 들어오자 타들어 가던 뜨거움이 약간 줄어들었고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희는 지금 물어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당상문의 말 대로 속에서 들끓는 내공을 단전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공을 진정시키던 희의 단전에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휘오오오-

등에 손을 대고 있던 당상문이 뒤로 밀려날 정도면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환골탈태!?”

그리고 그 엄청난 바람은 희의 몸을 포근하게 들어 올렸다.

스으윽-

공중에 떠오른 희는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몸을 띠운 바람이 갑자기 여러 갈래로 솟구쳐 오르더니 수백, 아니 수만 가닥으로 나뉘어 희의 단전을 찔렀다.

그러자 엄청난 빛과 함께 희의 몸이 가라앉았다.

“희야 정말 다행이다. 결국, 너는 빛났구나.”

작가의말

별점

회당별점 0점
별점주기

댓글을 작성할 수 없는 에피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