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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14. 당가로 향하다

독과 암기술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사천당가.

지금은 힘을 잃고 움츠리고 있지만 그 이름이 가진 힘은 예전 못지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흔들리는 마차 안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크흠.. 그래 너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희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희??”

“예. 희라는 말에 익숙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당상문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오늘부터 당희다 당희.”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어허. 어르신이라니. 이제 나를 사부라 부르거라.”

“예. 사부님.”

따스한 햇볕이 마차를 비춰주니 따스한 공기가 마차 안을 맴돌았다.

···

끼이익-

“황장충님과 표사들이 왔다! 어서 길을 열어라.”

“예!!”

황금장 내부의 식솔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표사들이 들어오자 저 멀리서 서서와 황설횽이 걸어왔다.

특히 서서의 표정이 가장 밝았는데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보아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고생 많았네!”

이윽고 황설횽이 한걸음 나와 수고의 인사를 전하자 황장충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닙니다. 장주님!”

“그래. 별일 없었는가?”

“그것이···”

그때 서서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희는 어딨나요??”

황설횽도 그제야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황장충을 바라봤고 황장충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희가··· 사라졌습니다.”

절벽의 흔적과 검을 두고 간 것을 보아 하면 절벽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했고 그 절벽에서 떨어졌다면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장주와 아가씨가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뒤에 있던 흥원수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말씀하기 어렵나 봅니다 장충님? 제가 대신 말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황설횽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저는 흥원수라 합니다. 광창님의 제자라 떠들고 다니지만 변변찮은 실력이라 딱히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아아, 얘기는 들었네. 그래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 하지만 오랜 표행 길에 피로가 상당하니 우선 짐부터 풀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미안하네. 내가 흥분해서 큰 실수를 범했구먼. 어서 짐들 풀게나. 그리고 장충과 자네는 두 시진 뒤에 집무실로 와주게.”

“예! 장주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일꾼들은 저마다 물건들을 옮기기 시작했고 흥원수는 시녀의 안내에 따라서 방으로 이동했다.

두 시진이 지나자 뜨겁게 비추던 해는 자취를 감추고 달빛이 서서히 올라오는 초저녁 황설횽의 집무실은 북적였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풍신, 아니 풍희가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쾅!!!

“뭐!!!??”

황설횽은 일부러 서서를 부르지 않았다.

서서가 무슨 마음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이 항설횽인데 둘의 얘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자 황설횽은 서서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전했고 이곳에는 황설횽과 장충, 흥원수 셋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아라!”

마른 침을 삼킨 황장충이 말했다.

“습격을 받았습니다. 흑산산채라 예상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흑산산채!? 감히 산적 나부랭이가 우리 황금장을 건드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황장충은 입을 굳게 다물었고 흥원수가 입을 열었다.

“산동에서 흑산산채의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으으···”

분노를 주체 하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던 황설횽은 황장충에게 말했다.

“당장 토벌단을 꾸려 내일 출발하라!”

“예!!”

황장충은 크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저.. 장주님. 광창님은 어디 계십니까?”

“광창님은 별채 옆에 있는 대장간에 있을 거네. 광창님께는 자네가 대신 전해줄 수 있겠는가?”

광창이 풍희를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는 황설횽은 차마 볼 면목이 없어서 흥원수에게 부탁했고 흥원수는 흔쾌히 끄덕였다.

그렇게 흥원수가 나가고 창밖을 바라보니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똑똑똑-

“들어오시게.”

캉! 캉!

문을 열자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망치질 소리와 뜨거운 화기가 안면을 강타했다.

“후아.. 사부님. 제자 왔습니다.”

“오오!! 가져왔느냐!”

“예. 사부님. 하지만 다른 걸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뭐라!? 요철을 못 챙겼느냐? 흑철을 못 챙겼느냐!? 흐음.. 둘 다 구하기 어려운데 이를 어쩔꼬···”

흥원수가 광창의 앞에 요철과 흑철을 올려두자 광창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농인 게냐?? 둘 다 여기 버젓이 있는 것이 아니냐?”

“농이 아닙니다. 주인을 두고 왔습니다. 주인을···”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산동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자신의 시험을 통과한 풍희의 모습을 말하자 광창은 자신의 자식이 통과한 듯 좋아했고 풍희가 습격을 받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얘기하자 크게 분노했다.

“해서 저는 이리로 왔습니다. 그 아이의 가는 길을 검으로 밝혀주고 싶습니다. 사부님.”

흥원수로부터 얘기를 모두 전해 들은 광창은 두 눈의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내!! 꼭 명검을 만들어! 그 검으로 산적놈들을 도륙하고 말 것이다.”

광창은 요철과 흑철을 집어 들더니 곧바로 풍신 풍희의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그리로 보내 너가 그리 떠나갔구나.. 참으로 미안하구나···”

광창의 망치질에는 슬픔이 묻어났고 그 마음을 아는지 요철과 흑철도 슬픈 곡소리를 내며 불 속으로 들어갔다.

···

지붕 위에 참새도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황금장은 먼지를 내뿜으며 바삐 움직였다.

“서둘러라!!”

“예!!”

황금장에는 딱 세 개의 주력 부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황각대(荒却隊), 장간대(障干隊), 금옥대(金玉隊).

황각대는 황금장 최고의 공격 부대로 최소 초일류의 고수로 이루어진 엄청난 공격대였다.

또 장간대는 최소 일류급 고수들로 이루어진 방어 부대로 대부분 본진에서 방비하거나 장주와 함께 움직인다.

마지막 금옥대는 돈으로 영입한 절정급 고수들로 이루어진 부대로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장주의 명으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아직 그들이 움직인 이력은 딱 한 번이었다.

장간대는 지금 황설횽과 함께 하북지부에 와있었고 본진은 황각대가 지키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 흑산산채 토벌에는 장간대와 표사들로 이루어진 70여 명의 어마어마한 인원이 투입됐다.

황설횽이 풍희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엿보였다.

끼이이익-

“장주! 다녀오겠습니다!”

장간대의 대주 간혁살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건넨 뒤에 힘차게 황금장을 나섰다.

황설횽은 그런 토벌단을 결연한 표정으로 보내주었고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서서는 아까부터 어디 간 거지?? 토벌단이 떠나는 것도 보지 않고.”

황설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선 밀린 일을 마무리하러 돌아갔다.

···

쾅!!!

“뭐!!? 다시 한 번 지껄여 보거라!! 살 삼인방이 어떻게 됐다고!!?”

“그···그게···”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시!! 시체가 돼서! 돌아왔습니다!!!”

황금장에 껴있던 절정의 고수를 없애기 위해서 투입된 살수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흑산산채 채주 흑혁추는 수하를 보내 알아봤다.

그런데 수하들이 가져온 것은 살수들의 유골과 한 명의 신분패뿐이었다.

“그러면 그 꼬마 녀석한테 또 당했다는 말인가!!!”

엄청난 기운이 압박해오자 보고를 하던 사람이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나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금장에서 토벌단을 보냈다는 보고입니다.”

“뭐!? 그놈들이 왜 토벌단을 보내나!? 우리가 보내도 모자랄 판에!”

“소문에 의하면 그 꼬마가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그럼 그 꼬마가 죽었다는 것이냐?”

“예. 그래서 황금장주가 크게 화를 내더니 토벌단을 꾸려 보냈다고 합니다.”

“크흠.. 얼마나 오느냐?”

“도망가셔야 합니다. 지금 저희로서는 막기 힘듭니다. 관도 황금장의 일이라면 한 발 뒤로 물러설 것이 분명합니다.”

황실과 황금장은 꽤 돈독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들의 재력을 생각한다면 그게 오히려 당연한 얘기였다.

아무리 흑산산채가 산동지역에서 관이랑 돈독하게 지낸다 한들 황실과 직접적인 연이 닿아 있는 황금장과 비교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올린 것을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야! 신중해라.”

“신중합니다!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아.. 정녕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때 한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채주님!!”

“감히! 말도 없이 무슨 짓이냐!!”

고개를 조아린 사내가 벌벌 떨면서도 말했다.

“왔습니다. 구세주가.”

“구세주??”

“예! 구세주입니다.”

터벅터벅-

보고하는 수하 뒤쪽으로 네 명의 사내가 거만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오던 사내들이 이윽고 수하의 뒤편에 도달하자 가장 짙은 기운을 가진 자가 채주를 바라보고 가볍게 포권했다.

“반갑소.”

흑혁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곳이 어디인가? 흑산산채가 아닌가. 그런데 자신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는 이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들이 누구이길래 구세주라 지껄이는 것이냐?”

“백 마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지요.”

순간 가만히 서 있던 사내들의 등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다.

쿠우웅-

대전이 흔들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뿜었고 그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수하는 바지에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흑혁추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저 세 사내를 자신이 나선다 하더라도 제압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나머지 한 사내가 저기에 가담한다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만하거라.”

“명!!”

대장 격으로 보이는 매부리코의 사내가 말을 하자 순간 기운을 모두 거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크흠.. 그래 그대들은 대체 누구시오?”

한층 부드러워진 말투로 흑혁추가 말을 걸었다.

“그것을 알 거 없소.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약속하겠소. 우리가 있다면 황금장에 밀리지 않을 것이오.”

흑혁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했다.

확실히 저자들의 무공 수위를 보아하니 최소 절정의 고수들이다.

저들이 있다면 자신들은 흑산을 피해 도망가지 않아도 되지만 너무나 수상했다.

“왜 그대들 같은 고수가 우리를 도와주는 게요?”

“아. 거래입니다. 거래.”

“거래?? 돈을 원하는 것이요?”

“하하! 돈? 아니요. 황금장 토벌단의 대장들 그들은 우리가 가져가겠소.”

“황금장의 대장?”

“그렇소. 토벌단으로 따라온 높은 자들을 우리가 가져가게 해준다면 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도와주겠소.”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산채를 지키려면 이들과 손을 잡는 방법 말고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래 그대들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하오?”

“나는 격근이라 부르면 되오, 그리고 이쪽부터 시작해서 격화, 격수, 격원이라 차례대로 부르면 되오.”

“알겠소. 그럼 잘 부탁하겠소. 여봐라! 이분들을 귀빈실로 안내하라!”

“예!!”

가볍게 포권을 하며 물러가는 네 명의 사내를 보고 흑혁추는 왠지 모를 찝찝함과 함께 희망이 엿보였다.

“어찌 됐든 산채를 지킨다면 좋은 거겠지.”

까악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대전의 위를 한 바퀴 돌다가 멀리 날아갔다.

···

무림맹 본진에 있는 맹주의 비밀 지하실.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그 비밀 지하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떻게 됐느냐?”

“예! 성공적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연하지! 하하하. 역시 훌륭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복덩이가 굴러왔습니다.”

“복덩이?”

“예! 황금장 공녀 황서서가 몰래 따라왔다고 합니다.”

쾅!!

“뭐!!? 그 망할 공녀가 따라 나왔다고!?”

“예! 아마도 황서서의 독단적인 행동인지 황금장도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좋다! 좋아!! 아주 좋아!! 더 좋은 인질이 생기겠구나!!”

“예.. 그렇지만 그만큼 더 위험해졌습니다.”

“위험?”

“황서서가 나왔다면 그 용무가 따라서 나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고민에 빠진 듯 턱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릎을 꿇고 보고하던 수하가 한 마디 보탰다.

“추살단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지??”

“지금 1조가 있고 복귀중인 비가 있습니다.”

“말고는 또 없는가?”

“예. 지금 모두 임무 수행 중입니다.”

“좋다. 그들을 보내거라. 돌아오면 크게 상을 주겠다고 말하라.”

“명!!”

보고를 마친 수하가 고개를 힘차게 숙인 뒤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난 맹주는 한쪽 벽면을 살피다가 어느 한 지점을 누르자 지하실이 크게 요동쳤다.

쿠르르릉-

이윽고 벌어진 벽 속에서 커다란 지도가 나와 있는데 그 지도에는 무수히 많은 X 표시가 있었는데 유독 한 군데도 X 표시가 없는 곳이 존재했다.

그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황금장’이라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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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14. 당가로 향하다

독과 암기술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던 사천당가.

지금은 힘을 잃고 움츠리고 있지만 그 이름이 가진 힘은 예전 못지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흔들리는 마차 안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크흠.. 그래 너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저 희라고 불린 것 같습니다.”

“희??”

“예. 희라는 말에 익숙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당상문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오늘부터 당희다 당희.”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어허. 어르신이라니. 이제 나를 사부라 부르거라.”

“예. 사부님.”

따스한 햇볕이 마차를 비춰주니 따스한 공기가 마차 안을 맴돌았다.

···

끼이익-

“황장충님과 표사들이 왔다! 어서 길을 열어라.”

“예!!”

황금장 내부의 식솔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표사들이 들어오자 저 멀리서 서서와 황설횽이 걸어왔다.

특히 서서의 표정이 가장 밝았는데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보아하니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듯했다.

“고생 많았네!”

이윽고 황설횽이 한걸음 나와 수고의 인사를 전하자 황장충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닙니다. 장주님!”

“그래. 별일 없었는가?”

“그것이···”

그때 서서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희는 어딨나요??”

황설횽도 그제야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황장충을 바라봤고 황장충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희가··· 사라졌습니다.”

절벽의 흔적과 검을 두고 간 것을 보아 하면 절벽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했고 그 절벽에서 떨어졌다면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장주와 아가씨가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뒤에 있던 흥원수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말씀하기 어렵나 봅니다 장충님? 제가 대신 말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황설횽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저는 흥원수라 합니다. 광창님의 제자라 떠들고 다니지만 변변찮은 실력이라 딱히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아아, 얘기는 들었네. 그래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 하지만 오랜 표행 길에 피로가 상당하니 우선 짐부터 풀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미안하네. 내가 흥분해서 큰 실수를 범했구먼. 어서 짐들 풀게나. 그리고 장충과 자네는 두 시진 뒤에 집무실로 와주게.”

“예! 장주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일꾼들은 저마다 물건들을 옮기기 시작했고 흥원수는 시녀의 안내에 따라서 방으로 이동했다.

두 시진이 지나자 뜨겁게 비추던 해는 자취를 감추고 달빛이 서서히 올라오는 초저녁 황설횽의 집무실은 북적였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풍신, 아니 풍희가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쾅!!!

“뭐!!!??”

황설횽은 일부러 서서를 부르지 않았다.

서서가 무슨 마음인지 가장 잘 아는 것이 항설횽인데 둘의 얘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자 황설횽은 서서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전했고 이곳에는 황설횽과 장충, 흥원수 셋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아라!”

마른 침을 삼킨 황장충이 말했다.

“습격을 받았습니다. 흑산산채라 예상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흑산산채!? 감히 산적 나부랭이가 우리 황금장을 건드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황장충은 입을 굳게 다물었고 흥원수가 입을 열었다.

“산동에서 흑산산채의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으으···”

분노를 주체 하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던 황설횽은 황장충에게 말했다.

“당장 토벌단을 꾸려 내일 출발하라!”

“예!!”

황장충은 크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저.. 장주님. 광창님은 어디 계십니까?”

“광창님은 별채 옆에 있는 대장간에 있을 거네. 광창님께는 자네가 대신 전해줄 수 있겠는가?”

광창이 풍희를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는 황설횽은 차마 볼 면목이 없어서 흥원수에게 부탁했고 흥원수는 흔쾌히 끄덕였다.

그렇게 흥원수가 나가고 창밖을 바라보니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똑똑똑-

“들어오시게.”

캉! 캉!

문을 열자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망치질 소리와 뜨거운 화기가 안면을 강타했다.

“후아.. 사부님. 제자 왔습니다.”

“오오!! 가져왔느냐!”

“예. 사부님. 하지만 다른 걸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뭐라!? 요철을 못 챙겼느냐? 흑철을 못 챙겼느냐!? 흐음.. 둘 다 구하기 어려운데 이를 어쩔꼬···”

흥원수가 광창의 앞에 요철과 흑철을 올려두자 광창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농인 게냐?? 둘 다 여기 버젓이 있는 것이 아니냐?”

“농이 아닙니다. 주인을 두고 왔습니다. 주인을···”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산동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자신의 시험을 통과한 풍희의 모습을 말하자 광창은 자신의 자식이 통과한 듯 좋아했고 풍희가 습격을 받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얘기하자 크게 분노했다.

“해서 저는 이리로 왔습니다. 그 아이의 가는 길을 검으로 밝혀주고 싶습니다. 사부님.”

흥원수로부터 얘기를 모두 전해 들은 광창은 두 눈의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내!! 꼭 명검을 만들어! 그 검으로 산적놈들을 도륙하고 말 것이다.”

광창은 요철과 흑철을 집어 들더니 곧바로 풍신 풍희의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그리로 보내 너가 그리 떠나갔구나.. 참으로 미안하구나···”

광창의 망치질에는 슬픔이 묻어났고 그 마음을 아는지 요철과 흑철도 슬픈 곡소리를 내며 불 속으로 들어갔다.

···

지붕 위에 참새도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황금장은 먼지를 내뿜으며 바삐 움직였다.

“서둘러라!!”

“예!!”

황금장에는 딱 세 개의 주력 부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황각대(荒却隊), 장간대(障干隊), 금옥대(金玉隊).

황각대는 황금장 최고의 공격 부대로 최소 초일류의 고수로 이루어진 엄청난 공격대였다.

또 장간대는 최소 일류급 고수들로 이루어진 방어 부대로 대부분 본진에서 방비하거나 장주와 함께 움직인다.

마지막 금옥대는 돈으로 영입한 절정급 고수들로 이루어진 부대로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장주의 명으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아직 그들이 움직인 이력은 딱 한 번이었다.

장간대는 지금 황설횽과 함께 하북지부에 와있었고 본진은 황각대가 지키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 흑산산채 토벌에는 장간대와 표사들로 이루어진 70여 명의 어마어마한 인원이 투입됐다.

황설횽이 풍희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엿보였다.

끼이이익-

“장주! 다녀오겠습니다!”

장간대의 대주 간혁살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건넨 뒤에 힘차게 황금장을 나섰다.

황설횽은 그런 토벌단을 결연한 표정으로 보내주었고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서서는 아까부터 어디 간 거지?? 토벌단이 떠나는 것도 보지 않고.”

황설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선 밀린 일을 마무리하러 돌아갔다.

···

쾅!!!

“뭐!!? 다시 한 번 지껄여 보거라!! 살 삼인방이 어떻게 됐다고!!?”

“그···그게···”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시!! 시체가 돼서! 돌아왔습니다!!!”

황금장에 껴있던 절정의 고수를 없애기 위해서 투입된 살수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흑산산채 채주 흑혁추는 수하를 보내 알아봤다.

그런데 수하들이 가져온 것은 살수들의 유골과 한 명의 신분패뿐이었다.

“그러면 그 꼬마 녀석한테 또 당했다는 말인가!!!”

엄청난 기운이 압박해오자 보고를 하던 사람이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나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금장에서 토벌단을 보냈다는 보고입니다.”

“뭐!? 그놈들이 왜 토벌단을 보내나!? 우리가 보내도 모자랄 판에!”

“소문에 의하면 그 꼬마가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그럼 그 꼬마가 죽었다는 것이냐?”

“예. 그래서 황금장주가 크게 화를 내더니 토벌단을 꾸려 보냈다고 합니다.”

“크흠.. 얼마나 오느냐?”

“도망가셔야 합니다. 지금 저희로서는 막기 힘듭니다. 관도 황금장의 일이라면 한 발 뒤로 물러설 것이 분명합니다.”

황실과 황금장은 꽤 돈독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들의 재력을 생각한다면 그게 오히려 당연한 얘기였다.

아무리 흑산산채가 산동지역에서 관이랑 돈독하게 지낸다 한들 황실과 직접적인 연이 닿아 있는 황금장과 비교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올린 것을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이야! 신중해라.”

“신중합니다!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아.. 정녕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때 한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채주님!!”

“감히! 말도 없이 무슨 짓이냐!!”

고개를 조아린 사내가 벌벌 떨면서도 말했다.

“왔습니다. 구세주가.”

“구세주??”

“예! 구세주입니다.”

터벅터벅-

보고하는 수하 뒤쪽으로 네 명의 사내가 거만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느긋하게 걸어오던 사내들이 이윽고 수하의 뒤편에 도달하자 가장 짙은 기운을 가진 자가 채주를 바라보고 가볍게 포권했다.

“반갑소.”

흑혁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곳이 어디인가? 흑산산채가 아닌가. 그런데 자신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는 이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들이 누구이길래 구세주라 지껄이는 것이냐?”

“백 마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지요.”

순간 가만히 서 있던 사내들의 등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다.

쿠우웅-

대전이 흔들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뿜었고 그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수하는 바지에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흑혁추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저 세 사내를 자신이 나선다 하더라도 제압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나머지 한 사내가 저기에 가담한다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만하거라.”

“명!!”

대장 격으로 보이는 매부리코의 사내가 말을 하자 순간 기운을 모두 거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크흠.. 그래 그대들은 대체 누구시오?”

한층 부드러워진 말투로 흑혁추가 말을 걸었다.

“그것을 알 거 없소.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히 약속하겠소. 우리가 있다면 황금장에 밀리지 않을 것이오.”

흑혁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했다.

확실히 저자들의 무공 수위를 보아하니 최소 절정의 고수들이다.

저들이 있다면 자신들은 흑산을 피해 도망가지 않아도 되지만 너무나 수상했다.

“왜 그대들 같은 고수가 우리를 도와주는 게요?”

“아. 거래입니다. 거래.”

“거래?? 돈을 원하는 것이요?”

“하하! 돈? 아니요. 황금장 토벌단의 대장들 그들은 우리가 가져가겠소.”

“황금장의 대장?”

“그렇소. 토벌단으로 따라온 높은 자들을 우리가 가져가게 해준다면 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도와주겠소.”

“흐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산채를 지키려면 이들과 손을 잡는 방법 말고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래 그대들의 이름은 무어라 불러야 하오?”

“나는 격근이라 부르면 되오, 그리고 이쪽부터 시작해서 격화, 격수, 격원이라 차례대로 부르면 되오.”

“알겠소. 그럼 잘 부탁하겠소. 여봐라! 이분들을 귀빈실로 안내하라!”

“예!!”

가볍게 포권을 하며 물러가는 네 명의 사내를 보고 흑혁추는 왠지 모를 찝찝함과 함께 희망이 엿보였다.

“어찌 됐든 산채를 지킨다면 좋은 거겠지.”

까악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대전의 위를 한 바퀴 돌다가 멀리 날아갔다.

···

무림맹 본진에 있는 맹주의 비밀 지하실.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그 비밀 지하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떻게 됐느냐?”

“예! 성공적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연하지! 하하하. 역시 훌륭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복덩이가 굴러왔습니다.”

“복덩이?”

“예! 황금장 공녀 황서서가 몰래 따라왔다고 합니다.”

쾅!!

“뭐!!? 그 망할 공녀가 따라 나왔다고!?”

“예! 아마도 황서서의 독단적인 행동인지 황금장도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좋다! 좋아!! 아주 좋아!! 더 좋은 인질이 생기겠구나!!”

“예.. 그렇지만 그만큼 더 위험해졌습니다.”

“위험?”

“황서서가 나왔다면 그 용무가 따라서 나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고민에 빠진 듯 턱에 난 수염을 매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무릎을 꿇고 보고하던 수하가 한 마디 보탰다.

“추살단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지??”

“지금 1조가 있고 복귀중인 비가 있습니다.”

“말고는 또 없는가?”

“예. 지금 모두 임무 수행 중입니다.”

“좋다. 그들을 보내거라. 돌아오면 크게 상을 주겠다고 말하라.”

“명!!”

보고를 마친 수하가 고개를 힘차게 숙인 뒤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난 맹주는 한쪽 벽면을 살피다가 어느 한 지점을 누르자 지하실이 크게 요동쳤다.

쿠르르릉-

이윽고 벌어진 벽 속에서 커다란 지도가 나와 있는데 그 지도에는 무수히 많은 X 표시가 있었는데 유독 한 군데도 X 표시가 없는 곳이 존재했다.

그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황금장’이라 쓰여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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