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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9. 대장장이 광창

“하앗!!”

풍희가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도약했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풍희의 주변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고 품에 손을 빠르게 넣었다 빠르게 뺐다.

파파파팟-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된 허수아비가 충격에 흔들렸다.

풍희는 구자환에게 배운 비도술을 모두 습득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수련했다.

그래서 그런지 풍희의 모습은 일급 살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수를 잘 날렸다.

“완벽하구나.”

“감사합니다!”

풍희는 구자환을 선배, 동료를 넘어서 한 명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배운 비도술은 앞으로 자신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고 덕분에 자신의 목표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도술은 그만하면 됐구나. 이제 검법을 수련해 보거라.”

라고 말하며 구자환이 목검을 풍희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목검을 받아든 풍희는 어리둥절하며 구자환을 바라봤다.
그런데 구자환은 이미 다리를 넓게 벌리고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대련만큼 좋은 수련은 없지. 들어와라.”

풍희는 목검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치셔도 모릅니다!”

순간 풍희는 지면을 빠르게 박차고 도약했다.

구자환은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일체 움직임이 없었다.

순식간에 지척에 도착한 풍희는 그대로 우측 어깨를 향해 목검을 내질렀다.

슈욱!!!

구자환은 움직이지도 않고 몸을 살짝 틀었다.

너무 쉽게 풍희의 목검이 허공을 갈랐고 자세가 무너진 풍희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구자환의 눈빛은 매서웠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지금 너는 한 번 죽었다.”

“크흡!”

입술을 꽉 깨문 풍희는 축이 되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대로 회전했다.

탁!

하지만 회전력을 담은 풍희의 목검이 손쉽게 막혔다.

막힌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구자환은 보이지 않는 속도의 쾌검으로 빠르게 찔렀다.

풍희는 지금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막아가고 있었다.

탁! 푹. 탁! 푹.

모든 공격을 막지 못하고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풍희는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렸다.

드디어 구자환의 발이 움직였다.

멀어지는 풍희에게 빠르게 달라붙은 구자환은 조금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도 검을 빠르게 내질렀다.

몸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공격을 피해 봤지만 허리, 어깨에 틀어박힌 검격에 풍희는 신음을 쏟아냈다.

“크흑!”

풍희와 구자환의 발이 지면에 닿았을 때 구자환은 자세를 순간 낮추더니 풍희의 무릎이 접히는 부분을 가격했다.

퍼억!!

“으악!”

풍희는 고통에 소리치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고 목 앞에는 구자환의 목검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벌써 두 번이나 죽었구나.”

풍희는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째려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분했다. 자신에게 너무 분했다.

자신이 강해졌다고 자만해 방심했고 그 방심은 패배로 이어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수치스럽게 패배했다.

구자환은 목검을 거두고 뒤를 돌았다.

“그 분함을 기억해라. 그러면 강해질 것이다.”

풍희는 뒤돌아가는 구자환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직 준비가 부족하구나. 조금 더 마음을 수련하거라.”

그 말을 끝으로 구자환은 연무장을 나갔다.

풍희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서히 일어선 풍희의 눈빛은 그전과 달라졌다.

“너무 자만했다.”

자신을 너무 자만했다. 자신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이 정도 실력으로 부모님의 복수를 하겠다고 들떠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직이다. 아직은 움츠릴 때야.’

햇볕이 가장 많이 내리쬐는 연무장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자만을 버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급했던 마음을 자책하며 마음을 비우고자 심법을 운용했다.

휘오오-

편안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갑자기 집중을 깨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이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험상궂게 생긴 노인 한 명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그 노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풍희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쁘지 않은 무골이구나.”

처음 보는 노인이 자신을 평가하자 풍희는 약간의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껄껄. 성깔도 있구나.”

노인의 뒤에서 구자환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내가 말한 괴팍한 노인이 이분이다.”

“이놈! 괴팍하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쯧쯧.”

얼마 전 구자환이 비도술을 가르쳐 주면서 말했던 괴짜 노인이 바로 이 사람을 칭하는 것이었다.

풍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했다.

“풍희라 합니다.”

노인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싸가지놈보다는 낫구나.”

구자환이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노인은 듣지 않고 풍희에게 이어서 말했다.

“어디 한 번 해보거라.”

“죄송합니다.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잉?? 못하겠다고?”

“예. 지금 저는 자만에 빠졌습니다. 발전하지 못하는 제가 어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배를 붙잡아가며 정말 크게 웃었다.

“뭐? 하하하! 네놈 재미있구나. 그래 그거 마음에 든다.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으냐?”

“내일 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좋다! 내가 내일까지 기다려 줄 테니 어디 한번 마음껏 펼쳐보거라.”

풍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네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 같구나.”

노인은 너털너털 웃으며 연무장을 벗어났고 구자환은 풍희에게 슬쩍 눈길을 주더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상념을 없애고 편하게 혼자 수련하라는 배려였다.

연무장에 혼자 남은 풍희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다음날 풍희와 구자환 그리고 괴짜 노인이 연무장에 자리했다.

“어르신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 이름은 광창이다.”

“광창 어르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연무장 중앙에 서서 눈을 감은 풍희는 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수를 날리는 것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 바람을 느낄 수 있다면 비수를 오히려 더 강하게 날릴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천천히 바람을 느끼고 바람을 모으던 풍희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타핫-

주변의 바람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든 풍희가 비틀었던 몸을 회전하며 품속에 비수를 여러 방향으로 날렸다.

휘오오 파팟-

날아가는 비수들은 바람의 힘을 받아 더욱 빠르게 날아갔는데 허수아비에 박히자 끝이 휘면서 안으로 조금 더 파고 들어갔다.

콰직!!

사뿐히 착지한 풍희가 감았던 눈을 뜨고 허수아비를 바라보자 허수아비는 생명이 다했는지 풀썩 쓰러졌다.

순간 광창이 눈을 빛냈다.

“너 검법을 할 줄 알지? 어서 해보거라.”

“예?? 아 예···”

비수를 얻으려고 비도술을 펼쳤는데 뜬금없이 검법을 펼치라는 노인의 말에 풍희는 의아했지만 이내 상념을 지우고 자세를 잡았다.

검법은 허공에 펼쳐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쓰러진 허수아비는 신경 쓰지 않고 바람에 집중했다.

이미 주변 바람을 모두 장악한 풍희에게 바람은 순종적이었다.

순식간에 바람을 검으로 끌어올린 풍희가 쭉 벌렸던 다리를 낮추며 검을 뒤로 뺐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찔렀는데 순간 모였던 바람이 모두 검 끝을 통해 빠져나갔다.

쿠콰콰쾅!!

엄청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렸다. 공기마저도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날아가던 바람이 끝에 도달하자 모두 터졌다.

퍼퍼펑!!

연무장의 바닥에 깔렸던 모래들이 충격을 못 이기고 모래바람이 자욱하게 일어났다.

풍희의 검법을 처음 본 구자환도 꽤 놀랐지만 광창은 특히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놈! 네놈이 돌아왔구나!”

“예···??”

얼굴까지 잔뜩 붉히며 흥분한 광창의 모습에 풍희는 당황했다

“무기녀석이 말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구나.”

“무기? 그분은 또 누구십니까?”

“용무녀석 말이다. 그 녀석에게 들었을 때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직접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흥분한 광창에게 풍희의 어리광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이 무공은 다시 봐도 아름답구나! 너무나 아름다워!”

풍희는 광창의 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 그러면 비수를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그럼! 비수가 뭐냐! 네놈 검 없지?”

“예.”

“검도 만들어주마! 이전에 녀석도 내가 만들었지!”

“예!? 이전 풍신의 검을요??”

“그래!! 그놈의 검도 내가 만들었어! 이거 오랜만에 불타는구나!”

“감사합니다. 광창님! 잘 부탁드립니다.”

광창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하지만 재료가 부족하다. 대충 만들 수는 없지. 재료를 좀 구해와야겠구나.”

“재료 말씀이십니까?”

“그래. 산동에 내 제자녀석이 있으니 그 녀석한테 가면 줄 것이다.”

“하지만 저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장주께 말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예 알겠습니다.”

마침 자신한테도 검이 필요했고 또 밖의 세상이 궁금했던 풍희는 묘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허락을 받지 못할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그런 풍희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됐다.

광창의 말을 들은 황설횽이 오히려 좋아한 것이다.

마침 내일 산동으로 가는 표행이 있었고 풍희를 표사로 넣어 같이 보내기로 했다.

산동은 무림맹의 지부가 없다. 동이족과의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라 그런지 산동 지역은 황실에서 모두 관리했다.

그렇다고 아예 문파가 없는 건 아니고 작은 문파들 그리고 무관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는 산적이 들끓었다.

산적들은 관아에 돈을 주고 관아는 산적들의 악행을 묵인해주는 관계가 형성되었고 무역으로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산동은 산적들의 노다지였다.

그리고 산동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큰 산적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흑산적이었다.

흑산적은 산동에서 하북으로 넘어가는 요충지인 흑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크기가 매우 커 일개 산적단이라 부르기가 힘들었다.

산동 사람들은 그들을 흑산산채라 불렀고 이 산동 지역에서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산산채는 약탈은 물론이고 인신매매까지 일삼은 악질이었다.

무림맹에서 몇 번 토벌을 시도했으나 산동 지역은 관에서 관리를 하므로 무림맹에서도 쉽사리 건들 수가 없었다.

덕분에 산동은 산적들이 맘껏 활기 치는 곳이라 위험했지만 그만큼 벌어들이는 수입이 짭짤해 많은 상단이 찾았다.

안 그래도 황금장에서는 산동으로 보낼 표행길에 표사로 누굴 넣어야 할지 골머리 앓던 그때 풍희가 나타나니 그 역할로 딱 맞았다.

황설횽은 풍희에게 좋은 검을 한 자루 주었고 쓸만한 비수도 몇 개 주었다.

풍희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친 뒤에 서서에게 갔다.

잠시 표사로 들어가기는 하나 본래 서서의 호위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사를 하러 들린 것이다.

똑똑-

“들어와.”

서서는 이미 풍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문을 두들기자마자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풍희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얇은 옷을 걸치고 창틀에 걸쳐 앉은 서서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안녕..하십니까?”

“핏, 그게 뭐야. 낯간지러우니까 그런 인사는 됐어.”

“그럴까??”

서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해줘.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기꺼이.”

장난치는 풍희를 보고 실소를 흘린 서서가 창밖을 보며 말을 꺼냈다.

“내일 바로 간다고?”

“응.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모르겠어.”

“인사하러 온 거야?”

“당연하지. 난 너의 호위인데 인사도 하지 않고 갈 수는 없잖아.”

“정말 그게 다야?”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서서의 모습은 달빛을 머금어 더없이 신비로웠고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별들을 쏟아낼 것 같았다.

풍희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물론 서서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복수라는 위험한 목표가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서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풍희는 본래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누르고 다른 말을 꺼냈다.

“응.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야 해?”

서서는 한참이나 풍희를 바라봤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서서를 바라보는 풍희의 마음은 오죽할까 마른 침을 삼키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피식-

서서는 풍희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풍희의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너 내 호위야. 너 말고 호위 안 맡길 거야. 그러니까 돌아와.”

“응.”

짧은 대답, 하지만 됐다.

충분히 들려왔다.
퍼가기
오매불망
뚱때
9. 대장장이 광창

“하앗!!”

풍희가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도약했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풍희의 주변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고 품에 손을 빠르게 넣었다 빠르게 뺐다.

파파파팟-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된 허수아비가 충격에 흔들렸다.

풍희는 구자환에게 배운 비도술을 모두 습득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수련했다.

그래서 그런지 풍희의 모습은 일급 살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수를 잘 날렸다.

“완벽하구나.”

“감사합니다!”

풍희는 구자환을 선배, 동료를 넘어서 한 명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배운 비도술은 앞으로 자신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고 덕분에 자신의 목표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비도술은 그만하면 됐구나. 이제 검법을 수련해 보거라.”

라고 말하며 구자환이 목검을 풍희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목검을 받아든 풍희는 어리둥절하며 구자환을 바라봤다.
그런데 구자환은 이미 다리를 넓게 벌리고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대련만큼 좋은 수련은 없지. 들어와라.”

풍희는 목검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치셔도 모릅니다!”

순간 풍희는 지면을 빠르게 박차고 도약했다.

구자환은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일체 움직임이 없었다.

순식간에 지척에 도착한 풍희는 그대로 우측 어깨를 향해 목검을 내질렀다.

슈욱!!!

구자환은 움직이지도 않고 몸을 살짝 틀었다.

너무 쉽게 풍희의 목검이 허공을 갈랐고 자세가 무너진 풍희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구자환의 눈빛은 매서웠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지금 너는 한 번 죽었다.”

“크흡!”

입술을 꽉 깨문 풍희는 축이 되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대로 회전했다.

탁!

하지만 회전력을 담은 풍희의 목검이 손쉽게 막혔다.

막힌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구자환은 보이지 않는 속도의 쾌검으로 빠르게 찔렀다.

풍희는 지금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막아가고 있었다.

탁! 푹. 탁! 푹.

모든 공격을 막지 못하고 두 번의 공격을 허용한 풍희는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렸다.

드디어 구자환의 발이 움직였다.

멀어지는 풍희에게 빠르게 달라붙은 구자환은 조금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도 검을 빠르게 내질렀다.

몸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공격을 피해 봤지만 허리, 어깨에 틀어박힌 검격에 풍희는 신음을 쏟아냈다.

“크흑!”

풍희와 구자환의 발이 지면에 닿았을 때 구자환은 자세를 순간 낮추더니 풍희의 무릎이 접히는 부분을 가격했다.

퍼억!!

“으악!”

풍희는 고통에 소리치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고 목 앞에는 구자환의 목검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벌써 두 번이나 죽었구나.”

풍희는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째려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분했다. 자신에게 너무 분했다.

자신이 강해졌다고 자만해 방심했고 그 방심은 패배로 이어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수치스럽게 패배했다.

구자환은 목검을 거두고 뒤를 돌았다.

“그 분함을 기억해라. 그러면 강해질 것이다.”

풍희는 뒤돌아가는 구자환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직 준비가 부족하구나. 조금 더 마음을 수련하거라.”

그 말을 끝으로 구자환은 연무장을 나갔다.

풍희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서히 일어선 풍희의 눈빛은 그전과 달라졌다.

“너무 자만했다.”

자신을 너무 자만했다. 자신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이 정도 실력으로 부모님의 복수를 하겠다고 들떠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직이다. 아직은 움츠릴 때야.’

햇볕이 가장 많이 내리쬐는 연무장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자만을 버리고 천천히 다가간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급했던 마음을 자책하며 마음을 비우고자 심법을 운용했다.

휘오오-

편안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갑자기 집중을 깨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놈이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험상궂게 생긴 노인 한 명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그 노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풍희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쁘지 않은 무골이구나.”

처음 보는 노인이 자신을 평가하자 풍희는 약간의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껄껄. 성깔도 있구나.”

노인의 뒤에서 구자환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내가 말한 괴팍한 노인이 이분이다.”

“이놈! 괴팍하다니!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쯧쯧.”

얼마 전 구자환이 비도술을 가르쳐 주면서 말했던 괴짜 노인이 바로 이 사람을 칭하는 것이었다.

풍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했다.

“풍희라 합니다.”

노인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싸가지놈보다는 낫구나.”

구자환이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노인은 듣지 않고 풍희에게 이어서 말했다.

“어디 한 번 해보거라.”

“죄송합니다.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잉?? 못하겠다고?”

“예. 지금 저는 자만에 빠졌습니다. 발전하지 못하는 제가 어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배를 붙잡아가며 정말 크게 웃었다.

“뭐? 하하하! 네놈 재미있구나. 그래 그거 마음에 든다.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으냐?”

“내일 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좋다! 내가 내일까지 기다려 줄 테니 어디 한번 마음껏 펼쳐보거라.”

풍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네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 같구나.”

노인은 너털너털 웃으며 연무장을 벗어났고 구자환은 풍희에게 슬쩍 눈길을 주더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상념을 없애고 편하게 혼자 수련하라는 배려였다.

연무장에 혼자 남은 풍희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

다음날 풍희와 구자환 그리고 괴짜 노인이 연무장에 자리했다.

“어르신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 이름은 광창이다.”

“광창 어르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연무장 중앙에 서서 눈을 감은 풍희는 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수를 날리는 것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 바람을 느낄 수 있다면 비수를 오히려 더 강하게 날릴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천천히 바람을 느끼고 바람을 모으던 풍희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타핫-

주변의 바람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든 풍희가 비틀었던 몸을 회전하며 품속에 비수를 여러 방향으로 날렸다.

휘오오 파팟-

날아가는 비수들은 바람의 힘을 받아 더욱 빠르게 날아갔는데 허수아비에 박히자 끝이 휘면서 안으로 조금 더 파고 들어갔다.

콰직!!

사뿐히 착지한 풍희가 감았던 눈을 뜨고 허수아비를 바라보자 허수아비는 생명이 다했는지 풀썩 쓰러졌다.

순간 광창이 눈을 빛냈다.

“너 검법을 할 줄 알지? 어서 해보거라.”

“예?? 아 예···”

비수를 얻으려고 비도술을 펼쳤는데 뜬금없이 검법을 펼치라는 노인의 말에 풍희는 의아했지만 이내 상념을 지우고 자세를 잡았다.

검법은 허공에 펼쳐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쓰러진 허수아비는 신경 쓰지 않고 바람에 집중했다.

이미 주변 바람을 모두 장악한 풍희에게 바람은 순종적이었다.

순식간에 바람을 검으로 끌어올린 풍희가 쭉 벌렸던 다리를 낮추며 검을 뒤로 뺐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찔렀는데 순간 모였던 바람이 모두 검 끝을 통해 빠져나갔다.

쿠콰콰쾅!!

엄청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렸다. 공기마저도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날아가던 바람이 끝에 도달하자 모두 터졌다.

퍼퍼펑!!

연무장의 바닥에 깔렸던 모래들이 충격을 못 이기고 모래바람이 자욱하게 일어났다.

풍희의 검법을 처음 본 구자환도 꽤 놀랐지만 광창은 특히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놈! 네놈이 돌아왔구나!”

“예···??”

얼굴까지 잔뜩 붉히며 흥분한 광창의 모습에 풍희는 당황했다

“무기녀석이 말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구나.”

“무기? 그분은 또 누구십니까?”

“용무녀석 말이다. 그 녀석에게 들었을 때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직접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흥분한 광창에게 풍희의 어리광은 들리지 않았다.

“역시 이 무공은 다시 봐도 아름답구나! 너무나 아름다워!”

풍희는 광창의 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 그러면 비수를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그럼! 비수가 뭐냐! 네놈 검 없지?”

“예.”

“검도 만들어주마! 이전에 녀석도 내가 만들었지!”

“예!? 이전 풍신의 검을요??”

“그래!! 그놈의 검도 내가 만들었어! 이거 오랜만에 불타는구나!”

“감사합니다. 광창님! 잘 부탁드립니다.”

광창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다.

“하지만 재료가 부족하다. 대충 만들 수는 없지. 재료를 좀 구해와야겠구나.”

“재료 말씀이십니까?”

“그래. 산동에 내 제자녀석이 있으니 그 녀석한테 가면 줄 것이다.”

“하지만 저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장주께 말해볼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예 알겠습니다.”

마침 자신한테도 검이 필요했고 또 밖의 세상이 궁금했던 풍희는 묘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허락을 받지 못할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그런 풍희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됐다.

광창의 말을 들은 황설횽이 오히려 좋아한 것이다.

마침 내일 산동으로 가는 표행이 있었고 풍희를 표사로 넣어 같이 보내기로 했다.

산동은 무림맹의 지부가 없다. 동이족과의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라 그런지 산동 지역은 황실에서 모두 관리했다.

그렇다고 아예 문파가 없는 건 아니고 작은 문파들 그리고 무관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는 산적이 들끓었다.

산적들은 관아에 돈을 주고 관아는 산적들의 악행을 묵인해주는 관계가 형성되었고 무역으로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산동은 산적들의 노다지였다.

그리고 산동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큰 산적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흑산적이었다.

흑산적은 산동에서 하북으로 넘어가는 요충지인 흑산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크기가 매우 커 일개 산적단이라 부르기가 힘들었다.

산동 사람들은 그들을 흑산산채라 불렀고 이 산동 지역에서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산산채는 약탈은 물론이고 인신매매까지 일삼은 악질이었다.

무림맹에서 몇 번 토벌을 시도했으나 산동 지역은 관에서 관리를 하므로 무림맹에서도 쉽사리 건들 수가 없었다.

덕분에 산동은 산적들이 맘껏 활기 치는 곳이라 위험했지만 그만큼 벌어들이는 수입이 짭짤해 많은 상단이 찾았다.

안 그래도 황금장에서는 산동으로 보낼 표행길에 표사로 누굴 넣어야 할지 골머리 앓던 그때 풍희가 나타나니 그 역할로 딱 맞았다.

황설횽은 풍희에게 좋은 검을 한 자루 주었고 쓸만한 비수도 몇 개 주었다.

풍희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친 뒤에 서서에게 갔다.

잠시 표사로 들어가기는 하나 본래 서서의 호위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사를 하러 들린 것이다.

똑똑-

“들어와.”

서서는 이미 풍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문을 두들기자마자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풍희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얇은 옷을 걸치고 창틀에 걸쳐 앉은 서서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안녕..하십니까?”

“핏, 그게 뭐야. 낯간지러우니까 그런 인사는 됐어.”

“그럴까??”

서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해줘.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기꺼이.”

장난치는 풍희를 보고 실소를 흘린 서서가 창밖을 보며 말을 꺼냈다.

“내일 바로 간다고?”

“응.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모르겠어.”

“인사하러 온 거야?”

“당연하지. 난 너의 호위인데 인사도 하지 않고 갈 수는 없잖아.”

“정말 그게 다야?”

고개를 살짝 돌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서서의 모습은 달빛을 머금어 더없이 신비로웠고 쓸쓸해 보이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별들을 쏟아낼 것 같았다.

풍희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물론 서서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복수라는 위험한 목표가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서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풍희는 본래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누르고 다른 말을 꺼냈다.

“응. 그거 말고 또 뭐가 있어야 해?”

서서는 한참이나 풍희를 바라봤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서서를 바라보는 풍희의 마음은 오죽할까 마른 침을 삼키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피식-

서서는 풍희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풍희의 마음을 느꼈다.

그래서 웃을 수 있었다.

“너 내 호위야. 너 말고 호위 안 맡길 거야. 그러니까 돌아와.”

“응.”

짧은 대답, 하지만 됐다.

충분히 들려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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