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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8. 호위부 

서서에게는 따로 호위가 있지 않았고 용무만이 같이 다녔는데 이번 습격을 계기로 서서에게 호위부가 생겼다.

그리고 그 호위부에 풍희가 들어가게 됐다.

물론 서서는 풍희를 호위보다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할은 호위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풍희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선배님.”

침대 위에서 칼날을 갈고 있는 무뚝뚝한 사내가 풍희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고 오른쪽 눈을 깊게 파고든 칼자국은 그의 눈을 하나 가져간 것 같았다.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고 있지만 풍희는 본능적으로 이 사내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돋은 온몸의 닭살이 그 증거였다.

풍희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선배님 무기가 정말 많네요??”

침대 위의 사내는 대답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풍희는 개의치 않고 사내에게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검도 쓰시는 데 창도 쓰시네요?”

스윽 스윽-

방안은 풍희의 말소리와 날카롭게 갈리는 칼날 소리만 들려왔다.

‘정말 말이 없으신 분이구나.’

풍희는 한쪽에 놓인 창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쉬이익!

방금까지 날카롭게 소리를 내던 칼날이 풍희의 목 앞에서 당장에라도 베어 물 것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윽!”

급하게 발걸음을 멈췄지만 조금 늦었는지 목에서는 작은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만.”

음침하다는 말 말고는 이 사내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목소리가 풍희의 귀에 꽂혔다.

저 말에는 많은 말이 함축된 것 같았다. 같은 식구지만 정말로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목울대가 출렁이자 칼날에 베인 상처가 살짝 따가웠다.

풍희는 오싹한 분위기에 쉽게 말을 할 수 없었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내는 검을 거두고서는 마른 천을 풍희에게 던졌다.

“미안하군, 하지만 웬만하면 건들지 말아 주게.”

“아.. 예. 죄송합니다.”

풍희는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내고 사내를 바라봤지만 사내는 이미 침대 위로 올라가 마저 칼날을 갈고 있었다.

스윽스윽-

‘악의는 없었다. 그러면 저 창이 문제인가?’

풍희는 창에 힐끔 시선을 주고는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봇짐을 풀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처음에 음침했던 목소리보다는 매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사내가 풍희에게 질문했다.

미안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짐을 풀던 풍희는 몸을 돌려 대답했다.

“열넷입니다.”

풍희의 대답을 들은 사내는 더 이상 질문을 건네지 않았다.

조금 전 일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형식적인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 딱히 대답하지 않은 것이지만 풍희는 자신의 나이에 불안함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풍희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 몸 하나는 지켜낼 수 있습니다.”

“너의 몸을 지키면 안 된다 아가씨의 몸을 지켜야 하지.”

정적-

풍희는 자신의 실언에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았고 사내는 그냥 말이 없었다.

풍희는 통성명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이 사내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

따사로운 햇볕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깊게 잠에 빠진 풍희의 눈을 어지럽혔다.

“흐아아암···”

입이 찢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일어난 풍희가 주위를 둘러보자 사내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딜 가신 거지?”

간단하게 나갈 채비를 마친 풍희는 육포를 뜯으며 호위부 옆에 딸려있는 연무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같은 호위부 사내가 수련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의 검무에 감탄을 자아 했다.

곧이어 펼쳐지는 창무는 실로 아름다웠다.

기다란 창끝을 따라서 검붉은 선들이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은 강렬하면서 부드러웠고 빈틈이 없었다.

풍희는 만약 자신이 저 창과 겨룬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허공에서 이어지던 창끝의 춤이 끝나자 사내가 풍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풍희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괜찮다. 어차피 너와 나는 식구가 아니냐.”

사내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오히려 풍희를 식구라고 표현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구자환. 너는 풍희?”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구자환의 말에 풍희가 화들짝 놀라며 얘기했다.

“예 맞습···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는 내내 말을 하더구나. 내 이름은 풍희, 풍희지! 라고.”

풍희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잔뜩 상기돼서는 손까지 휘저으며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구자환은 정말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각에게 들었다.”

“아!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서 수련이나 하거라. 나도 해야 하니.”

구자환은 더 이상 말을 하기 귀찮다는 모습을 보이며 수련을 시작했지만 풍희는 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 것을.

구자환은 정말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다.

등에는 기다란 창을 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그리고 옷 속에는 많은 비수가 있었다.

여러 무기를 사용했지만, 그 무공 하나하나가 높은 경지의 무공이었고 창법과 검법은 절정의 고수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비수를 날리는 모습은 호위부가 아닌 살수 같은 몸놀림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운기 하던 풍희는 신기한 눈으로 구자환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구자환이 풍희를 돌아봤다.

“심법을 운기 하는 것 같은데 어찌 나를 보며 집중하지 않느냐?”

“저는 조금 특이한 심법을 익혔습니다. 그러니 주화입마에 빠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헌데 자환 선배는 어찌 그리 많은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무림인들은 한 가지 무공을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러 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무기를 깊게 파고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도 익히기 어려운 무공을 여러 개 익히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 때문에 하나의 무공을 높은 경지로 빠르게 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나도 조금 독특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지.”

풍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이해했다. 자신의 스승도 그러지 않는가.

“혹시 저에게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강호에서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는 일이었다. 

약점과 강점을 모두 가르쳐 주는 것이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고서는 절대 무공을 가르쳐주는 일이 없었고 함부로 무공을 보여주지도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구자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은 없지. 일어나거라.”

풍희는 강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이었고 강호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서 이런 무모한 말을 꺼낼 수 있던 것이지만, 척 보기에도 잔뼈가 굵은 구자환의 반응은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것은 잘 못 한다. 잘 보고 따라 해라.”

구자환이 가르쳐 준 것은 비도술이었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비수들을 공중에 뛰어올라 회전하며 던졌는데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갔지만, 그 끝은 모두 같았다.

파파파팟-

수련용 나무 허수아비에 박힌 비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하게 박혀 있었다.

“할 수 있겠느냐?”

“해보겠습니다.”

구자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 개의 비수를 풍희에게 건넸다.

“해보거라.”

“예.”

솔직히 처음 보자마자 따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풍희에게는 바람이 있었다.

바람의 기운을 끌어올린 풍희의 옷자락은 펄럭였고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어서 틀었던 몸을 풀어 회전하며 빠르게 비수를 던졌다.

파팟- 캉!

두 개의 비수가 허수아비에 꽂혔고 하나의 비수는 꽂힌 비수에 정확하게 날아가 팅겨 나왔다.

표정에 변화가 없던 구자환이 지금 입을 쩍 벌리고 하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풍희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렵네요. 하하.”

구자환이 평소와 다른 흥분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너! 이 무공을 배운 적이 있느냐?”

“예?? 아니요. 처음 해봅니다.”

“하하. 네놈 맘에 드는구나.”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까?”

구자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니까. 헌데 지금 보니 아니구나.”

“하하. 이거 인정받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너에게 비수가 필요하겠구나.”

구자환은 갑자기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영감이 열흘 뒤에 이곳에 오기로 했다. 그러니 너는 그 안에 영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수를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니.”

“영감이요?”

“있다. 괴짜 영감. 하지만 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많은 무인이 있듯이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 또한 굉장히 많이 있다.

그리고 그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실력에 따라서 명작이 나오기도 망작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요도나 귀검 등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한 자들의 끝은 항상 좋지 못하다고는 하나 그 위력은 언제나 무인들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장장이의 무기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쉽게 찾아볼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런 굉장한 대장장이를 괴짜 영감이라고 부르며 말하는 구자환의 정체가 궁금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다시 해보거라.”

“예!!”

풍희와 구자환의 수련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모두 지고 달이 새로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하아 하아-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풍희에게 구자환은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은 호승심. 오래전에 사라졌던 자신의 감정을 이 꼬마가 되살려주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굉장한 재능이다. 탐나는구나.’

하루, 아니?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자신의 비도술을 모두 배워갔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많은 비수를 던지고는 정확하게 날렸고 그 방향이 괴이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 기가 찰 지경이다.

“너의 스승이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풍희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마 말해도 믿지 않으실 겁니다.”

말을 하기 곤란해 하는 풍희의 모습에 구자환도 더 묻지 않았다.

“이제 너에게 비도술은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구나.”

“아닙니다. 저는 아직 선배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때 연무장으로 서서와 용무가 들어왔고 서서가 크게 소리쳤다.

“희!! 너 오늘 나랑 수련하기로 했잖아!!”

서서의 꾸짖음이 들려오자 풍희는 아차 했다.

“아.. 맞다. 깜빡했네.”

“뭐!? 깜빡?? 깜빡!!??”

풍희는 머쓱하게 웃어넘기고 빠르게 화재를 전환했다.

“하하··· 용무님 안녕하십니까.”

“그래그래, 자환이도 함께 있었구나.”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용무는 구자환을 향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완전히 돌아온 것이냐? 너 때문에 내가 아주 고생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는 구자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용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제 식사를 하러 가지. 오랜만에 같이 먹고 싶구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씩씩대는 서서의 눈을 피해서 구자환의 뒤로 슬쩍 숨은 풍희가 말했다.

“마침 저도 배가 고팠습니다. 그럼 다 같이 식사를 하시죠.”

용무가 그런 풍희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는 짓이 꼭 그놈과 똑같구나. 쯧쯧”

“하하하···”

···

어두운 대전을 벽에 달린 야명주만이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만하게 앉아있는 한 남자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남자가 보였다.

“그게 정말이냐?”

“예! 확실합니다! 그가 돌아왔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다. 너도 직접 보지 않았느냐?”

“하지만 제가 직접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1조를 모두 잃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싹이 자라기 전에 짤라야겠구나.”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감시를 보내거라, 아니 은휘에게 비를 보내라고 말해라.”

“명!!”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한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그가 빠져나간 자리를 보며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크게 웃으며 혼자 말했다.

“하하하! 결국, 돌아왔구나! 멍청한 내 친우, 아니 친우였던 자여.”

그의 웃음소리에 담긴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벽에 달린 야명주가 크게 흔들리며 뿜어져 나오는 빛 또한 크게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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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때
8. 호위부 

서서에게는 따로 호위가 있지 않았고 용무만이 같이 다녔는데 이번 습격을 계기로 서서에게 호위부가 생겼다.

그리고 그 호위부에 풍희가 들어가게 됐다.

물론 서서는 풍희를 호위보다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 역할은 호위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풍희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선배님.”

침대 위에서 칼날을 갈고 있는 무뚝뚝한 사내가 풍희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고 오른쪽 눈을 깊게 파고든 칼자국은 그의 눈을 하나 가져간 것 같았다.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고 있지만 풍희는 본능적으로 이 사내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돋은 온몸의 닭살이 그 증거였다.

풍희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선배님 무기가 정말 많네요??”

침대 위의 사내는 대답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풍희는 개의치 않고 사내에게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검도 쓰시는 데 창도 쓰시네요?”

스윽 스윽-

방안은 풍희의 말소리와 날카롭게 갈리는 칼날 소리만 들려왔다.

‘정말 말이 없으신 분이구나.’

풍희는 한쪽에 놓인 창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쉬이익!

방금까지 날카롭게 소리를 내던 칼날이 풍희의 목 앞에서 당장에라도 베어 물 것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윽!”

급하게 발걸음을 멈췄지만 조금 늦었는지 목에서는 작은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만.”

음침하다는 말 말고는 이 사내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로 어둡고 무거운 목소리가 풍희의 귀에 꽂혔다.

저 말에는 많은 말이 함축된 것 같았다. 같은 식구지만 정말로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목울대가 출렁이자 칼날에 베인 상처가 살짝 따가웠다.

풍희는 오싹한 분위기에 쉽게 말을 할 수 없었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내는 검을 거두고서는 마른 천을 풍희에게 던졌다.

“미안하군, 하지만 웬만하면 건들지 말아 주게.”

“아.. 예. 죄송합니다.”

풍희는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내고 사내를 바라봤지만 사내는 이미 침대 위로 올라가 마저 칼날을 갈고 있었다.

스윽스윽-

‘악의는 없었다. 그러면 저 창이 문제인가?’

풍희는 창에 힐끔 시선을 주고는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봇짐을 풀었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처음에 음침했던 목소리보다는 매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사내가 풍희에게 질문했다.

미안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짐을 풀던 풍희는 몸을 돌려 대답했다.

“열넷입니다.”

풍희의 대답을 들은 사내는 더 이상 질문을 건네지 않았다.

조금 전 일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형식적인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 딱히 대답하지 않은 것이지만 풍희는 자신의 나이에 불안함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풍희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 몸 하나는 지켜낼 수 있습니다.”

“너의 몸을 지키면 안 된다 아가씨의 몸을 지켜야 하지.”

정적-

풍희는 자신의 실언에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았고 사내는 그냥 말이 없었다.

풍희는 통성명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이 사내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

따사로운 햇볕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깊게 잠에 빠진 풍희의 눈을 어지럽혔다.

“흐아아암···”

입이 찢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일어난 풍희가 주위를 둘러보자 사내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딜 가신 거지?”

간단하게 나갈 채비를 마친 풍희는 육포를 뜯으며 호위부 옆에 딸려있는 연무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같은 호위부 사내가 수련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의 검무에 감탄을 자아 했다.

곧이어 펼쳐지는 창무는 실로 아름다웠다.

기다란 창끝을 따라서 검붉은 선들이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은 강렬하면서 부드러웠고 빈틈이 없었다.

풍희는 만약 자신이 저 창과 겨룬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허공에서 이어지던 창끝의 춤이 끝나자 사내가 풍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풍희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괜찮다. 어차피 너와 나는 식구가 아니냐.”

사내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오히려 풍희를 식구라고 표현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구자환. 너는 풍희?”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구자환의 말에 풍희가 화들짝 놀라며 얘기했다.

“예 맞습···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는 내내 말을 하더구나. 내 이름은 풍희, 풍희지! 라고.”

풍희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잔뜩 상기돼서는 손까지 휘저으며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구자환은 정말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각에게 들었다.”

“아!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서 수련이나 하거라. 나도 해야 하니.”

구자환은 더 이상 말을 하기 귀찮다는 모습을 보이며 수련을 시작했지만 풍희는 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 것을.

구자환은 정말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다.

등에는 기다란 창을 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그리고 옷 속에는 많은 비수가 있었다.

여러 무기를 사용했지만, 그 무공 하나하나가 높은 경지의 무공이었고 창법과 검법은 절정의 고수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비수를 날리는 모습은 호위부가 아닌 살수 같은 몸놀림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심법을 운기 하던 풍희는 신기한 눈으로 구자환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구자환이 풍희를 돌아봤다.

“심법을 운기 하는 것 같은데 어찌 나를 보며 집중하지 않느냐?”

“저는 조금 특이한 심법을 익혔습니다. 그러니 주화입마에 빠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헌데 자환 선배는 어찌 그리 많은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무림인들은 한 가지 무공을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러 개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무기를 깊게 파고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도 익히기 어려운 무공을 여러 개 익히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되기 때문에 하나의 무공을 높은 경지로 빠르게 올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나도 조금 독특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지.”

풍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이해했다. 자신의 스승도 그러지 않는가.

“혹시 저에게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강호에서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는 일이었다. 

약점과 강점을 모두 가르쳐 주는 것이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고서는 절대 무공을 가르쳐주는 일이 없었고 함부로 무공을 보여주지도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구자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은 없지. 일어나거라.”

풍희는 강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이었고 강호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서 이런 무모한 말을 꺼낼 수 있던 것이지만, 척 보기에도 잔뼈가 굵은 구자환의 반응은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가르치는 것은 잘 못 한다. 잘 보고 따라 해라.”

구자환이 가르쳐 준 것은 비도술이었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비수들을 공중에 뛰어올라 회전하며 던졌는데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갔지만, 그 끝은 모두 같았다.

파파파팟-

수련용 나무 허수아비에 박힌 비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하게 박혀 있었다.

“할 수 있겠느냐?”

“해보겠습니다.”

구자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 개의 비수를 풍희에게 건넸다.

“해보거라.”

“예.”

솔직히 처음 보자마자 따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풍희에게는 바람이 있었다.

바람의 기운을 끌어올린 풍희의 옷자락은 펄럭였고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어서 틀었던 몸을 풀어 회전하며 빠르게 비수를 던졌다.

파팟- 캉!

두 개의 비수가 허수아비에 꽂혔고 하나의 비수는 꽂힌 비수에 정확하게 날아가 팅겨 나왔다.

표정에 변화가 없던 구자환이 지금 입을 쩍 벌리고 하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풍희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렵네요. 하하.”

구자환이 평소와 다른 흥분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너! 이 무공을 배운 적이 있느냐?”

“예?? 아니요. 처음 해봅니다.”

“하하. 네놈 맘에 드는구나.”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까?”

구자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이니까. 헌데 지금 보니 아니구나.”

“하하. 이거 인정받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너에게 비수가 필요하겠구나.”

구자환은 갑자기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영감이 열흘 뒤에 이곳에 오기로 했다. 그러니 너는 그 안에 영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수를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니.”

“영감이요?”

“있다. 괴짜 영감. 하지만 무기를 만드는 기술은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많은 무인이 있듯이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 또한 굉장히 많이 있다.

그리고 그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실력에 따라서 명작이 나오기도 망작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요도나 귀검 등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한 자들의 끝은 항상 좋지 못하다고는 하나 그 위력은 언제나 무인들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장장이의 무기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쉽게 찾아볼 수도 살 수도 없다.

그런 굉장한 대장장이를 괴짜 영감이라고 부르며 말하는 구자환의 정체가 궁금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다시 해보거라.”

“예!!”

풍희와 구자환의 수련은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모두 지고 달이 새로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하아 하아-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풍희에게 구자환은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은 호승심. 오래전에 사라졌던 자신의 감정을 이 꼬마가 되살려주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굉장한 재능이다. 탐나는구나.’

하루, 아니?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자신의 비도술을 모두 배워갔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많은 비수를 던지고는 정확하게 날렸고 그 방향이 괴이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제 기가 찰 지경이다.

“너의 스승이 누구인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풍희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마 말해도 믿지 않으실 겁니다.”

말을 하기 곤란해 하는 풍희의 모습에 구자환도 더 묻지 않았다.

“이제 너에게 비도술은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구나.”

“아닙니다. 저는 아직 선배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때 연무장으로 서서와 용무가 들어왔고 서서가 크게 소리쳤다.

“희!! 너 오늘 나랑 수련하기로 했잖아!!”

서서의 꾸짖음이 들려오자 풍희는 아차 했다.

“아.. 맞다. 깜빡했네.”

“뭐!? 깜빡?? 깜빡!!??”

풍희는 머쓱하게 웃어넘기고 빠르게 화재를 전환했다.

“하하··· 용무님 안녕하십니까.”

“그래그래, 자환이도 함께 있었구나.”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용무는 구자환을 향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완전히 돌아온 것이냐? 너 때문에 내가 아주 고생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는 구자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용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제 식사를 하러 가지. 오랜만에 같이 먹고 싶구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씩씩대는 서서의 눈을 피해서 구자환의 뒤로 슬쩍 숨은 풍희가 말했다.

“마침 저도 배가 고팠습니다. 그럼 다 같이 식사를 하시죠.”

용무가 그런 풍희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는 짓이 꼭 그놈과 똑같구나. 쯧쯧”

“하하하···”

···

어두운 대전을 벽에 달린 야명주만이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만하게 앉아있는 한 남자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남자가 보였다.

“그게 정말이냐?”

“예! 확실합니다! 그가 돌아왔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다. 너도 직접 보지 않았느냐?”

“하지만 제가 직접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1조를 모두 잃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싹이 자라기 전에 짤라야겠구나.”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감시를 보내거라, 아니 은휘에게 비를 보내라고 말해라.”

“명!!”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한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그가 빠져나간 자리를 보며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크게 웃으며 혼자 말했다.

“하하하! 결국, 돌아왔구나! 멍청한 내 친우, 아니 친우였던 자여.”

그의 웃음소리에 담긴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벽에 달린 야명주가 크게 흔들리며 뿜어져 나오는 빛 또한 크게 요동쳤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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