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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7. 황금장

장내로 들어서자 향긋한 음식냄새가 가득하고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터벅 터벅-

“아빠! 저희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진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양념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반겼고 지금 당장에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소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뽐내고 있었다.

“어서 오렴.”

풍희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장주님.”

“그래, 몸은 좀 어떠니?”

“신경 써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설횽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니다. 너에게 빚진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하단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아껴주는 황설횽의 모습에서 풍희는 깊은 고마움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생각나 씁쓸하기도 했다.

“우선 먹자꾸나.”

“예!!”

과연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소고기는 입속에 들어가자 살살 녹았고 생선은 방금 잡은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신선함이 혀를 감았다.

살면서 처음 맛보는 음식들에 풍희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풍희를 황설횽은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음식들이 깨끗하게 비워져 빈 접시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디로 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풍희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정말 잘 먹는구나.”

“하하··· 죄송합니다.”

풍희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급하게 숨기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니야, 아니야. 칭찬일세. 하하.”

하인들이 들어와 접시를 모두 치우고 다과상을 내오자 황설횽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풍희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차를 들어 올리던 풍희가 움찔했다.

황설횽이 말하는 그곳은 자신의 집을 뜻하고 있었고 그곳에 간다는 것은 이제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낸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 것이야.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풍희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희야···”

서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풍희를 바라봤다. 오랜 시간 동안 풍희와 붙어있던 서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풍희는 슬픔에 잠겼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황설횽과 서서는 풍희의 고민을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일 각의 시간이 지났을 때 열릴 것 같지 않았던 풍희의 굳은 입이 서서히 열렸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가겠습니다.”

풍희를 바라보던 황설횽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일찍 갈 터이니 오늘 안으로 마음을 정리하거라.”

“예.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풍희는 황설횽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굉장히 무례한 모습이었지만 황설횽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풍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준 것이다.

어두운 방 안을 한 줄기 달빛만이 비춰주고 있었고 그 아래 추억에 잠긴 풍희가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흘러오자 풍희의 눈앞에 웃고 떠드는 어린 풍희와 아버지가 보였다.

둘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웃으며 뛰고 또 뛰며 해맑게 달리고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또 불어왔다. 그러자 눈앞에 따스한 미소로 어린 풍희를 안아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또르륵-

과거의 모습들에 눈물이 섞이자 크고 작게 흔들렸다.

“어머니··· 아버지···”

풍희는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위로 삼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

다음 날 아침. 황금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관을 지고 있는 자들부터 시작해서 상복을 차려입은 30여 명의 사람들이 황금장을 떠나가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길을 이끄는 풍희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고 있었다.

끼이익-

헤지고 부서진 대문을 밀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길을 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피가 굳고 격렬했던 싸움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아.. 하아..”

심장을 부여잡고 숨이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이 호흡하는 풍희를 보고 서서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후우.. 응.. 괘.. 찮아.”

풍희는 눈을 감고 숨을 최대한 고르고 있었지만, 몸의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스윽-

서서가 떨리는 풍희의 손은 살며시 잡아주자 풍희가 서서를 바라봤다.

서서는 그 어떤 꽃보다 예쁜 미소로 풍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떨림이 점차 사그라든 풍희가 서서를 보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갔다.

힘들게 들어온 집안에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황설횽이 말하기를 이미 어머니의 시체는 아버지 옆에 묻어두었고 나머지 복면인의 시체는 야산에 버렸다고 들었다.

황설횽이 아버지의 무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때 이후의 일을 들은 풍희는 아버지가 복면인들에게 화풀이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전했다.

풍희는 무너진 잔해들을 헤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흙과 먼지로 뒤덮인 한 장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풍희가 그려져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예전에 다 같이 마을로 나갔을 때 어머니의 부탁으로 그렸던 그림이 이렇게 소중하게 남을 줄은 몰랐다.

“어머니.. 아버지..”

풍희는 그림을 양손으로 소중하게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꼭! 꼭 살아남을게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켜주신 이 목숨 헛되이게 쓰지 않겠어요.”

풍희는 그림은 옷 안쪽으로 깊숙하게 찔러 넣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다 무너진 집을 향해서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반절.

절을 하는 그 모습은 경건했고 슬펐다.

미련없이 뒤로 돌아선 풍희는 황설횽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염치없지만 집을 허물어 주시고 이 자리로 부모님을 옮겨도 되겠습니까?”

황설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부들에게 집을 허물고 정리하라 시키고는 관을 들고 있는 인부들과 풍희와 서서를 데리고 무덤으로 향했다.

풍희는 답답한 무덤 속에서 직접 부모님의 시체를 꺼내 관으로 옮겨드렸다.

많은 인력이 들어간 만큼 빠르게 정리된 풍희의 옛집은 부모님의 묏자리로 탈바꿈되었고 풍희는 착잡한 마음으로 직접 부모님을 묻어드렸다.

두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천천히 일어난 풍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금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황설횽과 서서도 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뒤따랐다.

···

“풍희야. 이제 어떻게 할 거니?”

황설횽의 질문에 풍희는 또렷한 눈동자로 시선을 마주했다.

“받아주십시오.”

“응??”

“황금장에 받아주십시오. 물론 그냥 받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겠습니다.”

황설횽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풍희를 바라봤다.

“도움을 주는 것과 식구로 받아주는 것은 다른 문제란다.”

“예. 알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무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무공을??”

‘그러고 보니 각이가 신비한 일을 목격했다고 그랬지.’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고 결심한 듯 얘기했다.

“혹시 무공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예.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풍희와 황설횽, 서서가 온 곳은 서서가 항상 수련하던 연무장이었다. 뒤이어 장각과 용무가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장주님.”

용무는 서서의 스승으로 화경의 고수였고 현재 황금장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또 장각은 은신술의 고수로 정보를 수집하고 추격하는데 능했다.

풍희는 뒤이어 들어온 장각과 용무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황설횽에게 받은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수련용 검으로 검법을 펼치는 데 필요하다는 말에 황설횽이 준 검이었다.

“한 발자국 더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지금도 꽤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물러나 달라는 풍희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모두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시작하겠습니다.”

풍희는 단전에 자리 잡고 있었던 바람을 모두 끌어올렸다.

후오오!

풍희의 주변으로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들은 풍희를 감싸며 회오리쳤다.

풍희의 눈이 낮게 깔렸고 검을 하늘에 닿을 듯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몸 주위를 회전하던 바람이 손끝을 타고 모두 검으로 들어갔다.

순백의 검신이 크게 요동쳤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같이 흔들리는 검신은 척 보기에도 위태로웠다.

‘기다리거라 아직 아니다.’

풍희는 더 많은 바람을 검으로 보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검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용무는 경악했다.

검에 기를 보내는 것도 대단한데 검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기를 숨겨 모으는 것은 절정의 고수조차 힘든 일이었다.

풍희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제 삼식 풍폭.”

하늘에 떠 있던 검이 빠르고 간결하게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검속에 갇혀 있던 사나운 바람들이 자신이 먼저 나가겠다고 싸우며 터져나갔다.

쿠콰콰쾅!!!

허공을 난자하며 날아간 바람이 그 끝에 도달하자 모두 일제히 터졌다.

단 하나의 검풍도 남지 않고 모두 터졌다.

힘을 버텨내지 못한 풍희의 검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끝마치고 그 생을 다했다.

파스스스···

가루가 돼 바닥으로 스며드는 검의 파편을 보고 있는 그들은 경악했다.

특히 화경의 고수인 용무는 믿을 수가 없는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화경의 고수인 자신이 볼을 꼬집는 것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사술로도 그를 꾀어내기 힘들고 속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 어린 소년이 자신을 그런 착각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무공을 잘 모르는 황설횽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 엄청난 광경을 무어라 표현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정적을 깨고 말을 꺼낸 사람은 서서였다.

“역시! 대단해!!”

풍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황설횽에게 말했다.

“저··· 검이··· 어쩌죠···?”

황설횽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전혀 걱정하지 말거라! 대단하구나.”

파핫-

용무가 갑자기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풍희에게 날아갔다.

“우왁!?”

갑자기 자신에 앞에 등장한 용무에 놀라 풍희는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런 풍희를 용무가 풍희의 손을 잡아끌었고 슬며시 맥을 짚었다.

‘혈맥이 모두 열렸어? 이 나이에?’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예..?? 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용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호통쳤다.

“이놈!!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내공이 담긴 용무의 호통에 풍희가 정신을 못 차렸다.

“으윽!”

용무는 풍희의 손목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했다.

“어서 바른대로 고하라! 너는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강한 내공이 자신을 몰아치자 풍희는 다급하게 바람을 끌어올렸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말 배운 적 없습니다. 다만 기연이 있었습니다.”

풍희를 압박하던 기세를 줄인 용무가 조금 사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기연??”

자신을 압박하던 기운이 가벼워지자 숨을 한번 고른 뒤 풍희가 진지하게 말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혁진이라는 분의 제자입니다.”

“뭐!!?”

용무를 비롯해서 멀리서 이 말을 들은 장각과 황설횽이 소리쳤고 걱정하던 서서조차 깜짝 놀랐다.

용무가 풍희의 양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풍신 한혁진! 정말 그자에게 배웠느냐!? 어디서? 아니 어떻게 배운 것이냐 그자는 이미 죽었다!!”

“어··· 하나씩 물어보셔도 됩니다. 우선 처음 목소리를 들은 것은 제가 아버지를 따라서 떠나려고 했을 때입니다.

풍희는 낯선 목소리를 듣게 된 계기를 모두 말해주었다.

그가 도와준 일과 얼마 전 심상의 세계에서 마주한 일, 그리고 손을 내밀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믿지 않기에는 방금 풍희가 보여주었던 무공이 심상치 않았고 더군다나 한혁진의 친우였던 용무가 단언했기 때문이다.

“그 망할 놈의 무공이 확실하다.”

“예?? 망할 놈이요?”

“그래! 그 망할 놈!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그 망할 놈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용무의 눈빛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마치 헤어진 옛 연인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그리움과 슬픔이 잔뜩 묻어있었다.

“너가 방금 펼친 검법은 그놈의 무공이 확실하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그놈은 죽었으니.”

“그렇군요..”

“그곳에서 본 그놈의 모습은 어땠느냐?”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조금의 거짓도 없이 말하라.”

“가슴이 크게 뚫려 있었습니다.”

“역시 그런가···”

하늘을 바라보는 용무의 표정은 감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하늘만을 응시했다.

‘말도 없이 먼저 간 젊은 친우여, 보고 싶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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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때
7. 황금장

장내로 들어서자 향긋한 음식냄새가 가득하고 휘황찬란한 장식들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터벅 터벅-

“아빠! 저희 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진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양념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반겼고 지금 당장에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소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뽐내고 있었다.

“어서 오렴.”

풍희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장주님.”

“그래, 몸은 좀 어떠니?”

“신경 써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설횽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니다. 너에게 빚진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부족하단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아껴주는 황설횽의 모습에서 풍희는 깊은 고마움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생각나 씁쓸하기도 했다.

“우선 먹자꾸나.”

“예!!”

과연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법.

소고기는 입속에 들어가자 살살 녹았고 생선은 방금 잡은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신선함이 혀를 감았다.

살면서 처음 맛보는 음식들에 풍희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 풍희를 황설횽은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음식들이 깨끗하게 비워져 빈 접시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디로 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풍희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정말 잘 먹는구나.”

“하하··· 죄송합니다.”

풍희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급하게 숨기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니야, 아니야. 칭찬일세. 하하.”

하인들이 들어와 접시를 모두 치우고 다과상을 내오자 황설횽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풍희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차를 들어 올리던 풍희가 움찔했다.

황설횽이 말하는 그곳은 자신의 집을 뜻하고 있었고 그곳에 간다는 것은 이제 자신은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낸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 것이야.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풍희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희야···”

서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풍희를 바라봤다. 오랜 시간 동안 풍희와 붙어있던 서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풍희는 슬픔에 잠겼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황설횽과 서서는 풍희의 고민을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일 각의 시간이 지났을 때 열릴 것 같지 않았던 풍희의 굳은 입이 서서히 열렸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가겠습니다.”

풍희를 바라보던 황설횽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일찍 갈 터이니 오늘 안으로 마음을 정리하거라.”

“예.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풍희는 황설횽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굉장히 무례한 모습이었지만 황설횽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풍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준 것이다.

어두운 방 안을 한 줄기 달빛만이 비춰주고 있었고 그 아래 추억에 잠긴 풍희가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흘러오자 풍희의 눈앞에 웃고 떠드는 어린 풍희와 아버지가 보였다.

둘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웃으며 뛰고 또 뛰며 해맑게 달리고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또 불어왔다. 그러자 눈앞에 따스한 미소로 어린 풍희를 안아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또르륵-

과거의 모습들에 눈물이 섞이자 크고 작게 흔들렸다.

“어머니··· 아버지···”

풍희는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위로 삼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

다음 날 아침. 황금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다.

관을 지고 있는 자들부터 시작해서 상복을 차려입은 30여 명의 사람들이 황금장을 떠나가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길을 이끄는 풍희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고 있었다.

끼이익-

헤지고 부서진 대문을 밀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길을 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피가 굳고 격렬했던 싸움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아.. 하아..”

심장을 부여잡고 숨이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이 호흡하는 풍희를 보고 서서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후우.. 응.. 괘.. 찮아.”

풍희는 눈을 감고 숨을 최대한 고르고 있었지만, 몸의 떨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스윽-

서서가 떨리는 풍희의 손은 살며시 잡아주자 풍희가 서서를 바라봤다.

서서는 그 어떤 꽃보다 예쁜 미소로 풍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떨림이 점차 사그라든 풍희가 서서를 보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갔다.

힘들게 들어온 집안에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황설횽이 말하기를 이미 어머니의 시체는 아버지 옆에 묻어두었고 나머지 복면인의 시체는 야산에 버렸다고 들었다.

황설횽이 아버지의 무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때 이후의 일을 들은 풍희는 아버지가 복면인들에게 화풀이 당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전했다.

풍희는 무너진 잔해들을 헤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흙과 먼지로 뒤덮인 한 장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풍희가 그려져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예전에 다 같이 마을로 나갔을 때 어머니의 부탁으로 그렸던 그림이 이렇게 소중하게 남을 줄은 몰랐다.

“어머니.. 아버지..”

풍희는 그림을 양손으로 소중하게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꼭! 꼭 살아남을게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켜주신 이 목숨 헛되이게 쓰지 않겠어요.”

풍희는 그림은 옷 안쪽으로 깊숙하게 찔러 넣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다 무너진 집을 향해서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반절.

절을 하는 그 모습은 경건했고 슬펐다.

미련없이 뒤로 돌아선 풍희는 황설횽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염치없지만 집을 허물어 주시고 이 자리로 부모님을 옮겨도 되겠습니까?”

황설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부들에게 집을 허물고 정리하라 시키고는 관을 들고 있는 인부들과 풍희와 서서를 데리고 무덤으로 향했다.

풍희는 답답한 무덤 속에서 직접 부모님의 시체를 꺼내 관으로 옮겨드렸다.

많은 인력이 들어간 만큼 빠르게 정리된 풍희의 옛집은 부모님의 묏자리로 탈바꿈되었고 풍희는 착잡한 마음으로 직접 부모님을 묻어드렸다.

두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천천히 일어난 풍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금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황설횽과 서서도 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뒤따랐다.

···

“풍희야. 이제 어떻게 할 거니?”

황설횽의 질문에 풍희는 또렷한 눈동자로 시선을 마주했다.

“받아주십시오.”

“응??”

“황금장에 받아주십시오. 물론 그냥 받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겠습니다.”

황설횽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풍희를 바라봤다.

“도움을 주는 것과 식구로 받아주는 것은 다른 문제란다.”

“예. 알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무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무공을??”

‘그러고 보니 각이가 신비한 일을 목격했다고 그랬지.’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고 결심한 듯 얘기했다.

“혹시 무공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예.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풍희와 황설횽, 서서가 온 곳은 서서가 항상 수련하던 연무장이었다. 뒤이어 장각과 용무가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장주님.”

용무는 서서의 스승으로 화경의 고수였고 현재 황금장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었다. 또 장각은 은신술의 고수로 정보를 수집하고 추격하는데 능했다.

풍희는 뒤이어 들어온 장각과 용무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황설횽에게 받은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수련용 검으로 검법을 펼치는 데 필요하다는 말에 황설횽이 준 검이었다.

“한 발자국 더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지금도 꽤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물러나 달라는 풍희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모두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시작하겠습니다.”

풍희는 단전에 자리 잡고 있었던 바람을 모두 끌어올렸다.

후오오!

풍희의 주변으로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들은 풍희를 감싸며 회오리쳤다.

풍희의 눈이 낮게 깔렸고 검을 하늘에 닿을 듯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몸 주위를 회전하던 바람이 손끝을 타고 모두 검으로 들어갔다.

순백의 검신이 크게 요동쳤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같이 흔들리는 검신은 척 보기에도 위태로웠다.

‘기다리거라 아직 아니다.’

풍희는 더 많은 바람을 검으로 보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검에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용무는 경악했다.

검에 기를 보내는 것도 대단한데 검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기를 숨겨 모으는 것은 절정의 고수조차 힘든 일이었다.

풍희는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제 삼식 풍폭.”

하늘에 떠 있던 검이 빠르고 간결하게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검속에 갇혀 있던 사나운 바람들이 자신이 먼저 나가겠다고 싸우며 터져나갔다.

쿠콰콰쾅!!!

허공을 난자하며 날아간 바람이 그 끝에 도달하자 모두 일제히 터졌다.

단 하나의 검풍도 남지 않고 모두 터졌다.

힘을 버텨내지 못한 풍희의 검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끝마치고 그 생을 다했다.

파스스스···

가루가 돼 바닥으로 스며드는 검의 파편을 보고 있는 그들은 경악했다.

특히 화경의 고수인 용무는 믿을 수가 없는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화경의 고수인 자신이 볼을 꼬집는 것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사술로도 그를 꾀어내기 힘들고 속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 어린 소년이 자신을 그런 착각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무공을 잘 모르는 황설횽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 엄청난 광경을 무어라 표현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정적을 깨고 말을 꺼낸 사람은 서서였다.

“역시! 대단해!!”

풍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황설횽에게 말했다.

“저··· 검이··· 어쩌죠···?”

황설횽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전혀 걱정하지 말거라! 대단하구나.”

파핫-

용무가 갑자기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풍희에게 날아갔다.

“우왁!?”

갑자기 자신에 앞에 등장한 용무에 놀라 풍희는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런 풍희를 용무가 풍희의 손을 잡아끌었고 슬며시 맥을 짚었다.

‘혈맥이 모두 열렸어? 이 나이에?’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예..?? 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용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호통쳤다.

“이놈!! 어디서 거짓을 고하느냐!!”

내공이 담긴 용무의 호통에 풍희가 정신을 못 차렸다.

“으윽!”

용무는 풍희의 손목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했다.

“어서 바른대로 고하라! 너는 누구에게 무공을 배웠느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강한 내공이 자신을 몰아치자 풍희는 다급하게 바람을 끌어올렸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말 배운 적 없습니다. 다만 기연이 있었습니다.”

풍희를 압박하던 기세를 줄인 용무가 조금 사그라든 목소리로 말했다.

“기연??”

자신을 압박하던 기운이 가벼워지자 숨을 한번 고른 뒤 풍희가 진지하게 말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혁진이라는 분의 제자입니다.”

“뭐!!?”

용무를 비롯해서 멀리서 이 말을 들은 장각과 황설횽이 소리쳤고 걱정하던 서서조차 깜짝 놀랐다.

용무가 풍희의 양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풍신 한혁진! 정말 그자에게 배웠느냐!? 어디서? 아니 어떻게 배운 것이냐 그자는 이미 죽었다!!”

“어··· 하나씩 물어보셔도 됩니다. 우선 처음 목소리를 들은 것은 제가 아버지를 따라서 떠나려고 했을 때입니다.

풍희는 낯선 목소리를 듣게 된 계기를 모두 말해주었다.

그가 도와준 일과 얼마 전 심상의 세계에서 마주한 일, 그리고 손을 내밀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믿지 않기에는 방금 풍희가 보여주었던 무공이 심상치 않았고 더군다나 한혁진의 친우였던 용무가 단언했기 때문이다.

“그 망할 놈의 무공이 확실하다.”

“예?? 망할 놈이요?”

“그래! 그 망할 놈!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그 망할 놈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용무의 눈빛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마치 헤어진 옛 연인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그리움과 슬픔이 잔뜩 묻어있었다.

“너가 방금 펼친 검법은 그놈의 무공이 확실하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그놈은 죽었으니.”

“그렇군요..”

“그곳에서 본 그놈의 모습은 어땠느냐?”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조금의 거짓도 없이 말하라.”

“가슴이 크게 뚫려 있었습니다.”

“역시 그런가···”

하늘을 바라보는 용무의 표정은 감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하늘만을 응시했다.

‘말도 없이 먼저 간 젊은 친우여, 보고 싶구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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