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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2. 낯선 목소리

현재는 무림천하다.
20년 전 정사대전에서 정파가 이겼고 사파는 항복했다.

하지만 완전한 무림천하라 할 수는 없었다.

천마신교 또는 마교라고 불리는 사파의 최고 세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정사대전에서 마교는 참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당연히 많은 사파에서 반발이 일어났지만 이미 정사대전이 시작한 이후라 어쩔 수 없었다.

단일 세력으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천마신교가 빠지자 당연히 사파는 정파에게 밀렸다.

무림맹의 맹주 화천주는 사파를 강하게 밀었는데 그 사냥꾼으로 오대세가를 내세웠다.

오대세가도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화천주의 계략에 의해 몇몇 장로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마교의 소행으로 여기고 적극 나섰다.

그렇게 구파의 세력은 굳건하게 지키면서 오대세가의 세력을 갉아먹었다.

마교가 빠진 사파의 세력은 오대세가만으로 충분하다고 계산하고 무림천하를 이룬 뒤에 일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사파도 만만치 않았다. 흑삼호라고 불리는 세 명의 사파지존이 있었는 데, 그들의 세력은 강했다.

사파와 오대세가의 대결구도가 된 정사대전은 서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결국, 사파의 흑삼호가 모두 무너지자 나머지 잔여 세력들은 항복했다.

그들은 무림맹에 무공을 빼앗기고 재물도 모두 뺏겼으며 매달 공물을 바쳐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구대문파는 오대세가의 이름을 모두 빼앗았다.

정사대전에서 힘이 약해진 오대세가를 구대문파와 같은 서열에 둘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대세가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신들에게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고 항의했지만 세력이 온전하다 못해 오히려 강성해진 구대문파를 꺾을 수는 없었다.

서서히 압박을 가하던 구대문파는 결국 오대세가를 모두 밀어내고 무림맹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구대문파는 무림맹이 정사대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떠들어댔고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듯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곧 정의였다. 정파지만 사파처럼 악행을 펼쳐도, 산적처럼 산적질을 해도 자신들이 정의라 떠들어대며 옳은 일이라고 포장했다.

무림맹은 자신들끼리 세력 넓히기에 힘을 썼고 나머지는 소홀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악용했다.

이에 사람들은 말했다.

오히려 정사마 3개의 세력이 서로 공존할 때가 살기 좋았다고, 정파란 정의로 포장한 사의 집단이라고···

“다시 말해보거라! 대한이 복귀하지 않았다고!?”

“예! 저번 임무를 나간 이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끄응..”

현재 머리를 붙잡고 인상을 쓰는 이 중년인은 무림맹의 신리대의 대주 신리소.

무림맹은 현재 7개의 주력부대가 있었고 강한대로 순서를 매겼는데, 그중 7번째의 위치한 부대가 신리대이였다.

“계집질이라도 하는 것으로 여겨 심하게 생각하지 않았건만···알겠다.”

신리소는 손을 휘적휘적 저어 보고를 끝낸 대원을 내보낸 후 생각에 잠겼다.

‘대한이는 나무꾼을 처리하라고 말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골똘히 생각하던 신리소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탁-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자 천장에서 두 명의 인영이 내려왔다.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자와 무복은 똑같지만 지니고 있는 패가 달랐다.

“자이, 라이! 너희 둘이 가서 조사를 해보고 오거라.”

“명!”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두 명이 사라졌고 신리소는 창밖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구나.”

그의 시선 끝에는 맹렬히 휘날리는 ‘무림맹’ 깃발이 있었다.

···

“으헉!!!”

두 팔을 하늘에 닿을 듯이 쭉 뻗고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난 풍희는 식은땀에 절어 있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풍희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털썩···

자신의 앞에 싸늘히 죽어 있는 아버지를 보자 풍희는 무릎을 꿇었다.

“아..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아···.”

눈꺼풀이 심하게 흔들렸다.

두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이어졌다.

“제..발 아버지···”

손을 뻗자 차가운 아버지의 손이 잡혔다.
너무나 차가웠다.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따뜻하게 잡아주셨던 그 손이 차가웠다.

뚝-

이성이 끊어졌다.

“으아아아!!!”

그리고 오열했다.

억울했다. 분했다. 두려웠다.

풍희의 절규에 들어있는 세 감정은 숲 속의 새들조차 놀라 도망가게 만들었다.

눈물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졌다.
아버지의 차디찬 몸은 보이지 않아도 풍희에게 느껴졌다.

절실하게 불렀고 있는 힘껏 깨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했다.

털썩-

그렇게 풍희도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못했다.

···

세 시진 가량 흐른 거 같았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풍희에 눈에 복면인의 시체가 들어왔다.

분노.
지금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단 하나 분노였다.

타다닥- 푹!

찔렀다.
복면인의 반쪽 가슴을 마구 찔렀다.

시체는 움찔거리며 피를 뿜었다.

푹! 푹! 푹!

얼마나 찔렀는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시체에서는 피도 흐르지 않았다.

풍희의 눈에도 생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저 찌르고 또 찌르고 또 찌르며 자신의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표출했다.

복면인의 시체는 사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그가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까악- 까악-

까마귀에 울음소리가 풍희의 귓가에 들려왔다.

흥건한 땀과 진득한 피가 얼굴에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묻은 단검을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풍희의 모습은 아찔했다.

풍희는 단검을 거꾸로 잡고 높게 들어 올렸다.

“아버지··· 기다려요. 제가 따라갈게요.”

하늘 높이 들어올린 단검을 자신의 심장으로 찔러오던 그때 엄청난 달빛이 풍희를 비췄다.

“으악!”

순간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만큼의 강한 달빛에 풍희는 들고 있던 단검을 놓쳤다.

탱! 탱. 탱···.

땅에 떨어진 단검은 공중에 두어 번 떠올랐다 떨어졌다. 힘을 잃고 축 처진 단검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리고 꿇었다. 

“저는 아버지 없이 살 수 없어요...”

시원한 바람이 풍희를 감싸 안았다.

- 살아라.

“네??”

누군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살아서 돌아가라.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누구야!”

- 너가 죽는 것은 너의 아비가 원하지 않는다.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나는 아버지 없이 살 수 없어!”

- 아비와 너를 잃은 네 어미는 어떻게 할 것이냐.

“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또 다른 슬픔을 생각하지 못했다.

- 가거라, 살아서 가거라.

이 의문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 하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여 주세요. 저는 어머니를 지켜야 합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시체를 묻기로 결정했다.

마침 자신이 쓰러져 있던 곳에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왜 파여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아버지를 편안히 묻어 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산에 묻어드립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구덩이로 옮겼다.

삽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풍희는 맨손으로 흙을 덮었다.

손톱이 들리고 돌맹이에 베여 피가 흘러도 풍희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아버지를 덮었다.

한 시진의 시간 동안 흙을 파서 아버지의 무덤을 만들었다.

복면인의 시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저 시체는 이제 곧 야생 동물들에 먹이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괘념치 않았다.

풍희는 아버지의 무덤 가운데에 나뭇가지 하나를 꽂았다.

“아버지. 저와 아버지의 마지막 나무입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무덤을 향해 절을 했다.

한번.

스륵-

두번.

스르윽-

반 절.

풍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뚝···뚝···뚝···

꾹 참고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몸을 움찔거리며 참아보려 애썼지만 눈물샘은 멈추지 않고 눈물을 뿜어냈다.

“끅···끅!”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울음소리를 참았다.

입술이 터져 흐르는 피는 아프지 않았다.

가슴의 아픔이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힘겹게 팔을 올려 눈물을 닦아낸 풍희는 웃어보았다.

얼굴 근육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씰룩씰룩거렸지만 노력했다.

‘울지마! 웃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나는 희(熹)니까!’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어깨는 쉴 새 없이 움찔거렸지만 입 모양 만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으브지... 저 꼭! 꼭! 어머니를 지킬게요···”

그러자 마치 아버지가 화답이라도 하듯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풍희의 볼에 사르르 앉았다.

아버지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장하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풍희는 그제야 아버지의 유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몸이 둘이었지만 내려올 땐 몸이 하나였다.
하지만 올라갈 때 마음은 하나였지만 내려올 때 마음은 둘이었다.

가슴속 깊이 묻었다.

···

신리소의 명을 받고 출발한 두 복면인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풍희가 내려가고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들짐승들이 지나가기라도 했는지 그 누구의 시체도 존재하지 않았고 붉은빛을 내는 지면만이 그들을 반겼다.

“이곳이 맞지?”

“응, 분명 여기가 확실해.”

“이상한데??”

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는 분명 일방적으로 폭행했다. 헌데 이곳부터는 정반대가 됐어.”

라이는 자이가 가르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고 모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이 무덤을 만들었을 리가 없잖아.”

두 사람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자신들이 아는 대한은 무덤은커녕 손속에 자비를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투의 흔적도 희미할뿐더러 무덤 하나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순간 혹시 하는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지나쳤다.

“저 무덤부터 파 보지.”

자이가 손에 내공을 끌어 올리더니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자 뭉쳐있던 흙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뭐야 이거!”

“왜? 설마 대한이야!?”

자이는 말없이 뻥 뚫린 무덤을 가리켰다.

“없어.”

“뭐!??”

“아무도 없어. 나무꾼도 대한이도.”

라이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얘기했다.

“그 어떤 흔적도 없어. 도망간 흔적도, 죽은 흔적도.”

“확실히 이 일은 이상한 점이 많아. 우선 돌아가자.”

“먼저 출발해 나는 우리 흔적을 지우고 따라갈게.”

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출발했다.

라이는 그곳에 남아 발자국을 흙으로 덮고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오싹-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파팟!

가느다란 침 두 개가 나무에 박혔다.

“누구냐!!?”

라이의 외침은 메아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슉!!

또 한 번의 본능적 몸놀림,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히 피해내지 못했는지 뺨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핏방울이 흘렀다.

라이는 기감을 극한으로 펼쳤다.
하지만 의문의 공격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피슉!

두 개의 침이 또 날아왔다.

캉!

두 개의 침을 모두 검으로 쳐냈다.

‘고수다. 도망가야 한다.’

라이의 자존심을 부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생각이 끝나자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이게 무슨 일이지!?”

일류급 고수가 숨을 헐떡일 정도면 얼마나 빠르게, 오래 달아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휑한 무덤이었다.

“이놈!! 뭐하는 짓이냐!!”

아무리 도망치고 도망쳐도 제자리였다.

- 너는 누구냐.

자신을 이 엿 같은 상황에 몰아넣은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림맹이다! 사건을 조사하러 나왔다! 감히 무림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냐!?”

- 하, 무림맹? 사건?

의문의 남자는 조소를 흘렸다.

“지금이라도 이 진법을 푼다면 죄를 묻지 않겠다!”

- 죄를 묻지 않는다? 상황파악을 꽤 못 하는 편이군.

라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 남자는 자신이 무림맹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말이 길었군.

뚝-

그것이 라이가 기억하는 기억의 끝이다.

주변 풍경이 크게 일렁이더니 한 노인과 청년이 나타났다.

“각아 시체를 다시 묻어주거라.”

“예.”

각이라고 불린 사내는 훼손된 무덤을 정리했다.

‘아이의 힘으로 혼자 무덤을 만들다니, 대단한 아이구나.’

그러고 수풀로 들어가더니 풍희의 아버지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들고 와 묻어주었다.

투박스럽게 만들었던 무덤이 각이라는 사내의 손에 의해서 정갈하고 깔끔하게 다시 만들어졌다.

노인과 사내는 무덤을 향해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반 절.

두 사람은 고개를 한동안 들지 못했다.
일각의 시간 뒤에 노인이 서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그리고 고맙소. 은혜를 잊지 않겠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힘을 잃고 축 처진 라이를 챙겨 그 곳을 떠나갔다.

떠나가는 그 둘의 무복에는 (金)이라는 글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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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뚱때
2. 낯선 목소리

현재는 무림천하다.
20년 전 정사대전에서 정파가 이겼고 사파는 항복했다.

하지만 완전한 무림천하라 할 수는 없었다.

천마신교 또는 마교라고 불리는 사파의 최고 세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정사대전에서 마교는 참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당연히 많은 사파에서 반발이 일어났지만 이미 정사대전이 시작한 이후라 어쩔 수 없었다.

단일 세력으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천마신교가 빠지자 당연히 사파는 정파에게 밀렸다.

무림맹의 맹주 화천주는 사파를 강하게 밀었는데 그 사냥꾼으로 오대세가를 내세웠다.

오대세가도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화천주의 계략에 의해 몇몇 장로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마교의 소행으로 여기고 적극 나섰다.

그렇게 구파의 세력은 굳건하게 지키면서 오대세가의 세력을 갉아먹었다.

마교가 빠진 사파의 세력은 오대세가만으로 충분하다고 계산하고 무림천하를 이룬 뒤에 일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사파도 만만치 않았다. 흑삼호라고 불리는 세 명의 사파지존이 있었는 데, 그들의 세력은 강했다.

사파와 오대세가의 대결구도가 된 정사대전은 서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결국, 사파의 흑삼호가 모두 무너지자 나머지 잔여 세력들은 항복했다.

그들은 무림맹에 무공을 빼앗기고 재물도 모두 뺏겼으며 매달 공물을 바쳐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구대문파는 오대세가의 이름을 모두 빼앗았다.

정사대전에서 힘이 약해진 오대세가를 구대문파와 같은 서열에 둘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대세가는 거세게 반발했다.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신들에게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고 항의했지만 세력이 온전하다 못해 오히려 강성해진 구대문파를 꺾을 수는 없었다.

서서히 압박을 가하던 구대문파는 결국 오대세가를 모두 밀어내고 무림맹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구대문파는 무림맹이 정사대전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떠들어댔고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듯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곧 정의였다. 정파지만 사파처럼 악행을 펼쳐도, 산적처럼 산적질을 해도 자신들이 정의라 떠들어대며 옳은 일이라고 포장했다.

무림맹은 자신들끼리 세력 넓히기에 힘을 썼고 나머지는 소홀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악용했다.

이에 사람들은 말했다.

오히려 정사마 3개의 세력이 서로 공존할 때가 살기 좋았다고, 정파란 정의로 포장한 사의 집단이라고···

“다시 말해보거라! 대한이 복귀하지 않았다고!?”

“예! 저번 임무를 나간 이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끄응..”

현재 머리를 붙잡고 인상을 쓰는 이 중년인은 무림맹의 신리대의 대주 신리소.

무림맹은 현재 7개의 주력부대가 있었고 강한대로 순서를 매겼는데, 그중 7번째의 위치한 부대가 신리대이였다.

“계집질이라도 하는 것으로 여겨 심하게 생각하지 않았건만···알겠다.”

신리소는 손을 휘적휘적 저어 보고를 끝낸 대원을 내보낸 후 생각에 잠겼다.

‘대한이는 나무꾼을 처리하라고 말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골똘히 생각하던 신리소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탁-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자 천장에서 두 명의 인영이 내려왔다.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자와 무복은 똑같지만 지니고 있는 패가 달랐다.

“자이, 라이! 너희 둘이 가서 조사를 해보고 오거라.”

“명!”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두 명이 사라졌고 신리소는 창밖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구나.”

그의 시선 끝에는 맹렬히 휘날리는 ‘무림맹’ 깃발이 있었다.

···

“으헉!!!”

두 팔을 하늘에 닿을 듯이 쭉 뻗고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난 풍희는 식은땀에 절어 있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풍희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털썩···

자신의 앞에 싸늘히 죽어 있는 아버지를 보자 풍희는 무릎을 꿇었다.

“아..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아···.”

눈꺼풀이 심하게 흔들렸다.

두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이어졌다.

“제..발 아버지···”

손을 뻗자 차가운 아버지의 손이 잡혔다.
너무나 차가웠다.
항상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따뜻하게 잡아주셨던 그 손이 차가웠다.

뚝-

이성이 끊어졌다.

“으아아아!!!”

그리고 오열했다.

억울했다. 분했다. 두려웠다.

풍희의 절규에 들어있는 세 감정은 숲 속의 새들조차 놀라 도망가게 만들었다.

눈물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느껴졌다.
아버지의 차디찬 몸은 보이지 않아도 풍희에게 느껴졌다.

절실하게 불렀고 있는 힘껏 깨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했다.

털썩-

그렇게 풍희도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못했다.

···

세 시진 가량 흐른 거 같았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풍희에 눈에 복면인의 시체가 들어왔다.

분노.
지금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단 하나 분노였다.

타다닥- 푹!

찔렀다.
복면인의 반쪽 가슴을 마구 찔렀다.

시체는 움찔거리며 피를 뿜었다.

푹! 푹! 푹!

얼마나 찔렀는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시체에서는 피도 흐르지 않았다.

풍희의 눈에도 생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저 찌르고 또 찌르고 또 찌르며 자신의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표출했다.

복면인의 시체는 사람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그가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까악- 까악-

까마귀에 울음소리가 풍희의 귓가에 들려왔다.

흥건한 땀과 진득한 피가 얼굴에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묻은 단검을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풍희의 모습은 아찔했다.

풍희는 단검을 거꾸로 잡고 높게 들어 올렸다.

“아버지··· 기다려요. 제가 따라갈게요.”

하늘 높이 들어올린 단검을 자신의 심장으로 찔러오던 그때 엄청난 달빛이 풍희를 비췄다.

“으악!”

순간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만큼의 강한 달빛에 풍희는 들고 있던 단검을 놓쳤다.

탱! 탱. 탱···.

땅에 떨어진 단검은 공중에 두어 번 떠올랐다 떨어졌다. 힘을 잃고 축 처진 단검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리고 꿇었다. 

“저는 아버지 없이 살 수 없어요...”

시원한 바람이 풍희를 감싸 안았다.

- 살아라.

“네??”

누군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살아서 돌아가라.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누구야!”

- 너가 죽는 것은 너의 아비가 원하지 않는다.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나는 아버지 없이 살 수 없어!”

- 아비와 너를 잃은 네 어미는 어떻게 할 것이냐.

“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큰 슬픔 앞에서 또 다른 슬픔을 생각하지 못했다.

- 가거라, 살아서 가거라.

이 의문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 하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여 주세요. 저는 어머니를 지켜야 합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시체를 묻기로 결정했다.

마침 자신이 쓰러져 있던 곳에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왜 파여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아버지를 편안히 묻어 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산에 묻어드립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구덩이로 옮겼다.

삽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풍희는 맨손으로 흙을 덮었다.

손톱이 들리고 돌맹이에 베여 피가 흘러도 풍희는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아버지를 덮었다.

한 시진의 시간 동안 흙을 파서 아버지의 무덤을 만들었다.

복면인의 시체가 있는 곳과 가까운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저 시체는 이제 곧 야생 동물들에 먹이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괘념치 않았다.

풍희는 아버지의 무덤 가운데에 나뭇가지 하나를 꽂았다.

“아버지. 저와 아버지의 마지막 나무입니다.”

풍희는 아버지의 무덤을 향해 절을 했다.

한번.

스륵-

두번.

스르윽-

반 절.

풍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뚝···뚝···뚝···

꾹 참고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몸을 움찔거리며 참아보려 애썼지만 눈물샘은 멈추지 않고 눈물을 뿜어냈다.

“끅···끅!”

입술을 질끈 깨물고 울음소리를 참았다.

입술이 터져 흐르는 피는 아프지 않았다.

가슴의 아픔이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힘겹게 팔을 올려 눈물을 닦아낸 풍희는 웃어보았다.

얼굴 근육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씰룩씰룩거렸지만 노력했다.

‘울지마! 웃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나는 희(熹)니까!’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어깨는 쉴 새 없이 움찔거렸지만 입 모양 만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으브지... 저 꼭! 꼭! 어머니를 지킬게요···”

그러자 마치 아버지가 화답이라도 하듯이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풍희의 볼에 사르르 앉았다.

아버지가 웃으며 자신을 향해 장하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풍희는 그제야 아버지의 유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내려갔다.

올라갈 때는 몸이 둘이었지만 내려올 땐 몸이 하나였다.
하지만 올라갈 때 마음은 하나였지만 내려올 때 마음은 둘이었다.

가슴속 깊이 묻었다.

···

신리소의 명을 받고 출발한 두 복면인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풍희가 내려가고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들짐승들이 지나가기라도 했는지 그 누구의 시체도 존재하지 않았고 붉은빛을 내는 지면만이 그들을 반겼다.

“이곳이 맞지?”

“응, 분명 여기가 확실해.”

“이상한데??”

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는 분명 일방적으로 폭행했다. 헌데 이곳부터는 정반대가 됐어.”

라이는 자이가 가르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고 모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이 무덤을 만들었을 리가 없잖아.”

두 사람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자신들이 아는 대한은 무덤은커녕 손속에 자비를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투의 흔적도 희미할뿐더러 무덤 하나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순간 혹시 하는 생각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지나쳤다.

“저 무덤부터 파 보지.”

자이가 손에 내공을 끌어 올리더니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자 뭉쳐있던 흙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뭐야 이거!”

“왜? 설마 대한이야!?”

자이는 말없이 뻥 뚫린 무덤을 가리켰다.

“없어.”

“뭐!??”

“아무도 없어. 나무꾼도 대한이도.”

라이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얘기했다.

“그 어떤 흔적도 없어. 도망간 흔적도, 죽은 흔적도.”

“확실히 이 일은 이상한 점이 많아. 우선 돌아가자.”

“먼저 출발해 나는 우리 흔적을 지우고 따라갈게.”

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출발했다.

라이는 그곳에 남아 발자국을 흙으로 덮고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오싹-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파팟!

가느다란 침 두 개가 나무에 박혔다.

“누구냐!!?”

라이의 외침은 메아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슉!!

또 한 번의 본능적 몸놀림,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히 피해내지 못했는지 뺨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핏방울이 흘렀다.

라이는 기감을 극한으로 펼쳤다.
하지만 의문의 공격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피슉!

두 개의 침이 또 날아왔다.

캉!

두 개의 침을 모두 검으로 쳐냈다.

‘고수다. 도망가야 한다.’

라이의 자존심을 부릴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생각이 끝나자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이게 무슨 일이지!?”

일류급 고수가 숨을 헐떡일 정도면 얼마나 빠르게, 오래 달아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휑한 무덤이었다.

“이놈!! 뭐하는 짓이냐!!”

아무리 도망치고 도망쳐도 제자리였다.

- 너는 누구냐.

자신을 이 엿 같은 상황에 몰아넣은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림맹이다! 사건을 조사하러 나왔다! 감히 무림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냐!?”

- 하, 무림맹? 사건?

의문의 남자는 조소를 흘렸다.

“지금이라도 이 진법을 푼다면 죄를 묻지 않겠다!”

- 죄를 묻지 않는다? 상황파악을 꽤 못 하는 편이군.

라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 남자는 자신이 무림맹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말이 길었군.

뚝-

그것이 라이가 기억하는 기억의 끝이다.

주변 풍경이 크게 일렁이더니 한 노인과 청년이 나타났다.

“각아 시체를 다시 묻어주거라.”

“예.”

각이라고 불린 사내는 훼손된 무덤을 정리했다.

‘아이의 힘으로 혼자 무덤을 만들다니, 대단한 아이구나.’

그러고 수풀로 들어가더니 풍희의 아버지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들고 와 묻어주었다.

투박스럽게 만들었던 무덤이 각이라는 사내의 손에 의해서 정갈하고 깔끔하게 다시 만들어졌다.

노인과 사내는 무덤을 향해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반 절.

두 사람은 고개를 한동안 들지 못했다.
일각의 시간 뒤에 노인이 서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그리고 고맙소. 은혜를 잊지 않겠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힘을 잃고 축 처진 라이를 챙겨 그 곳을 떠나갔다.

떠나가는 그 둘의 무복에는 (金)이라는 글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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