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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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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파스는 왜 사오라 신 거에요?"

진현은 힐끗 삼촌의 목덜미를 바라봤다. 와이셔츠 안으로 이미 붙여둔 몇 개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냥, 어제 운동을 좀 오랜만에 했더니."

"운동이요?"

"그래, 움직이니까 알이 배긴 거 같은데. 좀 붙여줘라."

삼촌은 등을 살짝 까고 진현에게 내밀었다. 진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파스 냄새가 진동하는 삼촌의 등에 파스를 까서 붙였다.
붙일 때마다 삼촌은 이상야릇한 신음 소리를 참으며 움찔거렸다. 질려 하는 진현을 뒤로하고 한숨을 내쉰 삼촌이 가까스로 일어섰다.

"어후. 이제 좀 낫네. 그래. 남은 건 여따 두고."

파스를 집무용 책상에 두며 진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 뭔 일 하면 되죠? 저도 애들 가르치고... 그렇게 되는 거에요?"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출근하란 얘기도 들었지만, 아직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는 몰랐다. 약간의 기대감을 품은 진현의 말을 들은 삼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가르치다니. 너 쯩은 있냐?"

"쯩?"

"자격증. 이놈아. 선생 일은 아무나 시켜주는 줄 알아? 이것도 다 임고 보고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거다."

머쓱해진 진현이 눈길을 피했다. 삼촌은 말을 이었다.

"여러 가지 할 거다. 사무보조도 할 거고, 학교 보안관님 도와서 순찰도 하고. 해줘야겠다."

"잡일이네요."

"그럼. 자격증도 없는데? 심심하지는 않을 거다. 교무실 가서 인사드리고. 일도 잘 도와 드리고."

꾸벅 숙인 진현이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리자 삼촌이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네."

"머리 커트 잘했네."

그렇게 진현의 근무 첫날이 시작되었다. 새집에서 새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첫날 밤. 실감이 나지 않아 잠을 설쳐왔던 진현이었다.
하물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깨어야 했으니, 억지로 깬 아침 해는 그리 살갑지 않았다.
눈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얼굴 전체로 받아내며, 교장의 인도하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진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최진현 입니다.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게 됐습니다. 어... 잘... 부탁드립니다."

잔뜩 긴장한 모양새였다. 둘러보는 척 주위를 살폈지만, 누구의 얼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빨리 끝내고 얼른 일이나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용기를 내지른 다짐이었다. 눈을 질끈 감은 진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박수!"

교장이 짧게 말하자 모여있던 교직원들이 일제히 손뼉을 부딪혔다. 제 딴에는 이사장의 조카란 걸 미리 귀띔받았을 테니 환영해 주려는 제스쳐 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진현에게 숨을 죄여올 듯한 자리를 만들 뿐이었다.
`아, 에바야. 제발 빨리 좀 끝내 줘.` 라며 괴로워하는 진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많은 시간을 쏟아주었다.
세상 어느 직장이 오늘 들어온 일개 잡무용 말단 직원을 보려고 이렇게들 모인단 말인가. 엿을 먹일 생각이었다면 정말이지 정성스러운 설계였을 것이다.

"첫날이니까, 진현 씨는 일단 좀 둘러보면서 학교 지리도 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한번 알아보세요."

교장은 친근한 척을 하며 진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교장의 벗겨진 이마 면적만큼 두툼한 손바닥이 어깨를 거의 덮을 지경이었다.
지리고 뭐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어젯밤 은하와 사진을 찍을 때 억지로 웃었던 표정을 떠올리며 진현이 답했다.

"아, 네. 교장 선생님."

웃지도 일그러지지도 않은 표정에 교장이 살짝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 아파요?"

"...네?"

"꼭 뭐 씐 얼굴이길래."

농담이었다는 듯 허허 웃는 교장과 수습용 어색한 미소를 보인 진현이었다.

"방학 기간이라, 그리 바쁠 건 없어요. 교내봉사 좀 하는 학생들 몇 명 빼고는 한산합니다. 일 배우는데 적당한 시기에 왔어요, 진현 씨."



은하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 따스하게 비치는 햇볕이 등 뒤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침대에 부비적 대고 일어났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핸드폰을 켜 화면을 바라봤다. 바탕화면에 어색하게 웃는 진현이 눈에 들어왔다. 은하는 배시시 웃었다. 안방 문을 열고 나오니 잼을 발라 접어놓은 식빵 몇 개가 부엌에 놓여 있었다.
얼기설기 잘려 예쁜 모양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만들어 준 음식이었다. 어머니를 보낸 후로 처음 맞이하는, 감정이 담긴 식사였다.
간단한 세면 후 마루에 상을 차린 은하는 식빵을 입에 넣으면서, 자고 있었던 자신을 위해 아침을 만들어주던 서툴지만 따듯한 손길을 상상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진현은 벌써 등 뒤가 젖고 이마에 땀이 방울져 맺혔다. 일을 배우기 적당한 시기라더니, 확실히 개학 후였으면 더 바쁘고 더 복잡했을 것이다.
옮길 서류 더미와 기재들은 아직도 진현의 키만큼 쌓여 있었다.

"이걸 하필 오늘 옮기는 이유가 있어요?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아보라 하시던데."

진현은 함께 작업 중인 젊은 교사를 바라봤다. 교사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냥, 평소엔 제가 주로 했는데요. 오늘 진현 씨 왔으니 같이 하는 김에 창고에 쌓여있던 것들까지 해치워놓자고 얘기가 나와서 말이죠..."

딱히 교사가 진현에게 미안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언젠간 해야 할 일이었고, 하는 김에 다 끝내 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진현은 그저 혼자 하지 않아도 되는 데에 위안을 삼았다.
덥고 습기 찬 창고에 먼지까지 날리니 죽을 맛이었다. 교사는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래서 내가 일자리가 생겼구나.` 진현은 생각했다.

"아, 잠깐만요. 진현 씨. 우리 점심 먹고 해요."

못 버티겠다는 듯 손사래를 친 교사가 슬쩍 핸드폰을 바라봤다. 살짝 안도하는 모습을 띠었다.
한창 힘을 써 팔뚝에 힘줄이 잔뜩 선 진현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아 뭔, 노가다 뛰러 온 거 같네. 전 담배 한 대 태우고 갈게요."

진현이 담뱃갑을 꺼내 들자 교사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같이 가시죠."

"담배 태우세요?"

"아뇨, 어디 있는지 못 찾으실 거 같아서."

진현은 그러려니 하고 교사와 함께 창고를 나섰다. 그나마 햇볕은 가려주던 창고와는 달리, 밖은 불지옥과 다를 게 없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는 아찔할 지경이었다.

"어우. 빨리 가요, 흡연장, 그늘은 있죠?"

"어... 있었나?"

진현은 자신 없게 말하는 교사가 걷는 방향으로 따라 걸어갔다. 몇 분을 넘게 익어가며 걸었지만, 교사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 가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급기야 교사는 교문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진현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거기 왜 나가요??"

뜬금없는 소릴 들은 표정으로 교사가 뒤돌아봤다.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힘없이 대꾸했다.

"흡연장이 밖에 있으니까요?"

"학교 안에 담배 필 데 없어요?"

"없어진 지 꽤 됐어요."

"그럼 흡연자들은요?"

당황하는 진현을 바라보며 교사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 나가던지, 참아야죠."

교사는 진현을 데리고 교문을 나서 바로 옆에 있는 학교 소유의 공터로 향했다. 열기의 포화를 버티며 익어가는 양철 깡통 하나가 저 멀리에 보였다.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흡연장을 향해 힘을 짜내어 달려온 진현이 뱉었다.

"에반데."

멈칫한 진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늘을 찾았다. 뒤에서 교사가 지친 기색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폐만 썩으면 되는데 쪄 죽기까지 하겠어요. 어디 해 피할 데 없어요?"

"정 그러면 요 밑에 언덕에 내려가셔도...?"

진현은 흡연장 밑에 비탈길을 바라봤다. 폐기된 물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 위태로워 보이지만 사람 한두 명 가릴 그늘이 보였다. 이거다, 싶은 진현은 주저 없이 언덕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목엔 꽁초를 재배하기라도 하는듯 사방에 꽁초들이 널려있었다. 진현은 직감적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제 손으로 치워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하게 웃는 진현은 그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늘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났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딱히 마주칠 생각이 없었던 진현은 적당히 햇빛이 가리는 곳에서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부싯돌이 몇 번 돌며 불꽃이 튀겼지만 불은 붙지 않았다. 가스가 다 떨어졌다.
더운데 라이터까지 못 쓴다니, 진현은 짜증을 내며 인기척이 나던 안쪽을 향해 외쳤다.

"죄송한데 불 좀 빌려주세요?"

"......"

안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기척을 뒤늦게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했다.

"...저기요?"

묵묵부답이었다. 평소라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대꾸를 안 하겠거니 하며 모른 체 돌아갔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빨리 한 대 피우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불 만 좀 빌려주세요. 죄송한데."

불쑥 안으로 들어간 진현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한 명을 발견했다. 진현과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뒤로 돌려 가리기 시작했다.
은하와 같은 교복을 입은 거로 봐선 진현이 근무하는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왜 그랬는지 알겠다고 생각한 진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이터 좀 빌려주세요."

그녀는 분명 자기 교복을 봤을 텐데 별말 없이 그저 라이터만 달라는 진현에게 의아했다. 라이터를 조심스럽게 내밀자 진현은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고는 뒤 돌아 불을 붙였다.

"감사합니다."

땀이 잔뜩 배어 나온 손에 라이터를 살짝 쥐여준 진현은 밖으로 나서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늘이 고팠지만 불을 빌려준 은인이 불편할까 배려하겠단 마음이었다.
비탈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온 진현은 차츰 훈제되어가는 교사를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피고 갈게요."

"천천히 태우세요.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을 것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더욱 미안해진 진현이었다.

"근데, 왜 굳이 그늘에서 안 태우시고. 아래 누구 있었어요? 말소리 들리던데."

"아. 걍 혼잣말이에요. 꽁초 하도 많길래 감탄한 거. 거기서 그늘에 있느니, 그냥 위에서 피려구요."

대충 빨아낸 한 개비를 깡통에 던져넣은 진현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가시죠. 담배도 안 태우시는데 기다리게 했으니 시원한 거 하나 살게요."

"어 좋죠."

흔쾌히 승낙하는 교사를 앞장세워 따라가는 진현은 비탈길 밑을 슬쩍 바라봤다.
여학생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진현은 안심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늦은 아침을 먹은 은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뒹굴다 비로소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진현도 식사 시간이겠거니 하면서, 늦게 일어난 소박한 사치를 자랑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켜 진현의 번호를 띄운 은하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오빠, 뭐해?"

정적이 잠깐 흘렀다.

"...아 은하냐?"

"뭐야. 번호 저장 안 했어?"

서운한 티를 팍팍 내며 은하가 타박했다. 핸드폰 너머에서 어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어. 목소릴 못 알아봤네."

"어쩜 동생 목소릴 못 알아봐?"

은하 스스로도 이제 하루 이틀이 지났는데, 못 알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장난스럽게 타박하며 그저 진현의 쩔쩔매는 목소릴 듣고 싶던 것이다.

"그래. 뭐. 밥은 먹었냐?"

"밥 안 먹었지."

"어? 거 놔뒀는데, 못 찾았어?"

놀란 반응을 들으며 짓궂게 웃은 은하가 대답했다.

"빵 먹었는데."

허탈해하며 구시렁대는 진현의 목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다. 그 옆으로 누구냐 물어보는 목소리가 살짝 났다.

"아, 동생요. 동생. 네, 여기 학생."

멀찍이서 들리던 진현의 목소리가 커졌다.

"무튼 나 끊는다? 잘 뒹굴고 있어."

"뭐야, 바빠?"

"인제 바쁠라고."

아쉬워하는 은하가 말을 더 붙였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장 보고 올게."

"먹고 싶은 거...? 너 냉면 삶을 줄은 아냐?"

진현의 물음에 은하가 뜬금없다는 듯한 소리를 했다.

"뭐 라면 끓이는 거 처럼 하면 되는 거 아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진현이 말을 이었다.

"내가 한다, 내가 해. 장만 봐와."

전역 후 자취하던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듯 진현은 자신만만했다.
통화를 끝낸 후 은하는 고이 모셔둔 오만원권 지폐를 꺼내 들었다. 비로소 쓸 일이 생겼다. 
핸드폰을 켜 냉면 재료를 확인하며 은하는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뭐 드실래요?"

매점 안은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였다. 음료 판매용 냉장고를 여니 냉기가 그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교사는 주저 없이 우유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 민초 에반데."

대놓고 진현이 찡그리자 교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트초코가 왜요."

뭐라 더 말하려던 진현이 시선을 피했다. 교사가 말을 이었다.

"상쾌해서 좋지 않나요. 저도 담배 끊을 때 도움 많이 됐는데."

"담배를 끊어요?"

진현이 놀라워하자 교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결혼하고 같이 살다 보니까요. 아내가 비흡연자여서 알게 모르게 고생했었더라구요."

"민초를 드시는데 결혼을 해줘요?"

진현의 농담에 교사가 웃으며 타박했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난 후 관계가 부쩍 돈독해진 기분이었다. 밥심이 생기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기세를 몰아 진현과 교사는 창고 작업을 시작했다. 여전히 덥고 습기 차고 먼지 날리는 공간이었지만 사람 감정이란 게 일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오전보단 덜 힘든 느낌이었다.
진현이 내려놓은 마지막 서류 더미를 옮기자 작업은 비로소 끝났다. 일을 마친 후 땀을 뚝뚝 흘리는 진현을 보고 잔뜩 지친 교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무슨 일 하다 오셨어요? 체력이 장난 아니신데?"

진현은 얼버무렸다.

"그냥, 뭐. 나라 지키는 일 하다 왔죠."

"아~."

교사의 눈이 호의를 가득 품었다. 뭐라 더 물어보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해하는 진현의 분위기를 읽었다. 
나중에 더 물어볼 기회가 있겠거니 싶던 교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암튼 고생하셨어요. 진현 씨. 이거 끝나면 퇴근해도 된다셨어요."

"벌써요? 아직 퇴근까진 멀었는데."

"진현 씨 첫날이기도 하고, 힘쓰는 일 하느라 힘드셨을 거라셔서 요."

분명 알게 모르게 삼촌의 배려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따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웬 떡이냐 싶었다.
교사와 함께 교무실로 들어서니 시릿할정도의 찬 공기가 진현의 피부를 때렸다. 순식간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급격히 풍기는 둘의 땀 냄새에 사람들이 돌아보자 교감이 그 둘을 알아보고 말을 꺼냈다.

"어이구, 진현 씨. 고생했어요. 첫날이라고 일도 알아볼 겸 창고 정리만 살짝 해달라 했는데, 땀으로 샤워를 하셨어."

"거기 있는 거 다 끝내 놨습니다. 교감 선생님."

진현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자 교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걸요? 둘이서?"

함께 일했던 교사가 멋쩍게 말했다.

"사실 진현 씨가 거의 다 하셨어요."

진현이 좀 더 많이 하긴 했어도, 절반쯤 못 미치게는 교사가 한 게 맞았다. 괜히 띄워주려는 듯해 보였다. 진현은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어유, 고생 많으셨네. 퇴근하세요. 황 선생님도. 오늘은 퇴근해요."

"아, 아뇨. 전 집에서 씻고 다시 나오겠습니다."

교감이 푸근하게 웃으며 말렸다.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한두 시간쯤 일찍 가는 건데. 신혼이잖습니까."

진현 덕분이라는 듯 멋쩍게 웃은 교사가 꾸벅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진현 역시 마음이 한결 만족스러워졌다.



집으로 돌아온 진현이 지친 기색을 하며 땀 냄새를 잔뜩 풍겼다. 은하는 장을 보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회다 싶은 진현은 옷을 벗어 재끼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모처럼 편히 씻을 시간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려 하자 문고리가 잠겨있었다.
의아해하던 진현이 몇 차례 더 돌리자 안에서 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오빠, 벌써 왔어?"

"안에 있었냐?"

큰일 날 뻔 했다. 진현은 다시 땀으로 가득 찬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은하가 나오길 기다렸다.

"장 다 본 거야?"

"어, 아니... 오빠랑 같이 보러 가려구. 기다렸어."

"그래. 좀 씻고 가자."

화장실 안에선 살짝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진현은 코를 푼다거나 잘못 들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땀으로 찝찝하고 지친 탓에 뭐라 더 신경 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은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화장실을 나섰다. 은하의 눈가가 발갛게 부어있는 듯 보였다.

"...뭔데. 울었어?"

"어, 아냐! 아니. 그냥."

장을 보러 가겠다던 은하가 왜 굳이 진현을 기다렸는지. 우는듯한 모습을 보였는지. 그리고 유달리 기운 없는 목소리를 냈는지 의문이 들 법도 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퇴근한 만족감에 젖은 진현은 평소보다 사려 깊지 못했고
그런 은하의 모습을 그저 그러려니 넘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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