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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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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진현은 이틀 연속으로 쌓인 피로로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땀에 젖은 몸을 따듯한 물로 씻어내고 풍기는 노곤함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온몸에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현은 거의 쓰러지듯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그가 눈을 다시 뜬 것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자정을 앞둔 밤이었다. 
분명 아무렇게나 몸을 뉘이고 잠들었을 자신의 몸은 그럴싸하게 깔린 이부자리에 감겨있었다.
같이 저녁밥을 먹지 못해서 서운했겠지만, 그래도 동생이라고 오빠를 챙겨줬구나. 진현은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무겁고 저린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오랜 폐인 생활로 떨어진 체력은 고작 이틀 만에 완전히 방전 난 듯 했다. 
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태우고, 다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동생과 함께 지낸다면 다시 일하면서 서서히...

`그러면 성주는?`

담뱃갑을 쥐고 슬리퍼를 신으며 문득 든 생각이다. 매일 밤 찾아오던 괴로움이 또 한 번 진현을 덮쳤다. 
은하가 찾아오고 나서 최근 며칠은 사람답게 살 만했다. 즐거웠고, 웃음도 찾았다.
그렇다고 성주가 진현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을 바라고 있을까? 
자신의 판단으로 인해 끝장난 한 사람의 인생이 과연 진현과 은하를 용납할 수 있을까?
피로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엄습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어서인지.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두통이 생겨났다. 
관자놀이 한쪽에 깊게 박힌 듯 고통이 진현을 갉아먹고 있었다.
잔뜩 찡그린 진현은 머리를 털듯 휘적였다. 
차라리 다시 악몽을 꾸게 된다면, 괴롭지만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은 자야 한다. 담배 한 대만 태우고, 다시 자자. 그렇게 생각했다.
은하는 아마 안방에서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깨울 만큼 시끄럽지는 않겠지만 진현은 살짝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내려가는 내내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예전 같았다면 끈적이고 시큼한 계단을 내려가면서 신발 밑창이 가득 눌어붙었을 것이다.
이런 작지만 즐거운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은하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아직도 예전 자취방에서 서서히 죽어가려 했을 것이다.
아직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은하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었다. 
진현은 내일 일어나면 함께 아침이나 먹자고 할 셈이었다.

"거 생긴 거도 한방 컷 나게 생겼는데. 개 좁밥 아님?"

"리얼루다가."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면서 시끄럽게 구는 패거리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딱히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은 조용히 한 대 피우고선 조용히 올라가면 됐으니까. 
하필 사람들 사는 건물 바로 앞에서 떠드는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떠들다 갈 것이다.

"이열~ 김은하 어깨춤 쌉 장인~."

"야, 일단 데려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누군가의 입에서 은하라는 이름이 나왔다. 진현은 순간 눈이 동그래져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명 방 안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은하는 패거리와 함께 있었다. 정확히는 덩치 큰 남자에게 팔목 한쪽을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진현은 그들이 누군지, 은하는 왜 저기 잡혀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보려 하기엔 늦을 것 같았다. 그러나 딱 한 가지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이전, 성주를 잃은 경험. 자신의 판단으로 한 사람의 20여 년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진현은 지금 그가 바라보는 상황이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의 상황이 맞는지 갈등했다.
눈앞에 은하가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다. 어디로 데려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은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상황을 오해한 거라면? 그저 친구들일 뿐이고, 함께 놀러 나가는 거라면?

한창 놀러 나가는 와중에 내가 찬물을 끼얹는 거라면? 흥이 깨진 저들이 은하를 속으로 탓하게 된다면?`

암만 친구라 한들, 보호자의 처지로서 미심쩍다면 제지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진현은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날 이래로 자신의 선택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택한 길은 다 틀렸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도 아닌, 안전한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조차 제동이 걸렸다. 
지금 이렇게, 그의 동생이 어디론가 붙잡혀 가는 와중에도.

"너네 어디 가냐."

제정신이 아닌듯한 그의 이성이 진현을 저지하자, 본능이 참다못해 입을 움직였다. 
진현은 스스로도 놀랐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직전까지 무엇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망설임이 사라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패거리들이 진현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의 동생 역시 진현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가 발갛게 부어 있었다. 은하가 울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주저함은 노여움이 되었다.

"어디 가냐고."

익숙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온몸에 힘이 돋으며,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직전까지 힘이 빠져 덜덜거리던 손은 주먹을 쥘 수 있는 기운이 솟아올랐다.
진현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며 머릿수를 세었다. 분노와 확신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은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 씨발. 여서 지랄하니까 껄렸잖아. 먼저 가 있어."

은하의 팔뚝을 우악스럽게 잡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자신감 넘치게 다가왔다. 
호기롭게 발리송을 꺼내며 멋들어지게 휘두르더니 손에 감기듯 쥐었다.

"으의. 아저시."

남자가 진현을 내려다보며 위협적으로 뱉었다. 진현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겉멋충 새끼들 위해서 우리가 나라를 지키다 왔다니.`

국가에 헌신하고자 키웠던 근육과 바쳤던 노력은 뭘 위함이었던 것인가. 
남의 동생 어디로 데려가려는 유사 양아치들이 안전하게 활보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였던가.
울분이 차올랐다. 대접받기를 원하진 않았지만, 괄시받고 싶지도 않았다.

"남 일에 꼰대 짓 하지 마시고 거 딴 데 좀 새있..."

또다시 본능이 꿈틀거렸다. 진현의 이성은 충분히 그의 손을 가만히 두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쌓인 울분을 원동력으로 삼은 본능은 주먹을 쥐게 하였고, 주먹은 진현이 의식하기도 전에 눈앞의 덩치의 배를 강타했다.
바람 새는 소리가 남자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진현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생각했다.

무릎을 꿇은 남자의 눈이 휘 번득하며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현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하체에 힘을 줘 남자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남자가 쓰러진 후 진현은 다시 전방을 노려봤다. 은하는 여전히 패거리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어디로 도망칠 수는 없겠지만, 쉽게 풀어주진 않을 것이다.
진현은 일부러 별것 아니라는 듯 허세를 부렸다.

"넌 뭐, 이렇게 먼저 깝싸면 먼저 쳐맞는 거 모르냐? 요새 자릿세 걷는 양반들도 이런 건 안 해요."

그의 말을 들은 패거리들이 살짝 위축되는듯했다. 생각건대 이 남자가 패거리에서 힘을 담당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반응을 살핀 진현은 옳다구나 하며 말을 이었다.

"니네 뭐하는 새끼들인데?"

진현은 기절한 남자를 발등으로 뒤집어 그의 배에 발을 올렸다. 저쪽이 은하를 데리고 있다면, 그 역시 한 명을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아이, 씨발. 진짜."

슬쩍 한 명이 나서서 짜증을 내며 진현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꾸벅 숙이며 진현에게 사과했다.

"아, 예. 얘가 좀 깝쳤네요. 죄송합니다."

쓰러진 남자를 부축해 데려가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현이 피식 웃었다.
이미 진현을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 숙이는 체하며 벗어나려 드는 것이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진현에게 등 뒤를 보이며 덩치를 데리고는 일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껏 잡은 인질을 슬며시 데려가려 들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죄송해?"

"예, 예. 죄삼다. 예."

곧 죽어도 허세는 못 놓겠다는 듯 그가 비아냥댔다. 진현 역시 봐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진현은 망설임 없이 그의 발목을 걸었다. 넘어지는 그의 등짝에 큼직한 발 도장을 찍으며 패거리 쪽으로 밀어버렸다.
예상대로 덩치를 돌려받지 못하자 소란이 일었다.

"야, 씨발. 사람 팬다! 신고해! 빨리!"

은하의 팔목을 잡은 여자가 급히 외쳤다. 진현은 가소로워 웃음이 났다. 
한밤중에 여자 한 명을 단체로 끌고 가려고 들고, 제지하려 들더니 칼을 내보이던 이들이 적반하장으로 소리쳤다.
진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근처의 전봇대와 현관문 안쪽을 바라봤다. 
상황을 그대로 찍고 있는 cctv가 눈에 들어왔다. 일이 틀어지면 저 기계들이 자신을 변호해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최소한 없는 것 보다 나을 것이다. 진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넣은 이상 이미 저쪽에서 싸움을 더 걸어오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도박을 걸어볼 때였다. 진현이 눈을 부라렸다.

"니들 좆대로 해라. 근데, 그전에. 내 동생 울린 씹쌔끼 누구야."

패거리가 술렁거렸다. 진현의 독기 가득찬 표정을 보며 누군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 얘, 지 혼자 막... 울던데...요."

"맞어. 우리 아무 것도..."

"내 동생 누가 울렸냐고."

진현이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은하의 팔뚝을 부여잡고 있던 여자가 슬며시 힘을 풀었다. 
은하는 이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뿌리쳐 달아나 진현의 뒤로 돌아갔다.
은하는 우뚝 서 있는 진현의 허리를 잡고는 조용히 흐느꼈다. 은하의 눈물이 셔츠 뒤에 번지는 게 느껴졌다.

"이거 다 뭔 일이야."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진현이 은하에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은하는 끅끅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진현은 전봇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용히 갈래. 아니면 일 키울래. 이거 다 찍히는 거 니네도 알지?"

덩치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줬지만, 근육이 빵빵하게 차있기라도 한 듯 쉽게 눌리지 않았다. 
진현은 식겁했다. 선빵쳐서 쓰러트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당했을지 모른다.
"지금 밟히는 새끼, 나한테 칼 꺼내고. 니넨 내 동생 붙잡고 끌고 갈라 하고. 신고? 해봐. 새끼야. 아니, 내가 한다. 딱 대."

"아니, 진정해요. 아저씨."

진현이 발로 밀쳐 보냈던 남자가 손을 뻗으며 멀리서 제지했다. 당혹감이 가득했다.

"걔 지금 보관 기간이라. 또 걸리면 좆돼요. 사람 살린다 치고 제발."

쓰러져 있는 덩치를 가리키며 외쳤다. 진현은 기가 차 웃었다.

"누굴 살려? 이 새낄? 사람 칼찌 할라는 새끼를?"

"아 진짜, 부탁드립니다."

간곡하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며 진현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에게 함부로 위해를 가하려는 양아치들도 그들만의 우정이 있었다. 
그것도 쉽게 포기하거나 배신하지 않는 연대감이었다.

`지들끼린 아주 물고 빨고 하면서.`

고개를 저으며 복잡한 얼굴을 한 진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 일이 어떻게 시작됐든 끝장을 볼 수 없다면 두고두고 화근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쓰러진 덩치가 진현에게 품을지 모를 원한은 제외하고서라도, 패거리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듯했다. 
그들을 더 자극하자니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를 위협이 진현에게도 부담되었다.
일을 크게 벌인다 한들, 지금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또다시 진현에게 갈등이 찾아왔다. 자신의 선택을 믿기 힘든 그는 고개를 돌려 은하를 바라봤다. 
은하는 진현을 보며 끄덕였다. 그 고갯짓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내 고개를 든 진현은 패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니네 어디가서 센타를 까든. 뭘 뽀리든. 쳐 잡혀가든 나랑 상관없는데, 은하 한 번만 더 건드려봐."

진현 역시 허세를 가득 담아 뱉었다. 가슴이 요동치는듯했다. 태연한 척 하려 애를 썼지만, 흥분한 감정이 겉으로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돌아선 진현은 은하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남매가 올라가며 계단의 등이 켜지고, 꺼질 때까지 패거리는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씨발. 다 뭔 지랄이야."

"야, 동생이라던데? 남친 아니야?"

각자 한마디씩 내뱉으며 누워있는 덩치를 부축하기 시작한 패거리는 자리를 떴다.

"야, 니. 그 새끼가 은하 남친이라매. 종훈이한테 이빨 쳤냐?"

부축하는 남자가 룸메이트에게 화를 내며 몰아붙였다. 그녀 역시 신경질을 냈다.

"아니, 씨발. 그년이 남친이랬다고! 나한테 지랄해, 왜!"

그는 화를 내는 룸메이트를 애써 무시하며 둘러업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조졌네. 아. 야, 야. 인나봐. 종훈아. 허... 얘 아예 뻗었네."



방으로 돌아온 남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불 꺼진 방 가운데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은하는 간신히 진정된 듯 흐느낌을 멈췄고, 진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끄러미 은하를 바라봤다.
뭐라 말하려다 마음을 접고, 진현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늦었다. 씻고. 옷 갈아입고. 바로 잠이나 자."

잔뜩 위축된 은하를 뒤로한 채 진현은 연거푸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거리가 펼쳐졌다. 
근처에 불법주차된 승용차 뒤로 들어간 진현은 줄담배를 피웠다.
다섯 개, 여섯 개. 급기야 기침이 나올 지경이었다.
콜록대며 바닥에 침을 뱉고는 꽁초를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흥분이 가셨고,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진현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하늘을 쳐다봤다.

"하..."

별 없는 밤하늘을 향해 숨을 크게 내쉰 진현은 고개를 떨구고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길고 힘든 하루였다.
조심스럽게 방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 마루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새근거리는 은하가 눈에 들어왔다. 
샤워를 마치고 풍기는 샴푸 향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얼굴엔 또다시 눈물 자국이 보였다.
진현은 혀를 짧게 찼다. 씻고 나와 자는 은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팔 한쪽만큼 떨어져 누웠다.
자신을 향해 누워있는 은하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던 진현은 몸을 돌려 은하를 등지고 잠을 청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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