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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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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남매와 삼촌이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진현의 원래 자취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였다. 삼촌이 외숙모에게 바가지를 깨나 긁힐 만큼의 보증금이 들어간 풀 옵션 투룸이었다.
내부에 들어선 은하의 눈이 기대감에 가득 차 반짝였다. 은하는 가져온 짐을 풀지도 않은 채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날렸다.

"안 딱딱해! 여기 너무 좋아요!"

정돈된 베개를 힘껏 껴안고서 나뒹구는 은하를 보는 삼촌의 표정은 마냥 푸근했다.

"저래 좋아하는데, 진작 데려왔어야지. 안 그냐?"

멋쩍어하는 진현을 앞에 둔 삼촌은 방으로 들어와 구석구석을 바라봤다. 
계약하기 전 진현과 같이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한 번 더 봐야 직성이 풀릴듯했다.

"금 간데나 그런 거 없나 보네. 있으면 바로 관리인한테 얘기하고. 비 새면 고생한다."

"요새 그런 데가 어딨어요."

"예나 지금이나 그런 곳이 없지는 않을 거다."

괜한 걱정이라는 듯 진현이 피식했다. 
삼촌은 두고 보라는 듯 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카드를 내밀었다.

"이거, 가서 살 거 사고. 은하 맛난 거도 멕이고. 낼 출근하면서 돌려줘라."

진현은 살짝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살 거...? 없어요. 좀 따 이삿짐 다 올 텐데."

"너 말고도 은하. 이놈아. 저 나이에 자기 핸드폰 하나 없이 사는데."

"쟤 핸드폰도 없어요? 아니 것보다 그런 건..."

말끝을 흐리는 진현을 가볍게 타박하며 삼촌이 말했다.

"니가 사줄 여유는 있고? 하는 김에 은하 컴퓨터도 하나 맞춰 줘라."

"...네."

진현은 은하가 핸드폰 조차 없다는 사실에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본 삼촌이 은하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보육원에서 산다는 게... 그런 거다."

삼촌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말을 이었다.

"외부 지원이 없으면 또래처럼 살기도 힘들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있으면 남들보다 더 아프고... 참... 안타까운 일이지. 은하를 데려오면서, 그곳 애들한테도 상처를 줘버렸어."

"...알고서 그러신 건 아닐거 아녜요."

"애들한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너도 알게 될 거야."

"오빠! 여기 봐! 여기 햇볕 되게 잘 들어!"

"...그래! 잠깐만!"

진현은 마냥 신나 자신을 부르는 은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삼촌은 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래. 그럼 살 거 꼼꼼하게 체크해서 다 사고. 내일 보자."

"...감사해요."

진현의 말에 삼촌이 활짝 웃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분명 듣고는 싶던 말일 것이다.

"가족끼리 뭘. 간다! 은하야! 나중에 보자!"

"아! 네! 잠시만요!"

뒹굴던 은하는 쪼르르 달려오더니 넙죽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그래."

푸근하게 웃으며 은하를 바라본 삼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잘 관리되어 끈적이지 않는 빌라의 복도는 삼촌의 구두 소리가 선명히 울리며 멀어져 갔다.

"일단 짐 풀고. 살 거 다 사러 가자."

"살 거?"

진현은 은하에게 카드를 내보였다.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래. 삼촌이 너 되게 불쌍하게 생각하시드라. 핸드폰도 없다매?"

"어... 그건 그렇긴 한데."

잠시 망설이던 은하는 말을 이었다.

"그렇긴 해도... 이사장님께서 사정 봐주시는 건 진짜, 진짜로 감사한데.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필요는 없는데..."

"어?"

"그러니까... 내가 엄마 돌아가시고 그렇게... 지내왔지만서도. 남들이 날 불쌍하게 보길 바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니란 말야."

진현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마냥 동정하는 건 그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었단 걸 알지 못했다. 삼촌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현의 얼굴을 살핀 은하가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남들보단... 좀 힘들게 살아온걸 수도 있어. 그래도... 세상엔 나보다 더 힘들고 더 슬픈 사람들이 많잖아? 난 그렇게 불쌍하지 않다고?"

속으로 감탄하며 은하를 바라본 진현은 미소 지었다. 그녀는 진현이 생각하던 것보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진현이 살짝 짓궂어 하며 말했다.

"그럼 핸드폰 안 산다?"

"아니, 그건 아니고."

남매는 즐겁게 웃으며 짐을 정리했다. 살짝 시간이 흐른 후 밖으로 나선 둘은 가장 먼저 핸드폰 가게를 들렀다.
눈치를 보며 공짜폰으로 손이 가던 은하를 진현이 제지했다.

"좋은 거 사."

"저거도 나한텐 충분한데..."

점원을 잠깐 살핀 진현이 은하에게 속삭였다.

"저게 결국엔 더 비싸."

"...왜?"

"니가 돈 내보면 알어. 딴 거 사."

"그럼 저거."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잘 보이게 진열된 최신 핸드폰이었다. 
숫자의 개수를 바라본 진현은 삼촌을 영혼까지 털어댈 외숙모의 표정을 상상했다.

"...저거 사면 삼촌 못 볼지도 몰라."

"헉."

지레 겁 먹은척 하던 은하는 다시 자기 앞에 놓인 핸드폰을 가리켰다.
 애초부터 정해놓았던 것이다. 너무 비싸지도, 오래되지도 않은 기종이었다.

"너 이거 진작 골랐던 거였지?"

"응."

밝게 웃은 은하를 못 당하겠다는 듯 바라본 진현은 `보기보다 영악하구만.` 하며 속으로 여겼다.



남매는 핸드폰 가게를 나서며 다음 목적지를 정하려 했다.
은하의 눈길은 근처의 옷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시선을 알아본 진현이 물었다.

"옷?"

"오빠 어제 집에 보니까 추리닝 밖에 없더만. 이사장님 조카란 거 알게 될 텐데 창피 하실 거 아냐."

"그걸 언제 또 보... 야 근데, 너 왜 말 놓냐?"

이제서야? 하는 표정을 지은 은하가 되물었다.

"오빠 동생 사이에 그러면 안 돼? 앞으로 같이 지낼 텐데."

"나이 차가 몇인데."

뜬금없는 소릴 들었다는 듯 은하가 피식 웃었다.

"나이 차가 무슨 상관이라고."

"난 한 살 차이도 꼬박꼬박 형이라고..."

"아, 네. 네. 가요. 오빠. 오라버니."

말을 자른 은하가 능청을 떨었다. 진현은 뭐라 대꾸하고 싶지만 포기했다.

"...그래. 맘대로 해라."



옷가게 탐방은 그 뒤로 한 시간쯤을 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첫 세 점포에선 성의 있게 옷을 살피던 진현은 다섯 번째 가게를 향하는 은하를 보며 점차 표정이 무너져 갔다.

"이거면... 될거 같은데..."

자신감 없이 청바지 하나를 들춰낸 진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은하의 표정은 단호했다.

"안 어울려."

"다 똑같잖아!"

"다르거든! 이거 봐!"

은하가 가리킨 곳을 유심히 보던 진현은 억울한 듯 소리쳤다.

"똑같잖아!"

그가 보기엔 하나도 다른 곳이 없었다.

"나 같으면, 이거."

진현의 눈에 거의 유사하다 못해 상표만 다른 청바지가 은하의 손에 들려있었다.

"뭐가 달라!"

남매는 서로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다음 가게로 향하는 은하를 제지하기엔 벌써 저 멀리 가는 중이었다.
은하의 마음에 드는 옷 한 벌을 맞춘 건 그 뒤로 30분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첫 번째 가게에서 바지를, 세 번째 가게에서 셔츠를 맞췄다.

"이제 맘에 드네. 잘 어울려."

"아니, 이럴 거면 뭐하러..."

"사진 찍자. 오빠."

진현은 항변을 포기하고 옆에 파고든 은하에게 마지못해 몸을 내줬다. 
평소 굳었던 얼굴을 펴자니 어색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래. 이것도 삼촌네서 일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 쳐야지.`

핸드폰 화면 안에는 진현의 더벅머리와 정돈되지 않은 수염들이 눈에 띄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삼촌도 진현의 몰골에 혀를 내둘렀을지도 모른다.

"...찍을 거면 깎새집 먼저 가고 찍자."

은하가 나지막이 읊조린 진현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새집? 애완동물 키울거야?"

은하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진현은 난처해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깎새집... 깎새... 그니까. 어... 뭐라 하지?"

진현은 두리번 거리다가 미용실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거. 미용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진현은 입가에 떠도는 낱말을 삼키고는 은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숱을 치고 나니 몰골이 사람다워졌다. 진현은 얼기설기 난 콧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진은 이거도 함 훑고 나서 찍든지 해. 마저 쇼핑하고서. 집 가고."

"수염은 놔둬도 되는 거 아니야? 잘 어울리는데."

은하의 말에 미용사는 진현을 흘낏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눈치챈 진현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 그러지 마. 수치 플이야?"

진현은 키득대던 은하를 당황하며 바라봤다.

"아니, 진짠데?"

"퍽이나. 살 거 많아. 어여 가자."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지은 은하는 핸드폰을 매만졌다.



시간이 지나 날이 저물 기미가 보였다. 
힘겨운 쇼핑을 마친 남매는 집으로 돌아와 배달된 물품들과 예전 자취방의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컴터 어따가 둘래."

은하는 안방을 보며 말했다.

"음... 내 방?"

"니 방?"

진현은 안방을 쳐다봤다. 어이가 없는 듯 살짝 웃었다.

"저게 왜 니 방이야."

"그럼, 우리 방."

이죽대는 은하를 보며 진현이 되물었다.

"우리? 같은 방에서 자기라도 하자고?"

"그럴 거야?"

"미쳤냐고."

재밌다는 듯 진현을 웃으면서 바라본 은하는 단어를 정정했다.

"그래, 안방에 두자. 것보다 사진 먼저."

"대체 사진은 왜 그렇게..."

"쉿!"

말문을 막은 은하가 다시 진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마지못해 웃으려던 진현은 다시 어색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굳어 있지도 활짝 웃지도 못한 기괴한 얼굴이었다.

"오빠, 사진 찍자는데 왜 퇴마 당하고 있어."

자지러지는 은하를 두고 진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이게 한계라고 느꼈다. 여전히 굳어 있는 얼굴에 가까웠지만 적어도 웃는 모습에 포함될 정도는 됐다.

한참의 소동을 마치고 짐을 정리한 남매는 마룻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이거도 일이라고 지치네."

대꾸 없는 은하는 등을 돌리고 누워 핸드폰을 마냥 만지고 있었다. 진현은 뭘 하냐 물어보려다 괜한 참견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먼저 씻는다."

"아, 응! 알았어."

진현의 말에 놀란 은하가 핸드폰을 숨기며 답했다.

`하긴 폰 없다가 오늘 생겼는데, 좋을 만도 하지.`

진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이 닫히자 은하는 그제야 핸드폰을 품속에서 꺼냈다.
이내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핸드폰 바탕화면을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화면 속은 웃는다기엔 조잡한 미소인 진현과 그 옆에 안긴듯한 은하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한편 삼촌의 집에선 진현의 외숙모가 한창 삼촌을 털어대고 있었다.

"차!! 사더니!! 방 보증금까지 내주고!!"

분노가 가득 담긴 스탬핑이 삼촌을 내일 저녁 재료로 만들려는 듯 주물럭 거리로 바꾸는 중이었다.

"악!! 여보!! 말 좀!! 아아악! 뼈! 뼈! 악!"

"윤선이한테도! 하루 이틀 사이엔 이렇게 못 해준다고!!"

외숙모는 방을 흘낏 쳐다봤다. 뒤늦게 공부 중인 딸이 생각났던 것이다. 성큼 걸음으로 방문 앞에 다가간 그녀는 살짝 열려있던 문을 조용히 닫고는 다시 남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찰나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삼촌은 고기 반죽이 되어가면서도 힘겹게 핸드폰을 켜 화면을 확인했다.

"여보! 여보!! 잠깐만 타임! 이거 봐!"

삼촌은 산짐승 같은 기세의 외숙모에게 부적을 내밀듯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카드 내용이 나열된 문자 메시지였다.

"이거... 이거... 당신이 그, 지저분하다던 머리도 잘 잘랐네... 내가 까먹고 말 안 했는데도... 진현이가... 응? 허튼 데 쓰는 거 아냐... 날 믿어줘..."

외숙모는 잠깐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삼촌의 멱살을 내려놓은 채 핸드폰을 쥐고는 기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진작 자르지. 말도 드럽게 안 듣더니. 잘했네."

삼촌은 안도의 한숨을 내질렀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챙겨 체력 배분할 여유를 얻은 것이다.

"그렇지?"

"근데 이건 이거고."

외숙모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촌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비명이 새어 나오는걸 마지막으로 삼촌의 정신줄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아! 아빠! 시끄러워! 조용히 좀 맞고 그래!"

윤선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방안에서 흘렀다. 그러나 별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부부는 늘 일방적인 격투 후 금실이 좋아지길 반복했으니까.
조만간 동생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하며 윤선은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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