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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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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 그래서."

진현의 삼촌은 웃음기를 가득 띄우며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물만 입에 넣을거니들? 고기 탄다."

불판에선 고기가 기름을 튀기며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치 자길 빨리 먹어달라는 듯 탐스럽게 잘린 한 점이 진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신 말씀이랑 의도는 잘 알겠는데요, 삼촌."

"그래 잘 알아줬구나."

능청스러운 삼촌의 표정에 반쯤 질린 진현은 슬쩍 은하를 쳐다봤다. 그녀는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삼촌과 진현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고기는커녕 젓가락도 들지 않고 있었다.

"쟤가. 그니까. 동생이요? 그... 이복동생?"

진현은 은하를 손끝으로 살짝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삼촌을 따라 왔긴 했지만 아직 그의 머리는 상황을 이해하기 벅찼다. 그도 그럴 만 했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요, 우리."

"아냐. 내가 보기엔 너희 다 아버지 쪽에서 조금씩 왔네."

삼촌의 말에 진현은 은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자그맣고 오뚝한 코와 그 밑으로 건강한 붉은빛을 띠는 얇은 입술. 흐리멍덩한 자신의 눈빛과는 달리 당혹감을 품고 있음에도 맑게 빛나는 눈.
은하가 부담을 느껴 시선을 피할 때 까지 진현은 그녀를 바라봤다.

"아닌데. 저랑 같은 부분이 한 군데도..."

"너희 아버지 본 사람은 알 거야."

대체 어디가? 라고 생각한 진현은 화제를 바꾸려 들었다.

"본적이 없으니까요. 너... 아, 말 편하게 할게? 은하? 랬지."

"...네."

적어도 경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현은 주저하다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럼 너도... 그... 아버지가 그 사람인가? 그.. 누구였지?"

진현은 오래전 기억을 꺼내려 애썼다. 이마를 긁는듯하다가 이내 떠오른 듯 말했다.

"정. 정인수씨? 맞나요, 삼촌?"

"저는, 전 잘 몰라요."

은하는 `아버지`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나쁜 기억이었고 사랑하는 딸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기시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은하가 꽤 일찍 철이 들기 전에도 아버지란 존재가 없단 걸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부모의 빈자리를 메꾸려던 어머니의 노력이었다.

"맞다. 정인수 씨가 너희 아빠 맞아."

삼촌이 확정을 내렸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었다. 삼촌 역시 둘의 아버지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갖지는 않은듯했다.

"아니, 근데 우리 본인들도 잘 모르는 걸 삼촌은 어떻게 알고 계세요?"

"나야, 그 사람이 준 위자료로 등록금 냈으니까. 정확히는... 진현이. 니 어머니가 나한테 써주신 돈으로... 그렇게 교사가 되고. 교단에 서고. 은하 어머니를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고."

삼촌은 착잡한 듯 수저를 내려놓고 입을 감쌌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고기가 서서히 타버리려 하자 진현은 손을 뻗어 불판의 가스를 잠갔다. 삼촌은 불판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점심때 고기는 역시 좀 아닌가?"

그런 것 치곤 고깃집은 시끌벅적하게 손님으로 차있었다. 밖의 더운 열기가 무색하게 주방에선 설거지 아르바이트생들이 갈려 나가는 듯 무서운 기세로 새 불판과 그릇들이 내어졌다.
한창 배고플 때의 젊은 손님들에게로 향하는 식기들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무거운 분위기의 대화를 이어나갈 곳은 아닌 듯 해 보였다.

"아뇨, 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얘랑 저는 오늘 처음 보잖아요. 그냥..."

진현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삼촌이 대신 말했다.

"점잔 떠는 거라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현은 체념한 듯 뱉었다.

"점잔.. 떠는 거 맞긴 하네요."

"거 맘 열고 대화하기엔 고기가 최곤데. 술 한잔 하면서."

삼촌이 짓궂게 웃으며 손목을 꺾는 시늉을 했다. 진현이 당황해하며 은하의 눈치를 살폈다.

"민짜 앞에서 무슨 말씀을."

진현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삼촌은 어이가 없는 듯 웃었다.

"니 중학생 때 삼촌네 와서 맥주 몇 캔 깠는지 다 잊었냐?"

"아. 좀."

"삼촌 담배도 막 훔쳐 피고."

"아."

"느이 외숙모가 아주 빤스 바람으로 쪼까낼라고 하는 걸 삼촌이..."

"아유, 민짜면 어때요. 뭐 알 거 다 알 나이지! 그럼!"

다급하게 말을 가로채며 얼굴이 빨개진 진현을 본 은하가 살짝 웃었다. 삼촌과 조카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긴장은 어느 정도 날아간 모습이었다.
진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판을 다시 달궜다. 기껏 사주는 고기를 삼촌 말마따나 점잔 빼느라 먹지 않는 것도 손해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라면 대신 들어가는 다른 음식이었다.
한 점을 집어 씹자 진현을 본 은하도 우물쭈물하며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서히 먹는데 열을 올리자 삼촌은 푸근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일단, 다 먹고서 어디 가갖고 마저 얘기하자. 된장찌개 시킬까?"

"냉, 냉면도요."

입안 가득 고기를 씹는 진현이 다급히 말했다. 은하도 역시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비냉이요."

"어, 저도 비냉으로."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셋은 식당을 나섰다. 배가 채워지니 마음도 채워진 느낌이었다. 진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담뱃갑을 쥐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내 알아챈 듯 고개를 돌려 은하를 잠깐 쳐다보고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입맛을 다셨다.

"담배 태우셔도 괜찮아요."

"아냐. 오늘은 너 본다고 안 갖고 왔어."

은하는 물끄러미 진현의 주머니를 바라봤다. 각지게 튀어나온 천의 윤곽이 한눈에 봐도 뭔지 알 수 있었다. 은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설명하지 못할 새로운 감정이었다.
진현은 멋쩍게 웃으면서 걸어나갔다. `흡연자가 지갑은 안 챙겨와도 담배를 안 챙겨와? 어림도 없는 소리.`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던걸 깨달았다.

"이참에 끊지?"

삼촌이 불쑥 끼어들었다. 진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안 될 거 아시잖아요."

"거 모르는 일이다."

두고 보라는 듯 묘한 웃음을 지은 삼촌이 진현의 등을 두드렸다. 진현 역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근처의 카페로 들어간 일행은 가장 안쪽으로 자리 잡았다. 은하는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로 간 진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 오빠 마음에 드니?"

삼촌이 불쑥 물어봤다. 은하는 긍정하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얇게 미소 지었다.

"말했었지만, 진현이도 너랑 같은 아픔이 있단다. 그래, 그 정인수 씨가. 진현이가 생기니까..."

삼촌은 말을 잇는 대신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 많은 사람이야. 그 이후에도. 가정을 꾸리고선, 그 상태에서 불륜 상대였지. 성은이...가..."

은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삼촌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은하랑 은하 어머니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이미 자기 딸을 낳은 상태에서. 거 뭐가 그렇게.. 성은이는 그때 한창 힘들었을 때고. 그 상황을 정인수 씨는 자기 욕망 채우는 데 썼지."

삼촌의 눈가에 순간 슬픔이 감돌았다.

"진현이 어머니에게 한 것 마냥. 너희 모자한테도..."

조용히 한숨을 내쉬던 삼촌은 진현과 은하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너희가 이렇게 잘 커서. 오늘 이렇게 함께 보게 되니 기쁘다. 앞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되면 좋겠다. 아저씨는."

"가족."

"그래. 가족. 비록 호적상으론 이어져 있진 않아도, 너흰 틀림없는 남매고 가족이야."

은하는 단어를 되뇌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참으로 오랫동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단어였다.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그녀에겐 차츰 낯설게 느껴지던 개념이었다.

"빈자리는 마음으로 메꿀 수 있으니까."

삼촌의 말에 은하가 살짝 놀랐다. 뭔가 말하려는 듯 한 은하를 바라보며 삼촌이 말을 이었다.

"어머니한테 자주 듣던 말이지? 아저씨가 네 어머니 학생 때 얘기해줬던 거란다."

"저한테도 자주 해주시던 얘기잖아요."

진현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아이스 커피 석 잔을 들고서는 내려놓으려 하자 은하가 일어나 그를 거들었다.

"아, 그래. 누나랑 단둘이 힘겹게 살 때 했던 말이니까."

삼촌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힘겹지만... 그래도 슬프지는 않았던 시절이었다. 가족이 주는 위안이란 그런 거니까."

짧게 한숨을 내쉰 삼촌은 은하와 진현을 번갈아 봤다.

"앞으로 진현이가 은하랑 같이 살면서 돌봐줬으면 좋겠어."

"네??"

거의 동시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삼촌은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그래, 뭔 소린가 싶겠지. 내 독단일 뿐이지만, 너희한테도 좋은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네, 뭔 소리에요, 삼촌. 갑자기. 얘랑 저는 오늘 처음 봤어요."

"너도 외숙모 처음 본 날 주정 피웠잖냐."

"아니."

진현이 잔뜩 정색했다. 은하는 갑작스러운 진현의 굳은 표정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뜻 아니잖아요. 장난 아니에요, 저."

"삼촌도 장난삼아서 꺼낸 얘기가 아니다, 진현아. 말했잖냐."

"얘가..."

진현이 말을 끊고 은하를 가리켰다.

"...얘가 저랑 같이 살아서 서로 얻을 게 뭐 있다구요."

"꼭 얻을 걸 바라고 함께 사는 게 아니다."

"아니, 그니까요. 그리고..."

진현이 살짝 은하를 바라봤다. 은하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니까. 전... 누구랑 같이 살 상황이 안돼요... 지금... 백수기도 하고."

"우리 학교에서 일하면 된다. 겸사겸사 은하도 잘 봐주고."

"진심이세요?"

"진심이다."

삼촌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진현은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은하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진현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 그러니까 니가 뭐 맘에 안든다... 그런게 아니라. 가족까진 알겠어요. 가끔 연락하면서. 뭐... 오늘처럼..."

진현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먼저 일어날게요. 죄송해요. 그리고... 이거."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낸 진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윤선이 면허증 따면 주시든지 하세요."

차 키를 탁자에 올려놓고 진현은 카페를 나섰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하는 당혹감에 할 말을 잃었다. 삼촌 역시 진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슬픈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탁자만 바라봤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진현이 나간 후 흐르던 정적을 깬 건 삼촌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 미리 물어봤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저. 저는... 그러니까."

"그래."

"저는 저 분이. 맘에 들었어요. 오...빠로... 같이 지내면 좋겠다고..."

"어느 면이 맘에 들었길래."

"그냥... 처음 보는 저를 배려해 주시고... 그리고..."

은하는 머뭇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원래 좀. 낯을 가렸었어요, 저. 근데... 편안한 느낌이 났어요... 저분."

은하의 말에 삼촌이 살짝 미소 지었다.

"가족이니까. 누가 뭐래도."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심한 듯 삼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분. 집에 찾아가면 실례일까요?"

은하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삼촌의 눈이 커졌다.

"한번 가보자."


삼촌과 은하 앞에서 썼던 가면을 벗어낸 순간이었다. 일부러 유쾌한 척. 밝은 척을 했지만 결국 진현의 속내는 드러나고 말았다. 
삼촌은 실망하시겠지. 은하는 환멸을 느끼겠지. 진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게 느껴졌다. 내리쬐는 열기는 차를 몰 땐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가혹할 수준이었다.
잠시 멈춰 선 진현은 택시라도 탈까 하는 생각에 눈을 굴려 주위를 살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담배는 챙겨왔지만 지갑은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

고개를 치켜든 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흡연장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현은 근처의 공터 가운데 재떨이 통을 발견한 후 주머니 속 담뱃갑을 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흡연장에 다가가자 낯익은 얼굴을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한 개비를 막 꺼내어 입에 무는 중이었다.

"어?"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진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충성."

진현은 표정이 풀어지며 남자에게 경례를 올렸다.

"충성은 지랄."

남자는 진현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그는 가득 웃음을 지은 채 굉장히 반가운 표정이었다.

"여서 만나네. 근처 사냐?"

"예. 선배님."

남자는 진현의 군 생활 시절 선임이었다. 그가 전역할 때쯤 장기 복무 신청에 성공한 부사관으로 진현의 전역을 유달리 아쉬워했던 사람이다.
동시에 그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어캐 또 휴가 나오니까 만나네. 오늘 시간 나냐."

"오늘..."

진현은 잠시 생각에 빠진듯하다 이내 말했다.

"오늘. 괜찮습니다."

"술 함 빨아야지."

"술...은."

머뭇거리는 진현을 바라보던 선배가 넌지시 물었다.

"아직 좀... 그러냐?"

"......"

"으휴..."

선배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주 때문에 그러는거면... 니 잘못 아니야."

"...아닙니다."

"하. 야... 진현아."

"......"

진현의 손이 살며시 떨리고 낯빛이 슬픔에 가득 차있었다. 선배는 말실수했단 생각에 진현을 위로하려 했지만 차마 변명을 꺼낼 수 없었다.

"담배나 피자."

"...예."

둘은 말없이 담배를 물었다. 선배는 애꿎은 담배의 필터를 잘근거리며 씹으며 불을 붙였고, 진현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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