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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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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0
전투복 차림의 남자가 풀숲을 헤치며 멍하게 걸어갔다. 
벌써 같은 곳을 두어 번은 지나친 느낌이었다.

"진현이 형."

낯익지만 잔뜩 쉰듯한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진현은 애써 목소리를 무시하고 초점 없이 앞을 바라보며 걸었다.

"형."

목소리가 좀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나, 나…. 나 좀. 놔둬. 놔둬 제발."

진현은 속삭이듯 뱉으며 발길을 이었다. 급기야 목소리는 귀 바로 뒤편에서 들려왔다.

"어디가, 형."

놀라며 팔을 힘껏 휘두르며 뒤를 돌아봤다. 
팔뚝은 허공을 갈랐고 목소리의 주인은 온데간데없었다.

"너…. 너. 여기 있는 거 맞지. 그치?"

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위를 살폈지만 온통 빽빽하게 자라난 수풀과 직전 내린 빗물로 고인 웅덩이 들 뿐이었다.
그는 한숨을 한차례 뱉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높이 솟은 나무들 아래로 걸어가는 동안 귓가엔 풀벌레 소리, 물을 머금은 잎사귀가 방울을 떨구는 소리, 전투화가 젖은 땅을 밟는 소리뿐이었다.
진현은 점차 눈에 생기가 돋았다. 아무래도 좋았을 환청이었다. 그저 이 앞까지만 간다면,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형. 나는?"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 처음은 섬뜩함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마음에 슬픔이 담겼다.

"그래! 너도 가야지! 그래…. 같이…. 같이 가야지! 어!"

울분을 토해내듯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진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못 가잖아."

저 너머의 풀숲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 모습으로 어떻게 가, 내가. 우리 엄마 놀래."

눈앞의 수풀을 가르며 목소리의 주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늘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 않던 얼굴은 점차 앞으로 나서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은 흙먼지와 피에 뒤엉켜 있었고 콧등은 뭉개져 새파랗게 부어올라 있었다.
잔뜩 찢겨나간 전투복에선 위장색을 새로 물들이려는 듯 핏물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 성주야."

진현은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슬픔에 짓눌려 어깨가 무거워졌다.

"형. 혼자 갈 거야?"

성주의 반쯤 베인 목 가죽은 피가 흐르고 그가 말을 할때마다 울컥울컥 솟아나고 있었다.

"미...미안... 미안해..."

진현은 목이 메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토해낼 것 같은 울부짖음을 꾹 삼켜내었다.

"미안한 거 말고. 형. 혼자 가냐고."

"가...같이 가야지. 그래...

"같이 어떻게 가. 이렇게 될거 알고 그쪽으로 보낸 거 아냐."

"아니! 아냐! 나는...

"내 이렇게 찢겨 뒤지는 동안. 형은 뭐 했었길래?"

담담하게 말하는 성주의 목소리에 점차 분노가 담겼다. 그의 눈가에 핏발이 돋았다.

"집... 집에 가자, 같이! 성주야! 성주야... 성..."

급기야 거의 빌다시피한 진현은 팔을 벌려 그를 안으려 들었다. 성주는 다가오는 진현을 밀치며 외쳤다.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 꼴이! 안 났는데!! 최진현!! 집에! 보내준다며!!"

밀쳐진 그는 꼴사납게 뒤로 넘어지며 핏물이 가득 찬 웅덩이에 쳐박힌채 나뒹굴었다. 핏물로 흠뻑 젖은 전투복은 무거웠고 귓가에 박힌 고함과 죄책감이 몸뚱이를 잔뜩 짓밟는 듯했다.

"난 여기 놔두고!! 너는 집에 간다고!! 최진현!! 최진혀어어언!!!"

괴성을 지르며 성주가 진현에게 달려들었다. 진현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아으! 으! 아..악!!"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진현이 윗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충전기에 꽂혀 진현의 옆에 자리하던 핸드폰이 내팽겨지듯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오래되었으나 여전한 악몽이었다.
그의 눈가는 눈물 자국이 진했다. 목이 잔뜩 늘어진 셔츠는 땀으로 축축했고, 퀴퀴한 방의 냄새 한편을 차지하던 쌓인 빨래 더미 곁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진현은 두 손으로 얇은 홑이불을 거머쥐었다. 누군가에겐 꼭 덮고 싶었을 그리운 집의 이불. 그가 덮을 자격이 있었을까. 숨은 가빴고 목에서 구역질이 올라온다.
진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으며 간신히 화장실에 도착해 쓰러지듯 무릎을 꿇고 뱃속을 잔뜩 게워내었다.
반쯤 소화된 라면 면발들이 화장실 바닥에 쏟아졌다. 눈가에 맺힌 물기가 방울지며 토사물 위에 떨어졌다. 
진현은 몸을 잔뜩 떨었다. 오한도, 공포도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탓이었다.
더는 뱉어낼 것은 없었지만 몇 차례 더 구역질했다. 진현은 수챗구멍이 막힐 거란 걱정도 잊은 채 가까스로 일어서서 물을 대충 뿌리고 화장실을 나섰다. 
아직 한밤중이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어두웠지만 조그마한 발코니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이 한 줄기 있었다. 진현은 더듬거리며 담뱃갑과 라이터를 찾아 집고 발코니로 향했다.
밖은 여전히 지긋지긋한 풍경이었다. 길고양이에게 뜯긴 종량제 봉투. 발광하는 듯 어지럽게 가로등 주위를 날아다니는 날벌레들. 그러나 누군가에겐 눈에 담고 싶었을 일상이었다.
진현은 떨리는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다. 정적이 흐르는 탓에 담배가 타들어 가는 소리도 똑똑히 들릴 만큼 컸다. 
이마엔 아직도 땀이 맺혀있었다. 샤워라도 할까 싶었지만 좀 전에 거사를 치른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진현은 몇 개비를 더 태우고는 꽁초를 발코니의 타일 바닥에 던져둔 채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눌어붙은 담뱃재와 침, 꽁초로 가득했다. 이런 나날이 벌써 여러 번 반복되고 있었다.



날이 밝으며 햇볕이 진현의 뒤통수를 비췄다. 슬쩍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어제와, 그저께와 똑같은 하루가 될 것이다.
그저 집에 머물면서.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서. 벌어놓은 돈을 꼬박꼬박 까먹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하루. 진현은 다시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했다.
별안간 소란스러운 벨 소리가 울렸다. 자신에게 올 전화는 없었을 텐데, 대출광고겠거니 하며 진현은 내팽개쳐진 핸드폰으로 포복해 기어갔다. 
'삼촌'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떠 있었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진현은 전화를 받았다.

"잤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너머에서 들렸다.

"예, 삼촌."

그럼 잤을 시간이죠, 라고 덧붙이려던 진현은 슬며시 핸드폰 화면을 켜서 시간을 봤다. 오전 11시였다. 아차 싶었던 그는 얼버무렸다.

"아니, 좀. 네. 아까 깼어요."

"여태 잤구만, 뭘. 밥 안 먹었지? 점심 사줄게. 여기 나올래?"

삼촌과의 사이는 살갑지는 못해도 척을 지진 않았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을 때마다 그의 삼촌은 밥을 먼저 먹자며 전화를 해왔다. 이번에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다만 그의 기준으로는 꽤 귀찮은 일들이 잦았기에 진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밥을 좀 늦게 먹었어요. 나중에..."

"라면도 밥이냐? 맛있는 거 먹자, 삼촌도 고기 좀 먹고 싶은데."

"......"

"...일단 나와서 함 보자. 나올 수 있겠니?"

"네."

"그래, 그럼. 열두시 쯤 보자. 이사장실로 오고."

"학교에 계세요? 방학이잖아요."

"방학이면 다 쉬겠니?"

"몰랐네요."

진현은 벌써부터 속이 거북했다. 삼촌은 좋은 사람이었고, 진현을 많이 아껴주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편모가정이었던 그가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홀로 남겨졌을때,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가족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내키지 않았던 것은 사립학교의 젊은 이사장인 삼촌에 비해 전역한 중사출신 백수인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음이다.
자격지심은 가까웠던 가족 사이도 갉아먹었다. 삼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비틀대며 화장실에 들어온 진현은 간밤에 만들어낸 찌꺼기들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결국은 자신이 다 청소해야겠지만, 지금만큼은 하고싶지 않았다.
그는 발걸음을 살짝 떼며 멀찍히 돌아선 채 샤워를 간신히 마쳤다. 걸어 놓았던 수건이 없었기에 물을 흘리며 화장실을 나온 진현은 금새 또 헛구역질을 했다.
역겨운것이 토사물이었을지, 혹은 이런 자신이었을지. 진현은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수건 하나를 집어들고 물기를 닦으며 몸서리 쳤다.



"왔어? 생각보다 빨랐네."

이사장실에 들어서자 삼촌이 활짝 웃으며 진현을 반겼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삼촌과 달리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의 진현은 벌써 위축되는 느낌이었지만 삼촌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날씨 좋은데, 이런 날엔 고기좀 먹어야지. 안 그러냐?"

"뭐 시키실 일 있으세요?"

마음속에만 품고 있으려 했지만,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진현은 스스로도 살짝 놀랐다. 퉁명스럽게 들리진 않았을까 했지만, 삼촌은 부드러운 표정을 풀진 않았다.

"아 그래. 숨길거도 없지. 근데 뭐. 삼촌이 조카한테 뭐 이거 저거. 부려먹으려는건 아니잖나?"

"그냥요."

진현은 멋쩍게 눈을 굴리며 대답을 이었다.

"항상 뭐 시키실때 밥먹자시니까요."

"그래. 니 말 맞다. 근데 삼촌도 배 고픈건 맞아. 고기 먹고 싶은거도 맞고. 그리고 음..."

삼촌은 잠깐 뜸들이는듯 하다 말을 이었다.

"니가 만나볼 사람이 하나 있어."

"또요?"

"그래."

삼촌은 이전에도 이런식으로 지인들의 딸을 소개시켜 주곤 했었다. 물론 잘 되진 못했지만 진현도 삼촌도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삼촌은 홀로 지내는 조카가 안쓰러워서, 조카는 그런 삼촌의 마음씀씀이를 내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실례되는 일이란건 알고 있었지만 진현은 차마 내색하진 않았다.

"이번엔 어느 집 따님이시랍니까."

"니 여동생이시란다."

"네??"

진현은 놀라 소리쳤다. 아마 지난 몇개월 동안 가장 크게 놀라고 가장 크게 낸 소리일것이다. 동그랗게 뜬 눈을 즐거이 지켜보던 삼촌이 말했다.

"정확히는 니 이복동생이지. 삼촌이... 좀 알아봤다. 걔도 많이 딱한 애야."

"갑자기요? 아니, 것보다. 삼촌! 아니, 저는..."

"들어봐. 진현아. 그런 얘기가 아니야."

삼촌의 눈가가 일순간 차분해졌다. 그 눈빛은 조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혈육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래. 나도 안다. 많이 힘들때지. 마음도 많이 다쳐서 전역한거. 안다."

"......"

"그리고... 네 어머니. 삼촌도 많이 보고싶다. 그거 아니? 너한테도 엄마지만, 삼촌한테는 니가 태어나기 20년전부터 하나뿐인 우리 누나였단거."

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기억은 삼촌과 진현 둘에게 있어서 이따금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상처가 됐었기에. 
가급적이면 서로 언급하지 않기로 했던 아픈 일이었다.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낸다는건 뭔가 다른 할 말이 있었어서 였을 것이다.

"삼촌도. 나이 먹어보니까 점점 느끼더라. 옆에 아무도 없는게... 때론 진짜 슬프겠구나. 하고말이다."

"저는. 그러니까..."

삼촌은 진현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며 말을 이었다.

"혼자인게 편할 수는 있어. 진현아. 편할 수 있어. 그치만 지금의 너는 그러면 안돼. 너는..."

삼촌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너는... 무너져 가고 있잖냐. 응? 난 말이다. 우리 사랑하는 누나가 남긴 유일한 자식인 니가. 망가져가는걸 볼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 애도 그렇고... 너희가 서로 의지할 가족이 되면 좋겠단거야, 삼촌은..."

일찍이 삼촌은 이렇게나 감정적인 모습을 진현에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표정에 적잖게 당황한 진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 그, 삼촌. 일단 이런 얘긴 다른데 가서 해요. 여긴. 방음이..."

"잘 되지. 아주 잘된다. 비싸게 줬어."

"아. 네."

삼촌은 한숨을 내쉬었다. 추스리려는 듯 금새 평소 진현이 알던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 일단은 가자. 같이 데려갈거니까 좀 일찍 출발해야지."

"지금 본다구요?"

"지금 아니면 언제 볼래?"

진현은 고개를 저었다. 삼촌의 성격상 오래 전부터 계획한 일일 것이다.

"일단 가요. 삼촌."

"그래야 내 조카지."

삼촌은 진현을 바라보며 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삼촌을 보는 진현 역시 내키진 않았지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둘은 가장 안쪽에 주차되어있던 삼촌의 외제차로 향했다. 제법 비싼 몸값의 비즈니스 세단이었다. 
차 따위에도 압도될만큼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진현은 시선을 낮추고 조수석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아니다."

별안간 삼촌이 진현을 불러 세웠다. 삼촌은 옆 자리의 새 차 앞에 서있었다. 
삼촌의 외제차 만큼은 아니었지만 출고된지 얼마 안되어 꽤나 비싸게 나가는 모델이었다.

"차 바꾸셨어요?"

대답 대신 삼촌은 차 키를 던져주었다. 얼떨결에 키를 쥐어든 진현이 되물었다.

"제가 운전해요?"

"니 차니까."

"네??"

"뽑는다고 니 외숙모한테 바가지 많이 긁혔다! 곱게 타자."

"아니. 어... 삼촌. 제 꺼요?"

"어여 타."

삼촌은 웃으며 뒷자석에 올라탔다. 진현은 당황해하며 운전석을 열고 차 키를 꼽으려 했다.

"이거 키 꽂는거 어딨어요, 삼촌?"

"꽂는데 없다."

"없어요?"

"아 거 그냥 누르면 된다고!"

싱글벙글하며 타박하는 삼촌을 뒤로하고 진현은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차를 선물로 줄 만큼 큰 부탁이 과연 뭐길래. 지금부터 만날 '여동생'이 어떻길래. 
진현은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간신히 앉히며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작가의말

별점

★★★★★회당별점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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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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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찔릉소(naver_51554**) 2020-06-26 11:23:25 신고 이 그림 존크라운이 표지 그려준거네.